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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Sep 01. 2023

비움에도 때가 있다


미니멀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물건 비우기에 열성적인 편은 아니다. 정리 정돈을 잘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생필품 외에는 새로 들이는 물건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집안이 어지럽혀지지 않을 뿐이다. 여전히 집안 구석에는 아직 정리하지 않은 물건들이 쌓여 있다. 그래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유는 물건을 비우고 정리하는 행위가 생활의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란 행동 이전에 단순한 사고방식이다.


그런 내가 물건에 대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입장은 ‘버리지 못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건 없으므로. 허나 살아생전에 저마다 버리지 못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물건 하나쯤은 있다. 아무리 버리는 데 도가 튼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물건은 대개 추억 속의 물건일 때가 많다. 그 자체로 추억의 상징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 타인의 마음을 혹은 사랑하는 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추억이 깃든 물건을 선뜻 버리지 못한다. 손에 잡히는 것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투영하는 영혼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하기에. 나 역시 그런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내가 비우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기장


어릴 적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일기장밖에 없어서 크게 곤란하지는 않았다. 그림일기는 사진을 찍고 버렸고 초등학생 때 쓴 일기장들이 남아 있다. 버리기 전에 한 번씩은 읽어 보려고 했으나 귀찮아서 그대로 방치하고 말았다. 이쯤이면 그냥 안 보고 버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숙제로 억지로 쓴 일기라면 굳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흔히 일기장을 버릴까 말까 고민한다. 비단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일기를 정리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은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잊고 있던 일을 다이어리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그날의 일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까지도. 괜히 들춰서 구석에 있던 아픈 기억과 사라진 마음을 오늘로 끌어오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망각도 필요하다. 기억과 망각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자. 일기 속에 묻어 둔 기억이 훗날을 위해 남겨 두고 싶은 기억인지.


만약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고 일기장이 보물 1호인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일기는 소중하게 보관하면 된다.



일기장 정리 방법

원본 간직하기

스캔본 또는 사진으로 보관하기

버리기





사진


내가 가장 정리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사진이다. 처음엔 스마트폰에 있는 저장된 사진을 올릴 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사진이 더 늘어나 버렸다.


한동안 매일 50장 지우기 챌린지를 했었다.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한 번에 많은 사진을 정리하려면 어렵다. 매일 조금씩 지우는 게 더 수월하다. 우선 천 장 이하로 줄이는 게 목표다.


사실 정리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게 우선이다. 물건을 비우는 것보다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데 심사숙고하는 것처럼, 사진도 신중하게 찍을 필요가 있다. 특히 똑같은 음식 사진을 주의하자. 요즘은 필요한 사진은 한 장만 찍고 바로 지우려 하고 있다.


인화해서 가지고 있는 사진은 어릴 때 앨범 말고는 몇 장 없다. 만약 100장, 10장, 1장의 사진만 남긴다면? 어떤 사진만 남길지 한 번 숙고해 봐야겠다. 책 《나는 미니멀 유목민입니다》에서 본 말이 떠오른다. 보고 싶은 이의 사진은 언제든 바로 꺼내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



사진 정리 방법

조금씩 정리하는 습관 들이기

중요한 사진은 따로 보관하기





흔적


세상을 떠난 강아지 옷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당장은 버리기가 싫은 것이다. 하나만 남겨 두고 정리하려고 꺼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움이 어려운 게 아니라 손을 대는 일이 심적으로 어려운 단계인 것 같다. 그대로 두어야만 하는 물건과 시간도 있는 법이다. 기꺼이 보낼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가능하면 유기견 보호소에 전달하고 싶다.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비움에도 때가 있다



무조건 버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비움보다 물건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형식과 수단이 목적이 되어 추억마저 함부로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비움이 반드시 쾌감과 만족과 평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섣불리 비우려다 또 다른 마음의 짐을 안게 될지 모른다.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영역의 물건들에 대해서는 애써 비우거나 버리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버리지 못하는 물건도 언젠가는 너무도 쉽게 버릴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 그때 가서 비우면 된다. 무엇이든 때가 있다는 건 비움에도 통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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