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체험 내러티브(illness narrative)는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그것의 원인, 전개 과정, 치료나 질병 경험, 질병으로 인한 심리사회적, 경제적 어려움 등과 같은 질병에 관련된 모든 것을 말이나 글로 풀어낸 것을 의미한다.
즉, 질병체험 내러티브는 한 개인이 질병에 대해 경험한 총체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것은 의료인이 질병의 사실적 정보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경험하는 환자의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 질병에 대한 환자가 갖는 감정과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특히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서 청자는 이야기의 대상, 내용, 환경 등을 마음속에 그려보면서 상상하게 되고 이것은 이야기와 유사한 상황의 연결을 촉진시킨다.
이러한 질병체험 내러티브의 범주는 환자의 진술뿐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친구, 이들을 치료하는 의료인의 진술이나 기록을 포함하며 질병체험 수기, 비디오, 오디오 또는 실제 환자의 수업참여 방법, 돌봄 경험 글쓰기, 사례보고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될 수 있다.
이렇게 환자가 직접 체험한 질병 경험에 대한 이야기인 질병 내러티브 (illness narrative)에 대한 관심이 연구와 임상 분야에서도 커지고 있다. 이는 환자에 대한 신체적 측면뿐 아니라 신체, 심리, 사회적인 측면의 통합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인본주의적 접근법이다. 예전 대학원 수업에서 처음 배웠을 때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졌지만 이제는 실질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원래 노인의 건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왔다. 그러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젊을 때 겪는 건강 상태가 나중에 나이 들어서까지 건강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배웠다.
또 나 자신이 사고를 겪기도 하고 여러 진료과를 다니며 병원을 다닐 일이 생겼다. 주위에서 20대여도 다양한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지인들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몇 년 전부터는 ‘젊은 환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사실 아프다는 이야기는 쉬쉬 하듯 숨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이전 글에도 썼듯 젊어도 아플 수 있지만 나이가 젊으면 그 사람의 아픔이나 질병에 대해 축소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젊으니까 금방 나을 거야.‘ 혹은 ’아직 젊은데 뭘 그래.‘ 같은 이야기가 흔하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조금은 달라졌다. 자신이 겪은 투병 생활과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 형식의 책이 많이 나왔다. 브런치를 통해 나온 책도 있는데, 대상 수상작 중 정지음 작가님의 <젊은 ADHD의 슬픔>은 성인 ADHD를 가지고 살아가는 20대 직장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외국에서는 보다 예전부터 이러한 질병 체험 서사를 담은 책이 많이 출판되었다. 처음에 이러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자신의 아픔과 내밀한 속마음을 글로 솔직히 내비치는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솔직한 이야기이기에 읽는 사람들이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또 아프다는 것이 숨기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구나 스스로 혹은 주위 사람들을 통해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해 준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 환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직접 경청하거나 글로 읽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질병과 삶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3분 진료’가 흔한 환경에서 짧은 시간 환자를 만나는 것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할 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
예전보다 환자 본인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반갑다. 어떤 기회가 되어 나의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오픈하면 그들도 내가 몰랐던 질환과 투병기를 털어놓는 경우도 많이 접하게 된다. 주위에 조용히 지내고 있을 젊은 환자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응원하고 싶다.
참고문헌
황임경 (2011). 생명의료윤리에서 서사(narrative)의 역할과 의의. 생명윤리, 12(1),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