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유하고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느끼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죽음'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죽음에 가까워져 있을지를 상상해 보면,
'이 모습만은 아니길'을 상상하면 지금 해야만 하는 일들에 집중할 수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 약해진 신체 때문에 침대에 누워만 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고,
꿈을 좇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 눈동자가 흐릿해지더라도 꿈을 생각하며 찰나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밝히고 싶기 때문이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 및 환원하는 기사를 접하고는 한다.
예전에는 그런 분들을 보면서
'돈이 정말 많아서 저렇게 기부하는구나.'라는 생각이나
막연히 '대단하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을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죽음이 가까운 순간,
삶을 돌아보며 짓게 되는 미소의 크기는
내가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돈이나, 살면서 이룬 돈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미소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은 각자의 꿈에 다다랐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많은 재산을 모아서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꿈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자녀에게 물려줄 돈을 위해서 살았다고 상상을 해본다면,
'과연 나는 나를 위한 주체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돈은 중요하다.
이 시대에서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다.
꿈을 빠르게 이루기 위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의 성공 =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알면서도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삶을 꿈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비교의 늪에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꼴이다.
한 사람의 삶은 재산을 얼마나 두고 갔느냐로 기억되지 않는다.
삶 속에 어떤 가치를 안고 살아갔었는지로 기억된다.
나는 어떤 가치를 품고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가치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내가 이룬 가치로 얼마만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삶을 마감할 수 있는가.
>> 한 줄 코멘트.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남긴 돈의 양이 이름의 빛남을 결정하지 않는다. '돈, 돈, 돈' 거리는 인생이야말로 동물이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삶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