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는 이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이것만 끝내면 더 걱정할 일 없이 모든 게 정리될 거라는 믿음.
학창 시절에는 "대학만 가면 돼."
대학생이 돼서는 "취업만 하면 돼."
그리고 대기업 회사원이 돼서는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고등학생 때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대학교 가서 놀아라."였다.
대학교 가서 연애하고, 대학교 가서 술 담배하고,
대학교 가서 놀고..
선생님, 부모님 어느 누구 할 거 없이
어른들이라면 모두 같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대학생이 되면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었다.
열심히 놀고먹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몸에 밴 성실함으로
술 냄새를 풍기면서도 수업은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얻어낸 2학년 때까지의 학점은 1.72
1.7 미만이면 학고(학사경고)였는데,
F 하나 없이 1.72를 받아냈다.
그렇게 놀고도 학고를 받지 않았다는 것에
같이 놀던 친구들이 감탄했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야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놀기만 해도 된다고?'라는 의문은 항상 있었지만,
막연한 미래를 음주 가무로 달랬고,
세상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내가 저지른 일의 결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엄청나게 큰 부담이 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대학 가서 놀면 된다고 했던
어른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취업이었다.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전략적인 취업을 위해 노력했다.
어떻게든 대학생이 되기만 하면 된다는 목표로 노력했듯이,
이번에는 대기업 회사원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3, 4학년은 거의 모든 과목을 A+를 받고,
계절학기도 풀로 채우면서 학점을 4.0에 가깝게 세팅하고,
자기소개서 스터디부터 면접 스터디까지,
취업이라는 문을 통과하기 위해 1년여를 노력한 끝에 대기업에 취업했다.
부모님은 기쁨의 술잔을 기울이셨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덤덤했다.
인생이라는 게임 속에서
평소보다는 비중 있는 임무나 퀘스트 하나를 달성한 듯한 기분이었다.
입시, 취업 하나하나가 모두 큰 과제였다.
그러나 그 과제를 달성하고 났을 때,
나는 공허함에 허덕였다.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보다,
'그래서 이제 뭐?'라는 공허함이 더 크게 다가왔고,
애써 무너지지 않으려 술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당시에는 '원래 사는 게 다 이런 거니까'라는
주변의 누군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고,
누구나 다 같은 공허함 속에 견뎌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나는 꿈을 꾸지 못했고,
꿈을 지키지 못했으며,
꿈을 포기했던 사람이었다.
눈앞의 커다란 목표를 달성했다고 했지만,
무엇을 위한 목표였는지,
그것을 달성함으로써 마땅히 넘어가야 할
다음 단계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은 없었고,
방향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을
잘 활용하는 방법으로 사회는 구조화되어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른이 되고,
그 어른들은 다시 아이들에게 그 말을 반복한다.
'대학생 되면 너 마음대로 해도 돼.'
'좋은 회사에 취업하면 다 이룰 수 있어.'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눈앞의 미션을 클리어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눈앞에 당도한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눈앞의 어떤 일이 끝나도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계속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
목표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는 것,
'꿈', '이상'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학생이 되었나?
대기업에 취업을 했나?
소중한 가정을 이뤘나?
그래서 그다음은?
그것들을 이루면 다 끝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 한 줄 코멘트. 사회의 시스템이 말하는 정답은 아주 오래전엔 정답이 아니었다. 지금 잠시만 정답인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가오는 미래에 정답일 확률은 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