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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부 Oct 31. 2024

13장. 내면의 신성



때는 한창 내면 정화를 위해 호오포노포노 명상을 하던 때였다.

평소와 다름없 나는 아침요가를 했다. 규칙적인 호흡을 하여 요가 동작을 이어가던 중 속삭이듯이 내면에서 올라오는 울림이 느껴졌다. 부드럽지만 웅장한 울림이 심장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그 신성한 울림에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요가 동작을 계속했다.


이 울림은 이십여 년 전에 성당에서 기도를 할 때 십자가 방향에서 느껴졌던 그 울림이었다. 부드러우면서 따뜻하고 우장한 그 울림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울림 다시 느껴졌다. 이번에는 내면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울림이었다. 내 마음과 영혼을 전율시키며 감싸 위로하는 울림이었다.


나는 원주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동생과 마음공부와 명상에 대이야기나누었다. 너무나 신비하고 경이로운 이 경험을 내 동생은 오해 없이 이해할 것이라 믿었다. 동생은 나의 마음공부와 명상에 대한 이야기많은 사람들과 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매우 사적이고 은밀한 마음공부와 명상에 대한 경험을 세상에 꺼내 놓는다는 것이 무척 망설여졌다. 이런 고민을 한참 하던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요가  매트에 누워 마무리 동작인 '사바사나'를 하고 있었다. 그때 또다시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림이 느껴졌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그 부드럽고 따뜻하면서 웅장한 그 신성한 울림에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겁을 내고 있었구나.

자신이 없었구나.

걱정하지 말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가야겠구나.


이 무렵 유난히 '111'과 '1111'이란 숫자가 하루에도 여러 번 보였다.

마치 어떤 메시지를 알리는 것처럼...

양자역학의 동시성 원리 칼 융의 동시성 현상은 말한다. 우주는 그냥 유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그렇다면 어떤 의미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내면의 신성

신성(神性)은 신의 성격 또는 신과 같은 성격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누구나 내면에 신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잠들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내면의 신성이 깨어난 것일까? 참나(self, 진짜 나)를 만난 것일까? 아니면 에고(ego, 가 나)의 장난일까?

그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에고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과거나 미래에서 찾고 현재의 순간을 무시하는 한다. 그 반대가 알아차림이고 '현존(지금 이 순간에 존재함, 순수한 있음)'이며 사랑, 기쁨, 평화로서 당신 내면으로부터 발산되어 나온다. - 에크하르트 톨레 -


어쩌면 내면의 신성은 나를 지켜보며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있을지 모른다.

눈을 감고 고요히 호흡에 집중할 때면 그 성한 사랑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나의 의식이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순간에 머물 때 내면의 신성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마음공부와 명상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내 삶에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깨닫고 성장해야겠. 그리고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도 경험해야겠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오늘'이란 선물을 매일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이 기적이고 축복이었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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