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회고록
영혼 고갈될 듯 사랑하라고
신이 우리에게 준 한 시절 어려운 만큼 가치 있는 일
출처: 매일경제 오피니언 그럼에도 육아
블로그를 통해 우연히 이런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기사에서 육아를 '영혼 고갈될 듯 사랑하라고 신이 우리에게 준 한 시절'이라고 말한다. 글을 읽고 눈물이 났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내 인생에서 이렇게 치열하게 사랑했던 적이 있을까?' 생각했다. 나의 출산과 육아를 돌아보며 치열했던 사랑의 흔적들을 하나씩 기록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epi.
친한 친구 중 제일 빨리 결혼한 C. 결혼을 빨리해서 벌써 5살, 3살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 친구는 결혼도 빨리하고 육아도 빨리 시작해서 그런지 결혼하고 나서 뭔가 멀어진 느낌을 받았다. 미혼자들이 기혼자의 삶을 공감 못하듯이, 기혼자와 애 있는 기혼자도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임신을 하고 나서부터 우리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임신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 친구는 알기 때문에 나를 많이 챙겨줬다. 그 친구가 임신을 했을 때 나는 미혼자였다. 더 챙겨주지 못하고, 더 이해해 주지 못한 것이 참 미안했다. 유도 분만*을 하러 가기 전날, 친구는 나를 찾아와 포옹을 해주었다. "출산 별거 아니야. 힘들면 그냥 제왕 절개하면 되지. 제왕 절개하면 5분도 안 걸려. 겁먹지 말고 잘하고 와. 잘할 수 있어!" 우린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동안 우리 사이에 있던 모든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유도 분만: 자발적인 분만 진통이 시작되기 전 자궁 수축을 일으키는 외부 물질을 투약하여 인위적으로 분만 진통을 유발하는 방법. 분만 예정일이 많이 지난 경우, 양막이 파열되었는데 진통이 오지 않는 경우 등에 시행한다.
두 번째 epi.
만삭의 배로 쉽게 잠들지 못했던 어느 날 밤. 남편이 꿈을 꾸는지 훌쩍훌쩍하며 숨소리를 거칠게 냈다. 며칠 전 진통할 때 도움이 되는 호흡법을 함께 연습했었는데, 꿈에서 그 호흡을 같이 해주고 있었나 보다. 그 모습을 보는데 든든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출산을 하러 가던 날. 남편은 나의 모든 고통의 순간에 함께했다. 진통이 계속되고 하루를 넘기면서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잠도 잘 수 없었다. 밤새워서 기도해 주고 손잡아 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부모님이 아닌 남편이 내 곁을 지켜주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하다.
세 번째 epi.
분만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진통 소식이 없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유도 분만을 하자고 하셨다. 차라리 자연 진통이 왔으면 좋았을걸. 유도 분만일을 잡고 병원에 가는 일은 마치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날의 자세한 기억은 없다. 진통을 24시간 했고, 자궁문이 열리기까지 매우 힘들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자궁문이 10cm까지 다 열렸던 순간, 그때부터 헬게이트가 열렸다. 내 한 몸 부서져라 괴물같이 소리를 질렀던 출산의 마지막 순간. 한 생명을 열 달 동안 품고, 그 아기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출산의 고통은 내가 이 아이를 앞으로 책임지며, 열심을 다해 사랑하겠다는 몸부림이자 결단이 아니었을까. 이 고통이 없었다면 육아의 과정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 같다.
네 번째 epi.
신생아 때는 아기의 위가 발달되지 않아 2~3시간마다 밥을 먹여야 한다. 새벽에 몇 번씩 깨는 아기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당연히 포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며칠만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이 아이의 주 양육자가 나라는 사실이 매우 공포스러웠다. 새벽에 수유를 마치고 소파에 혼자 앉아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엄마 말에 의하면 난 잘 울었다고 했는데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뚝뚝뚝 흘렀다. 우리 부모님의 희생 덕분에 내가 이렇게 세상을 누리고 살고 있었구나. 나도 우리 도영이에게 세상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섯 번째 epi.
도영이가 이 앓이를 시작했다. 이가 나고 있어 아픈지 밤중에도 자주 깼다. 평소에는 중간에 깨도 스스로 잠드는 편인데, 아프니까 꼭 안아서 달래줘야만 잠에 들었다. 이 과정을 며칠 반복했다. 남편과 나는 거의 좀비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내가 소파에서 잠들어서 우는 도영이를 남편이 먼저 달랬던 적이 있다. 남편이 계속 달랬는데도 안 됐는지 나를 불렀다. 내가 도영이를 안는 순간 바로 울음을 그쳤다. 남편은 허탈해했지만 나는 신기했다. 엄마의 냄새를 아는 건가. 그때 진한 모성애를 느꼈다. 나는 조금씩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전쟁 같은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아침, 도영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리를 보고 씩 웃었다. 미워할 수 없는 내 새끼다.
나보다 한참 육아 선배인 지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몸이 힘들지만,
이 시간은 금방 지나가요.
육아하는 행복을 진하게 누리시길 바랄게요.
신생아를 돌볼 때는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그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다 어느새 6개월이 지나고 7개월을 향하여 가니 그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영혼이 고갈될 정도의 힘듦이 있었지만, 그걸 하루하루 인내하고 돌아보니 행복한 추억만이 남은 것 같다. 그동안 나와 아이 사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남편과의 사랑, 부모님과의 사랑, 친구 관계에서의 사랑까지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