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보내고 있다. 매일매일 배우고 공부하며 성장하고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날 때가 있다.
이 또한 나로 인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수월하게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
과거에 상처가 많았던 나는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나면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쉽게 화끈거렸고 때론 분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공부와 명상을 시작한 이후 나는 지금까지 가져본 적이 없는 고요와 평화를 느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오래전부터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상처에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 치료하는 것에 비유하고 싶다. 나에게 마음공부와 명상은 편안한 마음의 휴식과 사랑을 느끼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지금은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나더라고 화끈거림 없이 그 에너지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버려지지 못한 습관은 내가 정신 차리고 깨어 잊지 않을 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대부분은 "아, 부정적인 에너지가 들어왔구나."하고 알아채기는 하지만 때로는 알아챈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때가 있다. 어쩔 때는 그것을 무심히 스쳐 흘려보내지 못하고 계속 그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나를 본다.
부정적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은 주변 여기저기에 끊임없이 자신의 부정적 에너지로 물을 들인다.
그들이 알고 그럴 수도 있고 모르고 그럴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불행 속에 있으니 타인도 자신과 같이 불행 속에 밀어 넣고 싶어 하는 듯이 주변에 부정적인 에너지 그물을 치고 누군가 결려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는 그들 스스로가 만든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환경에서 남 탓을 하며 살아간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며칠 전 개인 SNS에 악의를 품은 부정적 댓글이 달렸다. 나는 속상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답글을 달던 중, '앗, 내가 그물에 걸렸구나!'하고 알아챘다. 그리고 나는 달았던 답글을 삭제하고 그 댓글도 삭제를 했다.
그런데 나는 별것도 아닌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은 그것을 마음에 품고서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나는 계속 그것을 생각하고 생각하며 속상해했다 말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왜일까?
어쩌면 내가 그것을 부정적이라고 판단한 것이 문제인 걸까?
어쩌면 그 댓글을 부정적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댓글을 '부정적이다' 판단한 것은 나의 생각이다. 그것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으면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는 것이 아닐까?
생명을 위협하는 큰 태풍도 아닌 대수롭지도 않은 지나가는 바람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다고 생각했지만 불쾌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유쾌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이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저 사람에게는 나쁘고 그 반대의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좋다', '나쁘다'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에크하르트 톨레(달라이 라마, 틱낫한과 함께 21세기를 대표하는 영적 교사)는 그의 저서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 그것을 '에고(ego)', '머리속 목소리'라고 표현했다.
'에고'는 내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그 바람은 불고 싶은 방향으로 불고 나는 그저 그곳을 지나갈 뿐이다.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나는 자연의 일부이고 오늘에 감사하며,즐겁게 살아가면 그뿐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부정적인 댓글은 나에게 공부할 화두를 만들어 주었다.나는 이를 통해 나를 성장시킬 숙제를 하나 받았고 그 숙제를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