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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텔c Oct 03. 2024

[사색의 서, 5] 선물

마음 가는 곳에 충실하기.

한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였다. 어떤 이는 꽃다발을, 또 다른 이는 케이크를 준비했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빈손으로 참석했다. 손은 가벼웠지만, 모두 진심을 다해 축하하는 마음을 안고 간 자리였다.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그런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함인지 불편함인지, 하나의 감정으로 딱 잘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빈손으로 온 나보다 뭔가를 준비해 온 사람들을 더 기억할 거라는 싸구려 생각일 수도 있고, 혹은 빈손으로 축하해 주기엔 부족하다는 아쉬움에 대한 후회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품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응원하고, 기도해 주는 것을 기꺼이 좋아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힘든 일이 겪으면 진심으로 응원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려 한다.

기쁜 일이 있으면 축하해 주고, 그 시간을 함께하며 마음을 나눈다.



어떤 사람들은 축하의 마음을 선물로 표현한다. 꽃다발, 디퓨저, 책 등 부담 없는 선물이지만, 그들의 마음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다정하고 섬세하다고 생각한다. 미리 그런 선물을 준비하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마음을 기울였을지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선물이 어울릴지 고민하고, 상황에 맞는 선물을 미리 주문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선물 받는 이를 위해 쏟은 시간을 상상하게 해 준다.


나도 그런 작은 감동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오다 주웠어." 같은 무심한 말투로 툭 건네는 선물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선물을 준비하며 상대방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 선물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선물을 준비하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 즉흥적으로 뭔가를 사는 것보다 더 어렵다. 생각이 많아진다. '준비'라는 단계는 원래 '고민'이 많아지는 단계인 걸까. 미리 준비를 하려고 하면 고민거리가 많아진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이 선물을 좋아할까? 도움이 되는 선물일까? 이미 비슷한 걸 갖고 있지 않을까? 이 계절에 이게 어울릴까? 그 사람의 취향에 맞을까?


온갖 사소한 이유들로 온라인 쇼핑몰의 수많은 품목 중 하나를 고르기 어렵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품목들, 선택지가 너무나 많아서 선택이 더 어려워진다. '저 선택 장애가 있어요.'라는 말이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선택할 것이 너무 많아진 사회로부터 온 문제임이 분명하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눈에 보이는 선물, 기억에 남을 선물이 더 값진 것일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선물을 건넨 사람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확률이 높다. 그 선물이 특별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사람의 감각 중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건 시각이니까. 선물은 시각을 자극한다.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의 마음은 오감 모두를 통해 느낄 수 있지만, 시각적 요소 하나가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선물이다. 적어도 정성껏 꾹꾹 눌러쓴 편지라도 줘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안다.


사랑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아름다운 행위라고 말하면서,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한 선물은 싸구려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 자리에 선물을 준비한 사람들은 '내가 여기 이렇게 왔으니, 나를 기억해 주고 나중에 나한테도 와줘야 해.'라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을 위한 마음을 조금 더 표현하고 싶었고, 그 방법으로 선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낀 감정도 결국 더 마음을 표현할 방법으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사람은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야 후회가 없다. '다들 선물 준비 안 했으니 나도 안 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면서도 찝찝함이 남았다면, 그건 마음이 가는 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반대로 '다들 선물을 준비했는데, 나도 할걸.'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괜찮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마음 가는 곳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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