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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줄이는 방법

타인의 말을 해석하는 것은 나의 몫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by 오월의 나무
12_오해를 줄이는 방법.png 나무 패널에 수채 색연필로 그린 그림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는 하얀 눈과 크리스마스를 바랐는데, 겨울이 되니 다시 따뜻한 봄을 바란다. 여름은 여름 대로, 겨울은 겨울 대로 계절의 매력에 푹 빠져들면 좋을 텐데 늘 없는 것을 바란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임에도.


직전 작업이 다른 때에 비해 오랜 시간을 들여서 그랬는지 이번에는 조금 수월해 보이는 작업에 눈길이 갔다. 스케치북에 그려진 수채화였는데 종이 끈에 나무집게로 걸려 있어서 그런지 한결 가벼워 보였다. 풍경도 산뜻해 보이고 봄을 바라는 마음에 그려보기로 했다. 원작의 종이와는 달리 나무판에 색연필로 작업을 했다. 바탕색을 제외하고 그림 전체를 색연필로 채색하는 것은 처음인데 물감처럼 마르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훨씬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원작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겨울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느낌만큼은 잘 담을 수 있었다.


가볍고 산뜻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풍경’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떠오른다. 대학교 다닐 때 한참 즐겨 들었던 가수 시인과 촌장의 곡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가사만 보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들을수록 공감이 가는 가사다. 가장 특별한 음식이 어떤 이에게는 이름도 낯설고 어려운, 평생 한 번 먹어볼까 말까 한 음식일 수도 있지만, 해외에 몇 개월 동안 나가 있을 때 먹고 싶다고 떠올리는 음식은 가장 보편적인 음식인 경우들이 많다. 매일 먹던 밥과 김치, 조금 특별하게는 떡볶이와 냉면처럼 익숙한 음식이지만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건 그만큼 그것이 익숙해졌고 먹고 나면 편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밥과 김치 같은 음식처럼 이런 노래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진다. 제일 아름다운 풍경이 대자연의 압도적인 위엄이나 화려한 아름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아 두는 경치 정도는 될 수 있을 텐데... 그저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있던 것들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고, 돌아오는 것을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하기야 압도적 위엄이든 화려한 아름다움이든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는 경치는 그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메시지가 담긴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계속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가사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지켜야 하는 방식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는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을 잘하지 못하고 있거나, 지켜야 하는 방식을 지키지 못하고 있을 때다. 정말 내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을 잘 해내고 있을 때는 그런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잘하고 있으니까.


또 한편으로는 그 길을, 방식을 벗어났을 때 한참 벗어났을 때도 그런 의문을 가지지 못한다. 이미 한참 벗어났기 때문에 그런 질문은 오히려 거슬리기만 하는 불편한 질문이 될 테니까. 혹은 벗어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든 합리화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질문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는 지켜야 할 것들, 선에서 벗어나기 직전이거나 의도하지 않게 선을 넘은 직후일 경우가 많다.

한참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읽고 보았던 작품 중에 ‘해리포터’ 시리즈가 있다. 남들이 열광할수록 내겐 오히려 시들해지는 묘한 삐딱선 태도가 있어서 그런지 ‘해리포터’ 시리즈와는 좀처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OTT에 업로드된 1편을 보고 난 후 시리즈 전편을 연달아 보게 되었다. 영화 곳곳에 기억할 만한 좋은 대사가 많아서 만족스러웠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이 해리에게 하는 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때론 우린 쉬운 것과 옳은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교장 선생님이지만 이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뿐. 아무리 좋은 것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배우는 건 각자의 몫이겠지만, 강요하지 않아서 안심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대사였음에도 쉽게 잊히지 않았다. 흔히 옳은 선택의 반대는 틀린 선택,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은 정답이 있는 선택일 것 같지만 기준에 따라서 얼마든지 해석이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동의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겠지만.


