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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Nov 07. 2023

지리산중별곡~어머니와 카네이션

마지막으로 카네이션을 드리고...

 

직장 명퇴 후  20년 추석 때 어머니를 내 시골집으로 모시고 와서 나랑 몇 달 알콩달콩 지내시다 끝내 병원과 요양원을 거치시고 그 이듬해 나의 어머니는 소천하셨다.    

 

21년 5월 8일 어버이날 오빠 동생이 사 온 카네이션을 만지게 해 드리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돌아왔다. 그간 한 달 남짓 눈도 입도 못 뜨셨지만 어머니께서 나의 말을 다 알아들으심을 알고 있었다. 입은 꾹 다무셨으나 눈가의 미세한 흔들림. 손가락 꼼지락, 호흡의 변화등으로. 


두어 달 코줄 식사로 이제는 병원과 요양원으로 갈 때 마다 더욱 얇아져만 가시니...

남편은 어버이날 하모니카를 불어드린다며 준비하고 갔는데 못 하고 손만 잡아드리고 왔었다. 그런데 남편이 요양원에서 온 전화를 일층 카페에 둔 내 전화기로 받고  망연자실 울면서 이층으로 올라왔다. 우리가 요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채 두 시간도 안 된 시간이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정해진 절차를 거치고 친정오빠에게 전화 해서 보내온 운구차를 타고 어머니께서 자주 가셨던 대구 파티마 병원으로 이동했다. 남편은 따로 차로 뒤 따라오고 나 혼자 그렇게 서둘러 친정 대구로 어머니를 모시면서 불현듯 깨달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후회를 안 남기기 위해 이렇게 지리산골짜기 동네까지 와서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 주셨다는 것을.

친정 아버지를 갑자기 보내드리고 갚지 못한 그 사랑의 빚으로 내내 마음이 아팠던 내게 어머니는 그나마 대신 남은 마음의 빚을 갚을 기회를 주신 것을.     


부모의 사랑. 그 사랑은 내리사랑이며 우리가 자녀에게 그러하듯 비교할 수도, 비교 되어서도 안 됨을 늘 입으로는 말하고 살았는데 막상 돌아가신 그 순간에 눈이 번쩍 뜨인 것의 그 차이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어머니께서 애써 나에게 시간을 주셨다는 생각에 혼자 운구차 안에서 오열했다.


몇 달을 같이 있으면서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생각이 왜 마지막에 엄마랑 나랑 같이 대구로 돌아가면서 생각 났을까!      





많은 임사체험기를 보면 우리가 심장 박동이 완전히 멈추고, 뇌사 판정을 받고나서 일단 유혼은 육신을 떠나지만 가족들의 슬픔과 오열을 그기서 다 지켜보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러니 그 순간 엄마는 분명 내 옆에 계셨던 거다.


병원에서 코줄을 하고 계실 때 마지막으로 한 말씀이 두 아들 이름을 대며 ‘ 니는 할 만큼 했다. 산이 강이 데리고 잘 살아라’ 였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나에게 해 주실 말씀을 또렷이 해 주시고 내 마음에 그 어떤 여한이나 후회가 없게 하려 하셨던 거였는데...


이제 어머니 지상의 옷을 벗고 가시면서 내 마음을 끝까지 위로하시려고 내게 그런 생각이 번득 나게 하셨던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크게 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가슴이 아리면서 눈물이 주루룩주루룩 흘러내렸다.      


우리가 평생 기억하기 쉬우라고 어버이날 돌아가시고, 그것도 그 해 어버이날 5월 8일은 토요일이었다. 해서 삼일장을 해도 우리 삼남매는 저녁에 장례절차를 밟고 그 날은 손님도 없이 바로 쉬었고 이튿날 일요일에는 모든 일가친지들이 거의 다 오시기에 편했고 월요일 아침 일찍 발인을 했기에 상주로서 우리의 수고는 짧았고 최대한 줄여졌다.      


어떻게 자식들 기억 하기 좋게 어버이날 가시고 요일조차 우리 편하게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에 가셨을까 싶을 정도였다.       

20년 전 먼저 가신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시던 아버지 곁으로 군위 카톨릭 묘원 장지로 마지막으로 모셔드렸다.     


이제는 나비되어 훨훨 날라 다니시리라 믿는다.


나는 마지막 만남 때도 어머니 이제 다 내려놓으시고 천사가 마중 나오면 그 빛을 따라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 전에도 자꾸 외할머니가 보인다는 어머니께 내가 마지막 호스피스역할을 해야한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었는데 어머니 덕분에 기독교, 불교, 티벳 사자의 서, 임사체험등 나름 두루 공부도 더 하게 되었기에 한 말이었던 거 같다.


정말 부모 자식 인연이무엇이기에 이 땅에 와서 사는 동안  만나서 이렇게 역할을 다 하시고 오랜 여운과 향기를 남기고 가시는 지...

이제 돌아가신 지 년이 훌쩍 넘었지만 내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기억과 추억 속에서 여전히 부모 그 역할을 하시며 끝내 우릴 돌보시며 함께 할 것 같다.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카네이션이 되었다~영정앞에 절 하는 두 아들~어머니 삼오제
한 없이 얇아져만 가시니 ㅠㅜ 요양병원에서의 사진...어머니 좋아하시던 국화꽃 한 송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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