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랜서에서 공무원으로 : 저작권 경계에서
"작가님 그동안의 경력이 있으신데, 저희가 연봉을 맞춰드리기 쉽지 않아서,
혹시 2000자 분량의 글을 편 당으로 계산해서 드리면 어떨까요?
일단 프리랜서로 저희와 함께 한 번 해보시면...."
"아... 네... 그간의 경력이 많아도
블로그 글은 처음이니
저도 경험 삼아 한 번 진행해 볼게요..."
이렇게 시작된 병원 블로그 글 작가 알바.
방송국에 비하면 요즘 말로 '귀염뽀짝'하게 적은 원고료였지만,
블로그 글을 전문적으로 써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급변하는 콘텐츠 시대, 나의 새로운 부업.
블로그 글 작가 일이란
병원 측에서 아이템과 추천 검색어를 정해 보내주면,
2000자 이내로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함께
관련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 글을 작성하는 작업이었다.
의료 정보는 대체로 주요 대학병원 홈페이지나 의료 관련 또는 의사 블로그에서 찾아 썼다.
스토리텔링이 될 만한 환자 사례도
병원에서 제공받는 것이 아닌
규모 있는 온라인커뮤니티나 병원사이트에서 직접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내가 쓴 글이 바로 인터넷상에 게재되어
질병을 치료하는 시스템과 의학 지식을 알린다는 점에서
꽤나 의미 있는 일로 느껴지고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약 200편가량 썼을 무렵,
일을 시작한 지 반 년쯤 지났을 때.
동일한 검색어에 비슷한 주제로 반복되는 구조 안에서 창의적으로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어제 쓴 글을 새롭게 다시 써야만 한다.
같은 주제, 같은 단어를 지속적으로 반복해 가면서 말이다.
내용상에 반복성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병원 블로그 담당자에게 여지없이 연락이 왔다.
일부 수정 또는 재작성을 요구해왔다.
그럴 때면 전문서적도 뒤적여보고, 다른 병원 블로그도 들락날락, 머리를 있는대로 쥐어짰다.
어떻게든 더 신선하게, 보다 창의적으로!
2000자의 글자수를 채워보려고 애썼다.
사례자의 스토리에서 특이점을 찾아내
이야기를 덧붙이고 꼬아도 보고 어찌저찌 풀어내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시 3개월이 지났다.
갑자기 블로그 담당자가 바뀌었다.
병원 블로그에 접속하니 글 제목과 뉘앙스가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었다.
로봇이 말하는 듯한 어투,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되지 않는 비문.
주어에 어울리지 않는 "했어요", "그랬어요", "아니었어요"로 맺어지는
천편일률적인 마무리.
사례자와 의료 정보는 내가 쓴 게 맞았지만,
전체적인 구성이 뒤엉켜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 주 뒤, 원고 작성을 잠시 멈춰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아, 올 게 왔구나.
말로만 듣던 Chat GPT의 등장에 밀려나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간 내가 작성한 블로그 글은 Chat GPT에 의해 학습되고 있었고,
내 글의 구성과 형식, 어투까지 똑같이 베껴지고 있었다.
제목만 살짝 변경해 Chat GPT에 글 작성을 요청하면, 내가 작성한 구성과 형식대로 2000자의 글이 몇 초만에 완성되어 나왔을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어투로 쓰인 블로그 글은 단 두 편만 읽어봐도 금세 질력이 났다.
그저 "나는 2000자를 채울 뿐"이라고 말하듯, 글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물론 그 글의 중심 내용, 구조, 구성은 나의 것이다.
일명 '포맷'이라고 불려지는 부분이 차용된 것이다.
하지만 병원 측에 내 글의 포맷에 대한 저작권 문제를 항의하긴 어려웠다.
관련 규정 없이 프리랜서 계약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편당 받기로 한 원고료만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OO병원 블로그 글작가 위촉 증명서>로 나의 그간 업무를 가볍게 증명받고
1년 만에 블로그 글작가 일을 중단했다. 아니 중단됐다.
이 경험은 앞으로 내가 '글을 써서 밥벌이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남겼다.