그러나 옳은 것과 쉬운 것의 선택은 상황이 다르다. 옳은 것을 알지만 그 선택을 하는 순간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안다면 선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려운 것과 쉬운 것 중에서는 너무도 쉽게 쉬운 선택을 하려고 할 테니까. 더군다나 쉬운 것이 항상 옳지 않은 선택일리도 없다. 오히려 옳고도 쉬운 방법이 있는데 스스로를 고통 속에 몰아넣음으로써 쾌락을 찾는 것은 정상의 범주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쉬운 것과 옳은 것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선택일 수 있다.




원래 의미는 좋은 뜻으로 사용한 것인데 한동안 내가 듣기 싫었던 말이 있다.


‘넌 참 편안한 사람이구나.’


대학교 다닐 때 학과 소모임에서 한 선배로부터 그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 그대로 나의 태도가 상대에게는 안정감 있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나에겐 그 말이 전혀 칭찬이나 덕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넌 참 편리한 사람이구나’로 해석한 것이다.


아주 실용적인 의미로 말이다.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 멋대로 해석했던 배경을 돌이켜 보면, 두 가지 이유였던 것 같다. 평소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소모임의 대표를 맡았었다. 한 가지 이유는 나름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모임을 나의 학년이 대표를 맡아야 하는 시기에 사라지도록 놓아두지 않으려는 마음,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그 선배와의 관계를 조금 더 특별하게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평소에는 만날 일이 없지만, 모임을 하면서는 종종 상의할 일이 있을 테니 다른 친구들보다는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단순한 책임감 이상으로 나를 움직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 혼자 느꼈던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혼자만의 기대였음을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누구도 억지로 시키지 않았지만 혼자 책임을 지려했고, 상대가 조금의 희망을 주지도 않았지만 혼자 기대했다. 그렇게 맡은 모임의 대표역할은 책임감과 기대만큼 힘들었다. 물론 모임을 맡았던 결과만으로 보면 나쁘지 않았다. 모임을 끝까지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힘들었지만 보람도 꽤 있었다. 지금까지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도, 형편없이 기울어 있던 편독하는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모임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절반의 기대감은 보기 좋게 깨졌고, 딱 그만큼 마음이 아팠다.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때 나는 그 선배의 편안함을 편리함으로 오해했던 것 같다. 나의 일방적인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상대방의 덕담을 왜곡하고 열등감과 지적인 허영심에 뒤엉켜 내 멋대로 해석했다. 만약 내 자존감이 튼튼했었다면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것에 실망은 했을지언정 스스로를 남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을 텐데...


시간이 흘러 상담을 공부하면서 알았다. 그때의 나는 자존감이 많이 낮았었다는 것을. 선배가 나에게 했던 ‘편안한 사람’이라는 말은 결코‘편리한 사람’이라는 실용적인 의미가 아니었음을. 그리고 한편으로 고마웠다. 그런 편안한 사람이라는 말이 상담을 공부하고 상담을 하면서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었는지 모른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편안한 거울이 되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편안함을 잘 유지하고 키워갈 수 있다면 상담자로서 그만한 미덕이 어디 있겠냐며 스스로를 응원하는 마음도 생겼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편안하지 않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음도 알지만, 적어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사람일 수 있음을 알았으니까.


그냥 내 모습 그대로여도 누군가에게는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나의 속성 때문이기라기보다는 보는 사람이 나를 대할 때 느끼는 상태를 비춘 것이기에. 그러니 적어도 당시 그 선배가 나를 대할 때는 참 편안한 상태였구나, 내가 편안한 거울이 되어주었구나를 알 수 있게 해 준 것에 새삼 고맙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돌아오는 모습. 내가 어디에 있든 나로서 존재할 때 그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가 싶다. 물리적인 장소가 어떻든 간에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고, 누군가보다 더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이야 말로 정말 내가 있어야 할 풍경이 아닐까 싶다. 편안함이든 편리함이든 누군가의 말에 갇히지 말고, 해석 오류로 흐르지 않고 내가 온전히 내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 어떤 모습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


봄에는 새싹과 화사한 봄꽃들을, 겨울에는 하얀 눈과 쌀쌀한 바람의 매력을 만끽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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