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다 사물이 더 강렬할 때

사람은 거의 다 잊었는데, 사물이 안 잊혀진다.

by 박재

인형뽑기



분홍색이었다
누가 봐도
대수롭지 않은 캐릭터


엘리베이터 앞 자판기
누군가 가방에 매달아둔 걸
보는 순간


그날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어디 역이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다 흐려졌다고 생각했는데


다리가 약해서
못 잡았다고 했지
사장이 락을 걸어놨다며
오천 원은 넣어야
기회가 온다고


지폐를
끝까지 밀어 넣던 너


별 의미 없던 하루였고
결국 뽑히지도 않았지만


지금도 그 인형만 보면
그 말투와 눈빛
사소한 기분까지
그 안에서 꺼내진다


다른 건 다 잊었는데
이건 너무
또렷해서 문제다


너의 얼굴은
희미해졌는데


그 인형은
아직 너를 데리고 있다


이제는
너를 생각하는 건지
인형을 생각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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