온라인상의 블로그, 브런치 스토리와 같은 '글쓰기 플랫폼'은
누구나 쉽게 접근해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발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낮은 플랫폼일수록, 즉 검증 절차랄 것이 없는 영역일수록
저작권 등 작가로써 보호 받아야 할 존중과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작성한 글뿐만 아니라
내가 만든 형식(포맷)으로 만들어질 미래의 글까지도.
온라인 공간에서의 저작권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어떻게 운용되는 곳(시스템)이냐에 따라
저작권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예를 들면 프리랜서로 일하는 콘텐츠 작가로서의 나,
작가라는 경력으로 공공기관에 임직해 공무원 신분이 된 나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전에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시나리오 대본을 집필하면서
대본 저작권에 대한 일정 부분은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관리해 주었다.
이는 방송작가로 소속 정회원에 가입되면 보호받을 수 있게 되는 과정으로,
메인작가로서 일정 편수 이상의 작품을 검증 받은 이라면 누릴 수 있다.
이 같은 경력을 인정받고 난 이후부터는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경력직공무원으로 이직하여 공공기관 내에서 글을 쓰다 보니,
방송국에서 보호되던 나의 저작권은 이곳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공무원이 만든 모든 건 국가 소유입니다"
단 한 마디로 '저작권이 존재할 수 없는 시스템' 임이 설명되었다.
동일하게 영상 대본을 쓸 때도 대본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기관과 시민의 것이 되었다.
물론 공공의 영역에서 나의 능력을 발휘하고 보람을 느끼고, 또한 월급을 받긴 했다.
하지만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시정소셜미디어(SNS) 상에서 서포터스로 활동하고 있는
일반직 공무원들의 블로그 글을 대신 써주기를 요구받은 것이다.
나의 업무 가운데 하나가 SNS콘텐츠 기획 및 운영이기는 했으나,
일반직 공무원들의 대본을 대신 써주는 일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었다.
"공무원들의 글은 딱딱하고 재미가 없으니,
방송작가 출신인 내가 쓰는 것이 보기 좋다"는 이유였다.
프리랜서 경력은 공무원 경력 가산을 받지 못한다는 규정에 따라
지난 10년 간의 경력을 제하고 들어간 조직이었는데,
어째서 일을 할 때는 방송작가 경력을 활용하라는 말인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공무원이니까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규정이라면서도,
방송작가 출신이니까 '글'에 관한 일은 내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일의 효율성을 감안해서 일정 부분 개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선에서 요구를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불합리한 상황에 쳐한 억울한 경우
만약 내가 방송작가의 신분이었다면,
저작권료도 받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했다.
저작권료라는 단어를 실제로 쓰진 않았지만,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다.
"나는 원래 돈 받기 전에는 글을 안 써요. 그래서 일기도 안 쓴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공기관 사람들은 좀처럼 '글이 갖는 힘과 글쓴이의 권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2020년 한국방송작가협회로부터 <방송작가의 권리>라는 제목의
470페이지의 큰 사전과도 같은 책을 배송받았었다.
홍승기 변호사가 쓴 책으로 방송작가의 집필계약과 저작물의 요건,
저작권의 보호에 대한 법률 해석과 외국의 사례가 담겨 있는 소중한 자료다.
그동안 나는 사실 이 책을 단 한 번도 끝까지 읽어보진 못했다.
단, 이 책에 따르면 정치인의 연설에 이용, 공공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에 따라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언급되었다.
시민의 세금이 바탕이 되어 생산된 저작물이기 때문에
시민의 이용에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취지에 따라 공공기관에서의 나의 글은
모두 무료로 공개 및 배포, 또 재배포되고 있다.
프리랜서 작가에서 공무원이 되면서 '저작권'을 보호받던 신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신분이 되긴 했지만,
고용의 안정성, 공무를 수행하는 이로써의 복지혜택 등 다른 영역에서 보호를 받는 것으로 대충 억울했던 마음을 정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강력하고 힘 있는 글'은 쓰라고 하면서
최소한의 '글 주인'으로써의 권리는 주지 않은
조직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아쉽다.
글 쓰는 일은 여전히 재밌고 감사한 나의 업이지만,
나는 여전히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공공의 글쓰기 영역에서의 나의 저작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또 온라인 영역에서 사라지고 있는 내 글에 대한 주권은
누구에게 따져 물어야 할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