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교실의 청일점 영하 할아버지는 늘솔학교에 몇 없는 남자 학생이었다. 영하 할아버지는 늘 진지한 표정으로 맨 앞에서 수업을 들으셨다. 첫 수업부터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선생님! 이리 주세요. 제가 나눠드릴게요.”
수업 자료용으로 뽑아온 종이들을 나눠줄 때 영하 할아버지는 늘 앞장서서 민아를 도와주셨다. 민아가 오기 전에 칠판을 미리 지워 주실 때도 있었다. 반장을 따로 뽑지는 않았지만 반장 역할을 해 주셨다.
누구보다 학구열이 높은 학생이기도 했다. 수업 후까지 남아서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시기도 했다. 조금 느리지만 또박또박 글자를 배운 대로 쓰려고 노력하셨다.
그런데 사실 영하 할아버지는 열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에 자주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공부를 하다가 턱에 손을 괴고 지그시 눈을 감고 계시기도 했다. 깜짝 놀라며 깨어나기도 했다. 강의실 맨 앞에서 수업을 하니 생각보다 학생들 모습이 다 잘 보였다.
민아는 수업을 하다가 영하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면 가끔씩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하신 것 같아서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옆에 다가가서 살며시 깨워드린 적도 있었지만 그냥 내버려 둔 적도 있었다.
늘솔학교 선생님들은 맡은 반 학생들을 한 학기에 한 번 이상 상담을 해야 했다. 영하 할아버지와도 상담할 차례가 되었다. 민아는 혹시 학교 다니기에 힘드신 점이 없는지 여쭤보았다. 수업 시간에 매번 졸려하시는 모습에 낮에 바쁘신 것 같다고 짐작했다. 혹시 몸이 힘들지는 않은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 제가 학교를 요새 정말 재밌게 다니고 있는데요. 낮에는 딸네 부부가 하는 가게를 도와주고 있어요. 그러고 집에 잠시 갔다가 버스 타고 그다음에 또 지하철을 타고 나오는 거예요. 근데요, 저희 집이 여기 학교랑 꽤 멀어가지고.. 1시간 넘게 걸려요.”
영하 할아버지의 사연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 그래서 수업할 때 자주 졸려하셨구나..’
영하 할아버지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멀리 오시느라 힘들지 않으세요?”
“조금 피곤하기는 해요. 선생님 수업 때 자꾸 눈이 감겨서.. 죄송합니다. 제 맘대로 안 되네요 허허.. 그래도 한글 배우는 게 정말 좋아요. 정말요.”
“재밌게 다니신다니 다행이에요. 이대로 하면 검정고시반도 금방 가실 수 있겠어요.”
첫날부터 상급반에 가고 싶은 포부를 밝혔던 영하 할아버지였다. 한글 교실을 잘 마치고 나면 가능해 보였다.
“예예.. 제 꿈이에요. 졸업장 받아보는 거요.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제가 응원할게요. 피곤하고 힘드셔도 지금처럼 꾸준하게만 해봐요. 수업 시간에 잠은 쪼금만 줄이구요 하하”
수줍은 듯 웃으시는 모습에 민아도 같이 웃었다. 이런 날이면 늘솔학교에 함께 하는 보람이 느껴졌다. 영하 할아버지의 꿈이 구름처럼 두둥실 떠오르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