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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할머니의 속사정

by Adela

민아네 반 장미 할머니는 늘 예쁜 하얀 레이스 장갑을 끼고 다니셨다. 색은 바뀔 때도 있었지만 늘 얇은 장갑을 끼셨다. 똑 부러지는 말투에 숙제도 늘 잘해 오시는 모범생이었다. 수업 중에는 대답을 잘해주시는 편이었지만 다른 학생들과는 말을 잘 섞지 않으셨다. 쉬는 시간에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계셨다.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들에게 먼저 다가오고 말을 거는 어르신들이 많았기에 민아는 장미 할머니가 내심 신경 쓰였다. 간식 시간에는 간식을 한 입도 드시지 않을 때도 꽤 있었다. 민아도 궁금했다. 저녁을 드시고 오시는 걸까. 혹시 간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신 걸까. 늘솔학교가 아직 어색하신 걸까. 선생님들끼리 간식을 준비하며 이런 의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정리하는 민아에게 장미 할머니가 다가왔다. 민아는 수업 첫날에 질문이 있거나 상담할 것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말씀드려 두었다.


”선생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장미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상담을 신청하셨다. 장미 할머니는 그동안 수업 끝나고 민아에게 말을 걸었던 적이 없었기에 민아는 조금 놀랐다. 학생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복도로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제가 사실 당뇨가 있어요. 그래서 손도 조심해야 해서 이렇게 다니거든요..”


장미 할머니가 손을 조심스럽게 들어 보여주시며 이야기했다.


“아.. 손을 보호하려고 끼시는 거였구나.. 혹시 그럼 수업 들을 때도 불편하신 것 있으셨어요?”


“제가.. 간식 준비해 주실 때 정말 감사하기는 한데요. 먹는 것도 참 조심해야 되거든요.. 가끔 단 간식이 나오면 맛있어 보이는데 저는 먹으면 안 되는 게 많아요.. 그래서 간식을 권하셔도 먹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조금 이해 부탁드려요.”


당뇨가 있으셨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교사들 중에서도 민아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민아는 상담하는 짧은 시간 동안 간호학과 학생으로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해서 기억해 내려고 노력해 보았다. 지난 학기에 학교에서 당뇨에 대한 보건교육 자료도 만든 적이 있었다. 그게 도움이 될 때가 있구나.


그래서 간식을 못 드셨구나. 장갑도 그래서 항상 끼고 계셨구나. 장미 할머니의 간식도, 옷차림도, 행동도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이해가 되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간호 전공인데요.. 들어보니 여러 가지로 당뇨를 잘 관리하고 계신 것 같아요. 간식도 단 종류가 많아서 조심하시는 게 맞는 것 같고요. 제가 선생님들에게도 살짝 이야기해서 간식으로 조금 더 건강한 메뉴도 생각해 볼게요.”


“감사해요.. 간식은 다 같이 준비하실 텐데 너무 신경 쓰지는 마세요. 제가 조심하면 돼요. 그래도 얘기하니까 마음이 편하네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장미 할머니가 처음 보는 환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동안 마음 졸이고 계셨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민아는 그동안 혹시 장미 할머니가 조금 까다로운 분일까 생각한 적도 있어 죄송해졌다.


‘그것도 모르고.. 정말 겉으로만 보고 알기 어려운 일이 많구나.’


민아는 앞으로는 조금 더 한글교실 어르신들을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형식적인 상담이 아니라 속마음을 보여주실 수 있게 다가가고 싶었다. 장미 할머니와의 상담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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