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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오톡방 09화

9. 남편

마흔, 수진

by 장하늘



오톡방



9. 남편


며칠 후, 수진은 남편과 함께 외출을 나섰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가족 행사였다. 남편의 사촌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고, 집안 어른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라 빠질 수 없었다. 평소라면 일 핑계를 대고 참석을 미루던 남편이 이번엔 먼저 약속을 잡고, 꼭 가야 한다며 정장을 챙기는 모습이 낯설었다.

결혼식장은 화려한 조명과 장식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보며 감탄했다. 하지만 수진에게는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남편은 친척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남편이 술을 마실 때마다 그녀는 묵묵히 그의 그림자가 되었다.

식이 끝나고 차에 오르자, 남편은 이미 술기운이 올라 있었다.
“운전 조심해.”
무심하게 한마디 던지더니, 그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수진은 말없이 시동을 걸었다.




운전을 하려면 내비게이션이 필요했다. 그러나 자신의 휴대폰은 며칠 전부터 액정이 깨져 화면에 줄이 생기더니, 예식장에서 떨어뜨린 후 완전히 먹통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의 휴대폰을 빌려야 했다.

“여보, 내비게이션 좀 틀어줘. 내 폰이 상태가 안 좋아.”

수진이 남편의 팔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남편은 별다른 생각 없이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 그녀는 화면을 터치하며 목적지를 입력했다. 운전을 하며 집으로 가고 있는데, 화면 위로 알림이 하나 떠올랐다.

[박사장] 여보. 언제 와?

짧은 문장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수진의 가슴을 찔렀다.
‘박사장’이라 저장된 번호. 그리고 ‘여보’라는 호칭.

수진은 순간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맥이 풀렸다. 남편과 부부처럼 대화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손끝이 떨렸다.

다시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박사장] 오늘은 당신 좋아하는 냉이된장국 예정♥

숨이 턱 막혔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고 운전대를 더욱 힘주어 잡았다. 몇 달 전이 떠올랐다. 남편이 뜬금없이 냉이된장국이 먹고 싶다고 해서 끓여주었다. 그런데 한술 뜨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때는 그저 입맛이 없겠거니 했다. 마구잡이로 흩어졌던 퍼즐이 맞아 들어가듯 생각이 척척 정리되었다.

의문과 분노가 뒤엉켜 가슴이 터질 듯했다. 그녀는 평온하게 잠든 남편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너무 태연해서, 차라리 한 대 쳐버리고 싶었다.




‘그렇지, 어쩌면 당연했어.’

수진은 사실 모든 걸 알면서도 두 눈을 감고 외면하려고 했다.
남편의 외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두 차례 바람을 피웠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첫 번째 외도를 알았을 때는 이혼을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렸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다.
현실적인 벽은 너무 높았다.

두 번째 외도를 알았을 땐, 싸울 힘조차 없었다.
‘애들 때문이야. 이혼은 어렵잖아.’
스스로를 그렇게 설득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남편의 행동을 애써 외면하게 됐다.
알고 싶지 않았다.
확인할 용기도, 해결할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여보’라는 호칭. 냉이된장국을 끓여주는 여자.
단순한 외도가 아니라,
남편이 정서적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기울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스쳤다.
하지만 현실이 뒤따랐다.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혼자 살아갈 자신이 있을까?
이혼 후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까?

차 안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숨소리조차 날카롭게 들릴 만큼 고요했다.

남편은 깊이 잠들어 있었고,
수진은 말없이 차를 몰았다.

도착하자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 다 왔어.”
수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남편을 깨우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남편은 낮술이 깬 얼굴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

“나갔다 올게. 약속이 있어서.”

‘박사장과의 약속이겠지.’

하지만 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남편이 문을 닫고 나간 뒤,
수진은 거실에 주저앉았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누나, 뭐해요? 잠이 안 와서...

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혀니와의 하룻밤 이후,
둘은 서로 조심스러웠다.

깊이 개입하지 않기로,
선을 넘지 않기로.

하지만 혀니의 메시지는 지금 이 순간,
이상하리만큼 따뜻하게 느껴졌다.
위로처럼 다가왔다.

혼란한 마음속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수진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도 잠이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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