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아간다.
"나는 누구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숨을 죽입니다. 주인공의 이 한마디는 그 어떤 조언보다 우리 인생에 무겁고 깊게 내려앉습니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어떤 것을 고를지를 묻고자 한다면 그것은 밖이 아니라 나에게 되묻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_<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 이정훈
착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말이다.
작가님에게 선물 받은 책의 초반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그날의 대화가 왜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대화는, 정말로 생각의 결이 닮은 두 사람이 만나 이뤄낸 완벽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생각과 행동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했고, 그래서 작가님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여겼다.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던 순간의 황홀감은 바로 그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이정훈 작가님과의 대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내 관심사로만 채워져 있었다. 죽음을 계기로 찾아온 인생의 변화, 글을 쓰는 이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철학 등 내가 깊이 고민해 온 주제들이었고, 그런 주제들을 이미 오래전부터 통찰한 인생 선배님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만약 나의 사고 수준이 중학생이었다면, 작가님의 이야기는 대학생 수준이었다고 할까. 그만큼 깊이 있는 철학과 통찰이 담긴 대화였다. 마치 내가 걸어갈 길을 먼저 걸어가 본 적 있는 사람 같았다.
책을 펼치며 또 한 번 놀랐다. 첫 장에서 작가님은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내가 요즘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시작된 글 역시 <트루먼쇼>의 '트루먼'을 모티브로 삼고 있었다. 나는 사회가 제시한 길을 따라 열심히 살아왔고, 그래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지? 어디로 가고 있지?'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고, 나도 그에 따라 충실히 살아왔다. 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내 글은 바로 이 방황에서 출발했다.
작가님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트루먼과 같은 사람의 길. 그럴지도 모른다. 올바른 질문이 결국 올바른 답을 이끌어낸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득, 이 모든 상황이 나를 착각에 빠뜨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나를 일종의 최면 상태로 이끈 것인지도 모른다. '너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걱정 말고 계속 나아가라.'라고 믿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확신에 차 있더라도, 자신감 있게 나아가더라도, 나는 여전히 틀릴 수 있음을,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을 가능성을 인식해야 한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멈출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