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식지를 준비해요

by Adela

늘솔학교의 12월은 한 해 활동을 돌아보는 소식지를 내는 달이다. 매년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힘을 합쳐 몇 달에 걸쳐 소식지를 한 땀 한 땀 만들어내고는 했다. 표지를 디자인하는 것부터 소식지에 들어가는 글 하나하나까지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소식지에는 대부분 중고등 검정고시반 학생들의 글이 실렸다. 물론 중고등 검정고시반 학생들이라고 글쓰기가 쉽지는 않다. 한글 교실 학생들보다 글씨 쓰는 것과 읽는 것에 익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글쓰기는 많이 접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사실 교재나 문제집의 글을 읽는 연습이 수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도 늘솔학교를 여러 해 다닌 분들은 글쓰기 실력이 점점 늘어갔다. 매년 행사와 소식지를 준비하면서 짧게라도 글쓰기 연습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식지에 실을 글은 주제도 같이 정하고 글을 내고 싶은 사람도 자원을 받았다.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적극 도움을 드렸다.


“저희 전시회에 냈던 것도 소식지에 실으면 어때요?”


누가 먼저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 학생분들이 소식지에 개교기념일 행사를 위해 쓴 글도 실어보자고 제안했다. 다들 개교기념일 전시회에 낸 글들에 애정을 가지고 계신 듯했다. 이번 행사 때 최대한 많은 학생들의 글을 전시했기에 소식지에 실을 수 있는 글도 많았다. 전시회에 시화를 냈던 학생들도 몇 명 있었기에 소식지를 잡지처럼 재밌게 꾸며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민아는 소풍날 이후로 소식지에 한글 교실도 참여하자고 여러 번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꺼냈다. 민아의 응원에 힘입어 한글 교실 대표로 전시회에 참여했던 점자할머니의 시화도 소식지에 실리게 되었다.


“한 명만, 아니 두 명만 더 참여해 보면 어때요? 소식지는 나중에 읽어봐도 좋은 추억이 될 거예요.”


민아는 수업 시간마다 어르고 달래듯 매번 소식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기를 한 달 반이 지나고, 드디어 점자 할머니 외에도 두 명이 소식지에 글을 싣게 되었다. 영하 할아버지와 장미 할머니가 늘솔학교를 다니는 소감에 대해 쓰기로 했다.


처음에 쭈뼛쭈뼛하던 분들이 소식지 글쓰기에도 자원하시다니. 민아는 벌써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민아가 종종 일기를 쓰는 숙제를 내드렸기에 일기를 쓰듯 초안을 써보시라고 조언을 드렸다. 어떤 보석 같은 글이 나올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한글교실 학생들의 글을 소식지에 싣기로 한 후 학생들과 민아는 함께 차근차근 초안을 준비해 보기로 했다. 민아는 일단 일기를 쓰듯 편안하게 글을 써 보시도록 했다. 맞춤법이 헷갈려도 주저하지 말고 일단 글을 한 문단이라도 완성해서 가져와 달라고 이야기했다.


2주 정도 흘렀을까. 영하 할아버지가 먼저 준비해 온 글을 보여주셨다. 한글 교실 수업이 끝나고 영하 할아버지가 노트를 들고 민아에게 다가왔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써도 되는지... 일단 선생님 보여드리고 물어보려고 가져와 봤어요.”


“벌써 가져오시고 고생하셨네요. 제가 잠깐 읽어 보고 말씀드릴게요!”


민아가 노트를 받아 들었다. 연필로 여러 번 지웠다가 썼다가 한 흔적이 선명히 보였다. 얼마나 많이 고민을 하셨을까.


나는 늘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릴 때는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학교를 갈 수 없었다. 항상 일을 해야 했다. 늘솔학교에 오면서 한글을 배웠다. 기역, 니은부터 다 배웠다. 나도 이제는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소식지에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감사하다.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영하 할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졌다. 민아는 우선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고쳐 드렸다. 잘 보이게 펜으로 표시를 해드리면서 설명을 해 드렸다.


“잘 쓰셨어요. 그런데 소리 나는 대로 쓰면 안 되고 맞춤법을 맞춰야 해서 이렇게 고쳐 보면 좋겠어요. 여기 표시도 해 드릴게요. 그리고 아직 완성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더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세요?”


“네 늘솔학교에서 배운 것도 쓰고 싶고 우리 소풍 간 이야기 같은 것도 쓰고 싶어요. 그래도 되나요? 무슨 말을 써야 할까 고민이 됐어요.”


“그럼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글인걸요. 소풍이나 전시회 때 있었던 일이나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쓰셔도 좋을 것 같아요. 꼭 특별한 날 있었던 일 말고도 늘솔학교를 다니면서 드는 생각이나 느낀 점, 어떤 감정이 드는지 쓰셔도 좋아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조금 알 것 같네요. 내가 느낀 점.. 내 생각을 더 써볼게요. 감사합니다.”


민아는 영하 할아버지가 이미 방향을 잘 잡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하 할아버지의 생각만 더 자세히 쓰셔도 더 좋은 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글 교실에서 글쓰기도 같이 연습하게 되다니 기대 이상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같이 천천히 다듬어봐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