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회복을 위한 선택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수술까지 남은 8주는 단순히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으로 나타났던 증상들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몸은 한결 가벼워졌고, 그만큼 조금씩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방사선의 효과가 최대한 잘 일어나고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암 공부에 집중했다. 소중한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치료는 현대의학의 표준치료를 따랐지만, 치유와 회복은 통합의학이나 기능의학처럼 질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 접근하는 방법을 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풀어가기로 했다.
우선, 호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암을 겪고 공부를 하다 보니 호흡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일상에서 내가 하고 있는 호흡은 깊고 안정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처음 입원했던 요양병원에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흉식 호흡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흉골이나 쇄골 위쪽만 움직이는 얕은 호흡은 몸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기 어렵다. 횡격막 호흡이 잘 안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이 부분을 제대로 짚고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고압산소치료는 요양병원에서만 잠시일 뿐이니까.
또 하나, 오른쪽 중둔근 부위의 통증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암 진단을 받던 시기쯤 시작된 불편함이었고,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아 일상 속에서 자주 신경이 쓰였다. 예전 같으면 스트레칭이나 운동으로 조절해보며 넘겼겠지만 이것은 단순한 근육통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호흡과 근골격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짚어보고, 이를 제대로 다뤄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마침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퇴원을 며칠 앞두고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의 남편은 물리치료사였고, 내가 필요로 하는 그런 전문가였다.
“언니, 나를 꼭 도와주셨으면 해요. 퇴원하자마자 바로 갈 수 있으니까, 김 선생님께 말씀 좀 잘 전해줘요.”
간절함과 믿음을 담은 부탁이었다.
이러한 결정은 당초 계획보다 일찍 퇴원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거기에 둘째 딸의 중학교 수학여행 준비를 돕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마냥 들떠 있는 아이 옆에서 이것저것 함께 챙기고, 설레는 얼굴을 지켜보고 싶었다. 또한 두 달 가까이 병원 생활을 이어오다 보니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부터는 집이 점점 더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나자, 점점 모든 계획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입원 기간을 줄이고 퇴원 후 집에서 내 몸을 더 잘 돌보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
가장 망설였던 부분은 집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에 오기 전에 이미 항암 음식을 해 먹었지만, 이제는 환자의 몸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체중은 4kg이나 줄었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매일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내 문제이고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치료와 회복 과정을 통해 얻은 정보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고, 암 환자가 주의해야 할 음식과 몸에 좋은 음식을 무엇인지 깊이 공부해 왔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을 내가 잘 선택하고 관리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요양병원 퇴원을 앞두고 원장님의 진료를 받았다.
“000님, 여러 면에서 걱정할 부분은 없지만, 대부분의 암환자들이 집에 돌아가서 음식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더라고요. 특히 다양한 채소를 매끼 먹는 것이 쉽지 않고, 나물류나 반찬 준비를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시죠.”
“원장님, 저는 원래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 음식을 해 먹었어요. 촌에서 자라서 나물 반찬도 잘합니다. 평소 하던 대로 음식을 준비하면서 잘 살아보겠습니다.”
“네. 관리를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수술 잘 받으시고 또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옥상에서 맨발 걷기 매일 인사를 나눈 아기 나무
매일 저녁, 요양병원 옥상에서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마포에 있는 암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은 참 만족스러웠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나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그 소중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떨어져 있을 일도 없었을 테니, 아이들과 남편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주고 있어 감사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 달 가까이의 병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내가 살았던 그 집, 내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 그리고 가족들이 있는 그 공간으로 돌아간다는 건 오래 기다렸던 위로 같았다. 두 달 남짓 머물렀던 낯선 여정을 마치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설렘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내 몸을 더 잘 관리하고 회복하는 것, 그 모든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암 환자가 되면서,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그 선택이 내 몸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고민했다. 병원에서의 치료는 물론 나를 위한 음식, 운동, 마음 관리까지 모두 공부하고 선택하며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남편이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었지만, 암을 극복하는 일은 온전히 내 몫임을 늘 마음속에서 되새겼다.
모든 선택에서 긍정적인 사고와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다. 설령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낙담하지 않으려 했다. 절망이나 좌절이 결과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내 몫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퇴원 준비를 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렘과 동시에 수술 전 검사와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현실이 마음 한쪽을 무겁게 했다. 앞으로 마주할 수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회복은 잘 될지,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미래였기에 불안함이 없을 순 없었다. 그래도 들뜨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려고 애썼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내면 된다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24년 3월 4일-4월 24일까지 서울 생활을 마치고
내가 머물던 그곳, 가족이 기다리는 따스한 보금자리
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