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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Nov 10. 2023

눈 속에 갇혀서

집 지은 이듬해 눈이 엄청 왔다.


집 지은 이듬해 눈이 엄청 왔다. 지리산 자락에도 수 년만에 하루 분량으론 최고치 눈이 내렸다고 했다. 마당 연못은 자취를 감추고 새벽에 창문 열고 보니 데크위에 새끼 고양이 발자국같은 것만 보였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이전에 가끔 그런 말을 했었다. 도시와 직장생활 그 번잡함 모두 떠나서 눈 속에 갇혀 책만 읽고 오고 싶다고. 정말 그 소원대로 읽고 있던 두꺼운 철학책에 파 묻히게 되었다...ㅎㅎ    

 

남편은 눈 풍경이 좋아 카메라부터 챙겨 들고 나가고 난 아직 잠옷 바람으로 이 층에서 빼꼼히 바깥 풍경 감상에 빠져있는데 앞집 할머니께서 나를 보시고 고함을 지르신다.      


‘왜 사람도 안 사는 집 맨코로 눈도 안 치우고 그라노?’     


할머니는 벌써 눈 치우기 전용 초록 플라스틱 삽으로 길을 치우시고 계신다.

아~~예 하며 남편에게 눈짓 웃음을 보내고 할머니 두 번째 언성이 있기 전에 언능 옷 갈아입고 내려갔다.      

장화와 모자, 장갑까지 챙겨서 그렇게 이웃집 할머니들과 눈길을 치웠다.


대충 노모당까지 갈 길을 티어 놓고 와서 아래층 거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눈 속에 마시는 커피는 왜 이리 더 따끈하고 더 짙은 향기가 날까...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시골에 와서 이렇게 큰 눈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지고 벌써 넉넉해진다.      

안 그래도 조용한 시골마을이 눈이 오니 더 고요하다. 눈을 치워도 또 내리는 눈으로 눈 내리는 소리 조차 들리는 듯 하다. 눈을 만지면 분명 차가운데 눈 덮인 나무도 지붕도 내 차도 포근하게만 느껴진다.     


지금껏 살던 도시에서 눈을 안 본 건 아니지만 시골에서 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분명코 다른 경험이다. 도시의 눈은 차가 지나간 자리는  금방 가라앉아 빙판길이 되며 도시의 열기로 눈이 녹기 시작하면 건물과 골목길 풍경은 아름답지 않고 질척거려 불편할 뿐이다.     


그래서 눈으로 덮인 시골 마당과 나무들이 주는 평화로움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인 듯 하다. 안 그래도 조용한 시골동네가 눈으로 덮이니 마치 잠시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데 그것은 눈 속에 갇히는 단절이 주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시골 온 첫 해에 이렇게 눈 풍경을 맞이하니 정말 이 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기대로 설레인다.     


눈 속의 평화, 평온함, 고요한 세상처럼 올 한해 화해, 평화, 상생 기운 에너지가 온 세상 가득 채우고 품고 덮어서, 우리 마음 속 충돌 녹여주기를~!  모난 것, 거친 것, 울퉁불퉁한 것  다 녹이고 이기심으로 누추하고 너덜너덜해진 우리 마음도 가려주고 넘어서서 더 넓고 밝고 환한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래본다~!


 (2018년 1월 10일 일기)



Ps
이 때는 다행히 겨울방학이어서 몸과 같이 마음까지도 늘어질 수 있었지만
한번은 때 아닌 삼월에도 내린 눈으로 출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을앞 큰 길까지 올라가는 오르막길은 미끄러워 차를 두고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서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까지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 지나 오후에 출근하니 다들 천재지변인데 하루 쉬지 그랬냐?며 웃으셨다.



눈 온 날 빨강 우체통과 집 색갈이 더 붉어 보인다~ 이층 베란다에서 나비 세 마리를 찍는 남편~마당 데크위의 누구 발자국?!!
벌거벗은 모습의 겨울나무 나목도 좋아하지만 솜처럼 눈을 덮어쓴 사철나무도 좋다~ 눈 온날 아침 커피와 과일,빵 구운 마늘을 아침으로 ㅎㅎ


이층 통창에서 찍은 눈 내리는 풍경~~


Ps~자금 이 곳  날씨가 다시 눈이 올거 마냥 잔뜩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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