노회찬 전 의원에게 삼성 X파일은 7년간 권력과 자본에 맞선 저항의 역사이다. 애초에 삼성그룹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검사의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했고, 자기 자신에게도 위험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 전 의원은 오직 양심에 의거해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2005년 7월 22일 이상호 MBC 기자가 삼성X파일을 보도했다. 이는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를 국가안전기획부가 도청한 녹음테이프와 보고서의 내용이다. 1997년 대선 당시 삼성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뇌물을 주고, 명절마다 검찰 간부들에게 떡값을 건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뇌물을 받은 검사들의 실명은 공개하지는 못했다. 검찰과 삼성의 보복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노 전 의원은 2005년 8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떡값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고 사전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는 “나를 기소하고 싶습니까. 기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십시오.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나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알리는 것이 도리입니다.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 되고 옳은 일이라면 법의 잣대에 개의치 않고 나는 한다. 오늘 행동이 공익에 반한다면, 국민이 알 필요도 없는 내용을 공개하고 부당하게 사리를 추구했다면 스스로 면책특권을 포기할 것입니다. 나 스스로 손목에 수갑을 채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2005년 12월 14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 부회장, 홍 회장 등의 뇌물공여혐의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반면 노 전 의원과 이 기자는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노 전 의원은 “검찰의 기소를 환영합니다. 떡값・불법대선자금 지시자 이건희를 법정에 세워 삼성그룹 법무실로 전락한 검찰을 바로 잡겠습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노 전 의원은 2009년 2월 9일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삼성 X파일 사건의 본질은 불법 도청에 있지 않습니다. 불법 도청은 손가락일 뿐이며 그 손가락이 가리킨 진실의 달이 바로 삼성 X파일입니다. 불법 도청은 되풀이 돼선 안 될 위법행위지만 X파일에 담긴 진실이 훼손될 수는 없습니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불법적으로 얻어진 X파일 내용을 바탕으로 전・현직 검찰 간부들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회의원 신분이지만 자신의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통해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은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부연했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노 전 의원은 최후 진술에서 “이 사건은 한밤중에 남의 집 담을 넘어서 나오는 사람을 보고 ‘도둑이야’라고 소리를 지른 건데 도둑에게는 ‘도둑질을 했느냐’고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니 훈방하고, 저에게는 ‘도둑질한 것을 봤느냐, 담을 넘은 것만을 본 것이 아니냐’며 허위사실 유포라고 기소한 것과 같습니다.”라고 밝혔다. 2009년 12월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재판장 이민영)는 통상의 합리성과 이성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X파일 대화 내용대로 금품을 지급했을 것이라고 매우 강한 추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보도 편의를 위해 진술 내용을 사전 배포한 것은 국회의원의 직무상 발언에 부수한 행위로 면책 특권 대상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013년 2월 14일 X파일 실명 공개 보도자료는 면책특권에 해당하지만 인터넷에 올린 것은 불법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노 전 의원은 징역 4월에 자격정지 1년의 형을 확정됐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는 “국민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면 면책특권이 적용되고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면 의원직 박탈이라는 시대착오적 궤변으로 대법원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습니까. 지금 한국의 사법부에 정의가 있습니까, 양심이 있습니까, 사법부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싶습니다.”라고 비판했다. 노 전 의원에게 삼성 X파일 사건은 정의, 원칙, 공익을 지킨 상징적 사건이다. 기나긴 재판과 정치적 희생을 감당해야 했지만 정경유착 문제를 우리 사회에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정치 자금의 투명성과 기업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도록 만들었다. 노 전 의원의 정치적 신념과 행동은 진보정치 발전에 기여했고, 한국 사회의 도덕성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됐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층의 부패는 여전하고, 국민들 눈에는 진보든 보수든 그놈이 그놈일 뿐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탈세 등은 누구나 갖고 있는 흠결처럼 여겨진다. 정치인은 성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도덕성은 필요가 없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명백하게 틀렸다. 지금까지 진보가 보수에게 도덕성에서 밀려본 적이 있는가. 마땅히 진보라면 높은 윤리 의식을 견지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진보진영은 무너진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