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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Jul 17. 2024

한국영화 해외 수출 역군이라는 자부심

조대리의 첫 직장은 영화사가 아니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정보 등 TV 프로그램에 우리말 더빙과 한글 자막을 담아서 납품하는 업무였는데, 번역가와 성우를 섭외하고 우리말 더빙 연출과 한글 자막이 입혀지면 발주사에 납품하는 '영어 더빙 PD'로 7개월 동안 일했다.


마침 조대리와 같은 날짜에 입사한 동기는 디즈니나 드림웍스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의 우리말 더빙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었는데, 당시 조대리는 그 동기의 일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더빙 연출은 사장님이 관장하시지만, 뭔가 장편 애니메이션 더빙은 그 회사에서도 가장 주력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더 대단한 일을 하는 듯 보였다.



조대리의 두 번째 직장이자 첫 번째 영화사 M에서는 이런저런 업무를 맡다가 결국 외화 마케팅팀으로 옮겨갔다.


그때, 그 회사에는 한국영화 해외 세일즈팀이 있었는데, 첫 직장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2000년대 초반 당시에는 아직 CJ나 시네마서비스 등 굴지의 대형 회사들이 해외 세일즈팀을 갖추기 전이라, M과 같은 회사들에 해외 배급 대행을 맡기는 식이 일반적이었는데, 당시 M이 대행을 맡은 영화들이 대형 회사들이 제작, 투자, 배급한 영화들이었다.


5월 칸영화제 기간에 맞춰 열리는 필름마켓을 준비하는 해외 세일즈팀의 바쁜 손길이 부러웠었다. 뭔가 한국영화를 해외에 알리는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들의 일이 당시 조대리가 맡았던 일보다 훨씬 가치 있어 보였다.


이것은 데자뷔와도 같았다. 사회 초년 시절 거친 두 군데 회사에서, 조대리는 자신이 맡은 업무보다 다른 팀의 업무를 부러워만 했으니!



초청팀장으로 일했던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때 조대리는 프로그램팀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영화제 기간 동안 관객들에게 선보일 영화들을 선별하는 것을 비롯한 프로그래밍과 관련한 거의 모든 일이, 초청팀의 일보다는 훨씬 주도적으로 보여서 그랬다.


조대리에게는 계속 '남의 떡이 더 커 보였다.'


마침 부천에서 일한 다음 해, 고양 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프로그램 팀장 일을 맡아, 그렇게나 부러워했던 일을 드디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의 심리가 간사하다고는 하지만, 조대리가 유달리 간사한 건지 조대리의 마음이 간사한 건지, 막상 해보고 싶던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다음에 예상치 못한 걸림돌들이 쉬지 않고 등장했다.



그리고 '아시아 넘버원 스튜디오'를 표방하던 C사의 '해외영업팀'의 일원이 되었다. 부서 이름은 그 이후에 쉬지 않고 계속 바뀌었지만, 조대리가 입사하던 당시의 이름인 '해외영업팀'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드디어, 사회초년생이던 M사 시절 부러워했던 '한국영화 해외 수출 역군'이 되는 것인가! 그동안 남의 일을 부러워만 했던 나쁜 습관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30대의 어엿한 직업인으로 자리 잡고 싶었다.


1년을 주기로 2월 베를린, 3월 홍콩, 5월 칸, 10월 부산, 11월 AFM 등 출장 여부와 관계없이 주요 필름마켓 준비를 기점으로, 연간 30~40편의 한국영화를 해외 바이어들에게 알리는 B2B 비즈니스가 일단 업무의 기본이었다.


그렇다면 조대리는 그제야 남의 떡만 커 보이던 시절을 마무리 짓고, 어엿한 한국영화 해외 수출 역꾼으로 자리 잡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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