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도 검은색도 눈 아파, 난 그림자색이 좋아

색과 질감 무늬 따위를 생략하는 그림자, 거기서 편안한 위로가 느껴진다

by 박재

실루엣



색은 빠져 있다

그림자는 빛의 시선을 생략한다


본래의 무늬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이 없는 채로 테두리만 남긴다


해의 시선은 닿지 않음으로

오히려 독보적인 자리를 만든다


우리는 눕거나 기대야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닿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그림자의 온도를 정한다


대신 윤곽은 선명하다

모서리가 있고 겹치면 하나처럼 보여서

서로 먼 것도 일순 가까워진다


이건 착각이다 바닥에 보이는 착각

그런 착각이 조금은 살 만하게 한다


나는 지금 그림자만 본다

색도 무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무늬 없는 검정에 익숙해졌다

아니 검정이 아니다

그림자는 새벽 같다


벽에서 보이는 착각

그것밖에 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그 윤곽조차 놓치지 않으려 한다


진짜가 아니기에

덜 흔들리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곳에서

나를 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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