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인간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다.
부처님은 인간의 고통의 원인을 '탐진치'로 보았다.
탐진치(貪瞋癡)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번뇌는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므로 삼독(三毒)이라 한다. - 시공 불교사전, 2003. 7. 30., 곽철환 -
만족을 모르는 욕망, 끓임 없는 탐욕은 집착을 만들고 불만을 부른다. 불만은 증폭되어 노여움이 된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한다. 그 잘못된 판단으로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하는 분별을 만든다.
부처님은 '좋다 나쁘다'하는 분별심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고 하셨다.
살다 보면 고통스러운 일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보통은 그 고통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그 고통에 저항한다. 저항하면 할수록 그 고통은 더욱 커진다.
고통 속에 파묻혀 뒹굴고 허우적 거린다.
내가 원인이 되어 내 앞에 찾아온 '고통'을 나는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상황을 반갑게 맞이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존경받는 수행자들은 그 고통을 카르마 해탈의 수단으로 삶는다.
우주, 세상은 내 생각과 행동의 결과물을 나에게 숙제처럼 가져다 놓는다. 악업의 카르마는 고통의 모양으로 나에게 주어진다.
왜일까?
좋은 선생님은 학생이 잘 성장하기를 바라며 학생에게 적절한 숙제를 내어 준다. 학생은 각자의 재량으로 그 숙제를 하며 성장하고 성숙한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세상은 내가 성장하고 성숙하길 바란다.
어쩌면 고통은 나를 성장시키는 숙제가 아닐까?
자유
에크하르트 톨레는 그의 저서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 세 가지 진정한 자유와 깨달음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무저항), 판단히지 않고(무판단), 집착하지 않는 것(무집착)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법률 스님은 그의 강연에서 "이래도 좋도 저래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 모든 게 다 좋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주, 세상에서는 절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다.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전체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없다. 변화하는 우주를 그것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고통으로 나타난다.
무판단
그것을 '좋다 나쁘다', '높다 낮다'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워진다.
무저항
그것을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유로워진다.
무집착
좋은 것도 지나가고 나쁜 것도 지나간다. 변하지 않고 고정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