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현 Oct 16. 2023

나를 찾아가는 여정

제주도



   내가 이런 제목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흔하게 사용되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 단어를 난 꺼리는데, 이 글을 써야지 하면서 탁! 하고 제목으로 생각났다. 어쩔 수 없겠다. 써야지.     



 나는 살면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물어보면 흠칫 놀랄 정도의 일탈과 사고, 그리고 사람과 공간들을 다양하게 경험했다. 그런 경험 없는 사람 있겠냐만 내 인생이 특이한 건, 아직까지도 나 자신을 모르고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아주 어린 꼬맹이 시절부터 난 사라지길 원했다.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난 언제나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따라다녔다(이 말에 서운해하는 사람이 몇 있을 수도 있다). 어릴 적 집에서도 난 참고 양보해줘야 했고, 고집 세다며 혼이 났다. 당연히 난 어디서 주워왔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 전학을 간 날, 말 한 번 오해받게 했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고 오해를 풀고 나서 친해졌다가도 또 난 전학을 가고 또 다른 오해를 받았다. 나한테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난 놀림의 대상이거나 환영받지 못하는 대상이 되곤 했다. 


 고등학교에서 가까웠던 친구와 멀어진 뒤로 깊게 고민하게 됐다. 친구란 무엇인지, 나를 반가워해 주는 사람은 영 찾을 수 없는 건지. 그렇게 관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했다가 정말 친해진 친구가 몇 있긴 하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나를 오해하고 집단을 만들어 나를 몰아갔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두둔해주는 친구가 생겼다. 아니, 이미 친구였는데 난 깨닫지 못한 거였을 거라고 지금에 와서는 생각한다. 그치만 난 그때 죽기로 결심했다. 가계도 어려운데 외롭기까지 하다니, 그런데 난 항상 실수하고 오해를 사 사람들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대상이 된다니. 삶에 미련이 없었다. 굳이 산다면 죽을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렇다고 정말로 죽지는 않았다. 이 모든 문제는 내가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그것들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가 되려고 노력했고, 누구도 소중하다고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서 나 혼자 방에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고, 그 당시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한 공부가 어쩌다 보니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은 난 살아있어 봐야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채로 누군가는 내가 없는 편이 살기 좋으니 차라리 사라지는 편이 나았다. 내 욕심으로 누군가는 불행했던 것이다. 나는 행복하면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다. 처음에 나를 살아있게 한 건 죽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고 난 후 남겨지는 것들에 대한 책임 때문이었는데, 두 번째로 날 살려준 건 나를 택한 사람들이다. 잊고 있었지만 힘들었던 그때 나에게 연락해서 먼저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했고 또 그들이 언젠가 나를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이후로도 나는 여전히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게 가까웠고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나락으로 빠트렸다. 그 모든 걸 겪고 나서도 나는 그들이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러기에 난 갈수록 소극적으로 변해갔고 사소한 것에도 겁을 냈다. 누가 오해할까 봐, 누가 날 싫어할까 봐 그렇게도 눈치를 봤다. 다들 이렇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미움받을 용기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내가 현명하고 완벽해지기를 바랐다.     



 지난주에 제주도에 학회가 있어 출장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었다. 몇 년 전에 공부를 위해 해외로 떠난 아는 동생이었는데, 떠나기 전까지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친구이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말도 안 되는 외국어로 열심히 내 자랑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 놓고는 벅차오르는 이 감정이 뭔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단순하게 생각하기엔 자기 전마다 외롭고 우울해서 울었고 사람들과 있을 때면 난 한없이 밝고 활발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알아야만 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난 항상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에 더 완벽해지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내 장점도 난 뚜렷이 알고 내 단점도 난 사랑한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엇을 하려고 할 때마다 남의 눈치를 본 것은, 과거의 경험이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최대한 조용히 희생하며 살다 가야지 하는 마음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욕심껏 살아야지 하는 마음은 내 안에서 호환이 되지 않았다. 여태껏 그렇게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언젠가는 결국 미움받고 오해를 받아 내가 속한 사회에서 튕겨 나갈 테니 그전에 도망가자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도 버릇이었다. 도망을 애써 포기라며 포장했다. 그것도 사람들한테서 도망가고 싶었다는 걸 나는 한 번도 깨닫지 못했다. 그저 아픈 게 싫었고 서로가 갈등하는 상황이 싫었다.


 이래서 나에게 약이 필요한 건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때 병원에 다니면서 1년 넘게 약을 먹은 기간이 있었는데 밤에 까먹고 약을 안 먹었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난 행복해도 죽고 싶고 불행해도 죽고 싶다니 무슨 사람이 이러지? 하고는 조울증인가 싶어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여태껏 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날 전적으로 믿어주는 내 편이 있고, 그들 역시 강한 사람들이라는 걸 난 모르고 있었다. 정말 몰랐다.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어서 오히려 깨달은 순간 창피해졌다. 내가 얼마나 안타까워 보였을까. 남들한테는 내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왜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내 가족보다 나를 지지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그들과 있으면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느껴져서 행복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제고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행했다. 난 자주 혼자가 되었고 그들은 항상 각자의 꿈을 위해 바깥으로 나갔기 때문에 가끔은 이 세상에 내가 없어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외로웠다. 우리가 가까이 있다고 해서 자주 만나지 않을 것을 아는데도 말이다. 관계에 있어서 항상 일방통행이라 느꼈었다. 바라는 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이전의 상처들처럼 더는 나의 소중한 사람과 관계는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마저 욕심이라며 버리기를 나도 나 몰래 자주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외로워졌었던 것 같았다.


 그 외로움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를 찾아주던, 그리고 지지해주던 친구를 만나고 느꼈다. 마치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작은 보물 상자를 찾은 느낌이었다. 올해가 되고 삶의 전환점을 용기 내어 만든 시점에서, 매번 상담 때마다 내가 왜 죽고 싶어 하는지 찾아보자는 걸 숙제로만 여겨왔다가 이번에 풀렸다. 뽀얀 먼지가 덮인 채 열쇠도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 존재도 몰랐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다는 걸, 난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이제 알았다. 그렇게 난 제주도를 머무는 동안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는 걸 제주도를 떠나면서 느꼈다.



떠날 때의 제주도 하늘은 맑음 그리고 화창함, 그리고 내 마음은 간질간질한 행복으로 사랑이 넘칠 것 같았다



 아직도 내 꿈은 내가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직 사라지고 싶지 않다. 예전엔 언제라도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랐지만, 지금의 나는 내일이 기대된다. 적어도 지금 갑자기 내가 사라진다면 걱정할 그들이 이제는 나도 걱정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해낼 것들이 기대되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궁금하다. 이제는 나도 그들에게 자랑할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용기가 드디어 생겼다.

 이제 나는 울지 않을 수도 있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