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디 글쓰기 철학
광고의 아버지 데이비드 오길비는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지지만,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의 의미를 완성하는 것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독자를 사로잡는 글은 어떻게 써야할까? 독자 중심의 글쓰기 원칙을 대통령의 글쓰기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을 앞둔 연설에서 다양한 청중의 입장을 고려했다.
이 연설을 지켜보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첫째, 파병을 요청한 미국.
둘째, 우리 건설사가 많이 진출해 있는 이라크 당국.
셋째, 파병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넷째, 당사자인 파병 장병.
마지막으로 파병 장병의 가족이었다.
여러 대상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는 각기 달랐다.
첫째, 미국에게는 '이라크는 악의 축이다. 이라크 전쟁은 정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둘째, 이라크 당국을 향해선 '이라크의 선량한 국민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그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되찾아주러 왔다.'
셋째, 파병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에는 '명분 없는 전쟁인 것은 맞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현실을 무시할 순 없는 것 아니냐.'
넷째, 장병들에게는 '열심히 싸우고 돌아오라'
다섯째, 장병 부모들에게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무사히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주어야 했다.
대통령은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명분을 중시해온 정치인입니다. 그런 내가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나의 결정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명분에 발목이 잡혀 한미관계를 갈등관계로 몰아가는 것보다,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주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이번 파병은 '참전'에서 '복구와 구호활동'이라는 새로운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라크 국민이 하루빨리 평상의 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다녀오기 바랍니다. 이라크 국민의 가슴속에 한국 국민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심어주고 오세요."
이처럼 누구에게 말을 전하는지, 그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 연설문 또한 마찬가지다. 직원, 언론사 기자, 고객, 주주 등 다양한 청중을 고려해 각각의 입장에 맞는 메세지를 담아야 한다. 이들 각각에 대한 연구는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다. 독자의 기대와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 설득력 있는 글쓰기의 출발점이다.
전문용어에 돼먹지 않은 알은체는 자제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쉬운 언어와 비유로 복잡한 주제를 설명했다. 햇볕정책을 설명하는 데는 이솝우화가 동원됐다.
"바람과 해가 나그네의 옷을 누가 먼저 벗기나 내기를 했습니다. 바람은 강제로 벗기려 하나 실패했습니다. 해는 따뜻한 햇볕을 쬐어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합니다. 햇볕정책이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문 용어를 줄이고 친숙한 비유를 사용하면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독자에게 멋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돕는 마음이다.
읽는 사람이 글을 읽고 나면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바가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횡설수설한 글은 읽는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길고, 느끼하고, 뜬구름 잡는 글은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단순하고 파격적인 언어로 요점을 명확히 전달했다.
"마누라랑 자식 빼고 다 바꿔라."
글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뚜렷하게 드러나면 독자에게 강력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목적이 분명한 글이야말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좋은 글의 기준이 된다.
글쓰기는 나와 독자를 연결하는 일이다.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내 표현이 어렵지는 않았는지, 너무 복잡하게 말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항상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글을 작성하고, 반복과 비유를 통해 메시지를 더욱 분명히 전달하고자 했다.
"글을 읽는 사람을 탓하지 말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더 쉽게, 더 친근하게 해야 한다."
결국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다.
-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