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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Sep 11. 2023

모로코에서 태국까지 비행기 환승하기

한국의 가족들과 비행기 탑승을 위한 연합작전을 펼치다 


이 글은 내가 22년 4월~9월 혼자 여행을 하다가 

여행 말미에 동남아로 넘어와서 마지막엔 남편과 아들을 상봉하여 

베트남을 여행한 후기다. 

이미 책으로 출판되었지만 그 때의 추억을 브런치에 담아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탕헤르 호텔을 나와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뒤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샤를 드골  공항으로 이동해 카타르 도하로 날아간 다음 또다시 비행기를 갈아 타고 사흘째 저녁에야 방콕에 도착하는 끔찍한 일정이었다. 경비를  절약하려고 환승 구간이 많은 카타르항공을 탔기 때문에 어쩔 수 없 었다. 


오를리 공항에서 샤를 드골 공항까지는 4시간 여유가 있는 환승 이었지만, 거대한 마드리드 공항에서 환승을 해보니 짐 찾아 자가 (self)환승하는 데만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래서 아들에게 내가  탈 항공사 터미널을 알아보라고 톡을 날렸다. 보통 탑승 터미널은 하 루 이틀 전에 확정되는데, 이동 중에는 와이파이도 잘 안 되고 공항 에서도 확인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샤를 드골 공항은 규모가 큰  데다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터미널이 다 흩어져 있어 공항에  가서도 짐가방 들고 한 시간 이상 헤맬 수 있는 곳이다.  


오를리 공항에서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기 위해 최대한 빨리 짐을  찾아 택시를 탔다. 웬만하면 제시간에 환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만 러시아워 때라 차가 밀렸다. 시간 내에 도착하겠냐고 물으니 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만 한다. 그러면 서 자율주행 차라 손을 놓고 운전하는 걸 보여주는데 마음이 더 불안 해졌다. 솔직히 운전대를 잡고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공항에 빨리 데 려다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가는 중에 기사 아저씨 여자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자율주행차라  그런지 대화가 길어졌다. 아저씨가 코리안 레이디 태우고 공항에 가 는 중이라고 하니 자기는 별 보러 가서 유성을 봤다면서 장광설을 늘 어놓는다. 복잡한 마음에 말 좀 잘라볼까 싶어 에어컨이 너무 세니  낮춰달라고 했더니, 내가 프랑스어를 하는 걸 듣고는 ‘당신 프랑스어  잘하네요~’ 하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더니 북한이, 김정은이 어쩌구 하다 나중에는 한글이 대단하 다는 둥, 자신이 아는 걸 다 말하려는 눈치였다. 나는 지금 공항에 무 사히 도착하기만을 원하고 마음이 급하다니 ‘내 친구를 믿어라, 무사 히 잘 데려다줄 거다’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정말 잊지 못할 공항 이 동이었다. 난리에 또 난리를 더한 난리 부르스였으니. 그 와중에도 남편, 아들과 톡을 했다. 아들이 알려준 터미널로 갔 는데 왠지 조용한 게 이상했다. 


기사가 먼저 내려 확인하니 아뿔사!  좀 전에 다른 터미널로 변경되었단다. 가방 들고 내렸으면 황당할 뻔 했다.  바뀐 터미널로 찾아가니 카타르항공 체크인 데스크 앞에 줄이 어 마하게 길었다. 그리고 카타르항공 직원들이 나와서 집에 가는 택시 가 어쩌구 하기에 ‘엥 도대체 이건 또 뭔 소리여’ 하며 물어보니 비행 기가 연착되어 내일 아침에나 뜰 예정이란다. 파리지앵들 중에서 집 에 갈 사람들에게는 택시비를 주려고 묻고 다닌단다.


 비행기 놓칠까 봐 한국과 연합작전까지 펼치며 그리 숨차게 달렸 는데 맥 빠지는 소릴 들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세 시간 동안 줄을 선  뒤에야 새 항공권 예약 확인을 했다. 공항 근처 호텔에 배정받고 들 어가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저녁도 안 줘 화가 나서 애먼 호텔  직원들에게 화를 냈다. 다음날 조식을 든든히 먹은 뒤, 전날 저녁도  굶으며 같이 고생한 사람들과 다들 반갑게 아는 척을 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장에서 같이 줄 선 가브리엘은 이탈리아 청년인데 암스테르 담에서 식당 웨이터로 일하다 그만두고 방콕으로 여행을 간단다. 휴 직 기간 동안 세상을 더 보고 재충전을 하면 창의성도 생겨 다음에  무슨 일을 하든 도움이 될 거라 하니, 활짝 웃으며 자기 엄마한테 그  얘기 좀 해달라 한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보딩타임이 촉박해서  좀 불안했는데, 멀리서 가브리엘이 손을 흔들며 ‘킴~’ 하고 불렀다.  얼른 같은 일행인 것처럼 수십 명을 제치고 앞으로 갔다. 가브리엘이  ‘This is Italian~’이라며 씨익 웃었다. 나도 웃으며 이건 ‘코리언 스타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뱅뱅 돌아가는 줄이 열 줄도 넘었던 샤를 드골 공항 탑승 수속장에서 줄 서는 인내심을 배웠다.  

▶ 부자 나라답게 카타르 도하 공항은 금붙이 액세서리 가게가 엄청나게 컸다.  


파리에서 힘들게 도하로 왔건만 도하에서 방콕 가는 비행기가 또  연착이란다. 카타르항공은 기내식도 훌륭하고 간식도 펑펑 주면서  웬 연착이 이리 많은가 싶다. 두세 시간 비행기가 연착하니 주욱 줄 을 세워 공항 내 카페테리아로 데려간다.  나는 저녁이고 뭐고 다 귀찮고 자꾸 반복되는 연착에 짜증이 나 는데, 다른 사람들은 크게 화를 안 내는 거 보니 신기할 정도다. 

새삼  내가 평소엔 긍정적이고 이해심도 있어 무슨 일이든 잘 받아들이는  편인데, 정해진 일이 제대로 안 굴러가면 남들보다 더 못 참는구나  싶었다. 갈수록 여행 경험 마일리지가 높아지는 만큼 여행 난이도도  따라 올라가는 게 스릴도 있지만, 난이도만큼이나 긴장과 피로감이  커지고 신경도 예민해진다. 


그런저런 사연을 겪으며 어쨌든 방콕에 무사히 도착하니 그제야  모든 것에 그저 감사했다.  오래전 이븐 바투타는 탕헤르에서 중국 땅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나 걸렸는데, 나는 탕헤르에서 비행기를 몇 번 갈아탔을지언정 날고  또 날아서 여기까지 오는 데 사흘밖에 안 걸렸다. 이 얼마나 다행이 고 신기한 일이냐며 스스로 위로하며, 내가 좋아하는 마른 오징어 한  마리 사다가 시원하게 맥주 한 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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