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던 것처럼
10월 초에는 공휴일이 여러 번 있었다. 어제는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은 후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돌고 왔다. 시원해진 날씨에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은 저녁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조금 멀리까지 걸어가다 보니 동네에 못 보던 카페와 식당이 몇 개 보여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느낀 점이 있다.
'아, 이게 이렇게 수월한 일이었다니. 그리고, 편히 걷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몇 년 전, 다리가 다쳤을 때는 집 앞 언덕길을 내려가는 것도 힘들었다. 발목부터 온몸으로 올라오는 통증을 이기지 못해 얼굴을 찌푸리고 숨을 연거푸 내쉬며 걸어가던 길이었다. 한 번은 재활 겸 운동한다고 집 앞에 나갔다가 하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절뚝거리며 계단으로 40분 넘게 걸려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는 범위가 넓어졌었다.
그러다 올해 초 수술을 하고는 또다시 체력이 바닥이 되었다. 또, 수술부위가 아파서도 잘 못 걸었더랬다. 수술 후 한 달 이상 배를 움켜쥐고 허리는 구부정하게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났다. 한 번 짧은 외출을 하고 오면 체력이 달려 1~2시간 이상 깊은 낮잠을 자야만 했다.
어제는 허리를 펴고 내가 원하는 속도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다. 물론 자연스럽게 걸은지 또 몇 달 지난 상태지만 그런 내 모습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언제 또 나도 모르는 새 시간이 지나가서 다시 회복이 되었구나 싶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두 번의 환자 경험을 하는 동안 이유는 달랐지만 각각 답답하고 힘들어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을 살고 있으니. 옛말처럼 시간이 약인가 보다.
수술 후 관리는 아직 진행 중이고 다음 달에야 외래 진료를 다시 받으러 가지만 이제는 두렵지만은 않다. 글을 쓰며 뒤돌아보는 시간도 힐링이 되어준 것 같다. 아직 남아 있는 회복의 여정도 잘 해나가길 다짐해보며 브런치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