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시작 일지 - by 도푸지
5년 전 저는 제가 지금 채용 담당자가 되어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다큐 PD를 꿈꾸던 제가 IT기업에서 채용 담당자가 되기까지, 그 고민의 주요 내용과 못다 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나도 회사원이 될 줄 몰랐지!
고등학교 때부터 오래 간직하던 꿈
고등학교 때부터 간직하고 있던 꿈이 있었습니다. 교양 PD가 그것이었죠. 특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말입니다. 왜 다큐 PD냐고 물으신다면, 인간 삶에 대한 고찰, 사회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촉매... 이런 거창한 이유는 면접용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시청률에 별로 구애받고 싶지 않아서였죠 (그땐... 다큐 PD란 시청률과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말, 내가 알리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렌즈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응당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소소함을 기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재질은 또 아니었다죠...). 굳이 따지자면 EBS 다큐프라임에 나오는 방송들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참고로 지금까지 마음속 최애 다큐 프로그램 부동의 1위는 EBS <60세 미만 출입금지>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방송과 비슷한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PD가 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대학에 와서도 학내 방송국 활동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취재를 하고, 사람도 만나고, 뉴스를 만들고, 다큐도 찍으며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2년동안 이 일을 하다보니 마음 속에 PD로서의 확신보다는 불안이 가득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TV를 보지 않는 사람들, 바늘구멍 같은 TO, 밤낮 그리고 주말 없이 일에 빠져있어야 한다는 것... 다양하고 중요한, 현실적 고민들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제 전공은 철학과 사회학입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마케팅 학회를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불안에서 시작한 첫 인턴, 근데 갑자기 분위기 인사?
그러나 1년 간 직간접적으로 맛본 마케팅은, '이거다!'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분명 재밌긴 했지만, 평생을 이걸 하고 살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물음표가 찍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시 언론고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 한켠 가득 자리 잡은 불안감을 외면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사기업 취준과의 병행. 그러다 현 회사에서 인사팀 체험형 인턴 공고가 뜬 것입니다. 솔직히 인사에 대한 지식과 관심은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채용 공고의 필수 경험 및 우대사항 부분에 콘텐츠 제작에 강점이 있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것, 세심함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는 내용을 보면 꼭 저를 부르는 것 같았답니다! IT업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 IT 대기업이라는 네임 밸류 등의 이유와 함께 결국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덜컥, 제 첫 인턴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6개월간 채용 업무를 처음 접했는데 생각보다 저랑 잘 맞았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채용 업무를 하면서 재밌기도 했고, 결국 인사 업 특성상 구성원, 인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게 좋았습니다. 사람 좋아서 인사하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비즈니스 파트너가 잘 되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심, 사랑이 기반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달까요? 원래 하고 싶던 시사교양 PD와도 이 부분에선 비슷하고, 그런 점이 제겐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영입 과정 운영뿐만 아니라 채용 브랜딩 혹은 채용마케팅 활동도 보조했는데, 이때 2년간 쌓아왔던 콘텐츠 제작 경험들은 생각보다 더 큰 저만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채용 콘텐츠를 만들게 되는 기회가 왕왕 생겼기 때문이죠. 인사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경험들도 어딘가엔 반드시 쓸모가 있다는 걸 이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저는 가장 가고 싶었던 EBS PD 최종면접 탈이라는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분명 탈락의 쓰라림도 컸지만, 그때부터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 반드시 PD를 하고 싶었던 걸까?'라는 생각도 들고, EBS 혹은 KBS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의 PD 생활은 잘 그려지지 않기도 하며 실은 마음속에서 PD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저는 조금씩 PD직은 내려놓고, 인사 직무로 포커싱하며 서류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취뽀했지만, 다시 인턴입니다 : 연어처럼 첫 회사로 돌아간 이유
21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 저는 덜컥 B2B 기업 채용팀에 붙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규직으로 근무한 지 또 한 달이 되었을까요? 저는 현 회사로 다시 오게 될 결심을 했습니다. 무려 연계형 인턴으로, 다시 말입니다. 정규직을 버리고 연계형 인턴으로 입사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전환 가능성 때문이었죠. 제겐 첫 회사로 돌아가는 게 꽤나 도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현 회사에 전환형 인턴으로 재입사를 결정하게 된 것은, 제가 지향하는 가치와 회사의 문화,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합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인사와 같은 스태프 조직은 산업에 영향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가 생각보다 제게 중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좀 더 소비자들, 혹은 나아가 사람들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회사 가고 싶다'라는 걸 B2B 회사를 다니며 처음 느꼈기 때문이죠.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사람들을 자꾸 채용을 하고 있는가? 이런 고민과 의미가 컸던 것입니다. 그리고 체험형 인턴을 하며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의 합도 너무 좋았고, 훌륭한 동료들 옆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입사원이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죠
신입사원이 되면 조금 편해질 줄 알았습니다. 물론 전환이 되어서, 정규직이라서 안정된 면도 있었지만 반대로 걱정도 엄청 많았습니다. 이제 진짜 커리어가 시작이 되었구나,라는 무게감이 확 체감되면서 어떻게 내 커리어를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 것이죠. 사실 이 고민은 전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처음 전환됐을 때 제일 많이 했던 걱정 중 하나였습니다.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정직원으로서 첫 출근 전날 거의 밤을 새웠을까(블라인드며 커리어리며 온갖 사이트에 채용 담당자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열심히 서칭 하다 보니 새벽 4시였습니다. 그렇게 2시간도 채 못 잔 채 출근하게 된 비하인드가 있답니다). 또 전환이 된만큼 1인분을 해내며 내 존재를 증명해 나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인턴 때는 '내 강점을 회사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할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내 강점이 무엇이고, 나만의 엣지는 무엇이며, 그리고 이걸 어떻게 끊임없이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민의 무게와 범위가 확연히 달라져버린 것이죠.
이런 고민을 하게 된 이유를 따라가 보면 결국, 한 직장에 소속된 직장인으로서의 의미보단 직업인, 나 개인의 가치를 셀링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어디 다녀요'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가 해왔던 프로젝트와 경험으로 인사이트를 나누고, 그것이 나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도 큰 걱정 없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나 자신의 개인적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회고, 이를 통한 엣지 찾기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또한 선배/후배/동료/지인을 관찰하며 인사이트도 얻고, 훌륭한 레퍼런스들을 계속해서 참고하려 합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배우고, 흡수하며 차곡차곡 '나의 것'을 만들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Editor_도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