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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빛이 보이는 끝을 향해

당신의 터널에도 분명히 빛이 있습니다.

by ligdow


암 진단을 받았을 때 한순간에 캄캄한 터널 속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두려움과 혼란이 밀려왔지만 그 안에서도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둠 속에서도 제가 가야 할 방향을 정했습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터널의 입구라면 어딘가에는 반드시 출구도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저를 향해 환한 빛이 비쳐줄 거라고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은 때로는 흔들리기도 때로는 단단해지기도 했던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스스로 몸을 돌보고 마음을 들여다보며 삶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저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날들을 하나하나 쓰면서 제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저는 매 순간을 조심스럽게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아프고 두려웠던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제가 어떻게 버텼고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솔직하게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와 개인적인 감정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바라건대 그 나름의 노력이 글 곳곳에 담겨 있기를.


저는 여전히 ‘재발’과 ‘전이’라는 암의 두 그림자와 함께 살아갑니다. 두려움이 문득문득 밀려올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기에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저를 지켜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혹여 몸 어딘가에서 암이 다시 꿈틀거리더라도 매일의 건강한 일상으로 그 미세한 움직임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걱정과 불안은 결국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암과 함께 오늘도 맑음입니다.




1년 반 동안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친절함과 전문성으로 진료해 주신 삼성서울병원 주치의 대장항문외과 L교수님과 방사선종양학과 김나리 교수님, 언제나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며 진심 어린 치료를 이어가고 계신 김선생님, 중요한 순간마다 논문을 찾아 도움을 주시고 상담해주신 내과 B선생님(현재는 서울00병원 혈액종양내과), 건강에 대해 다각도로 조언해 주시는 기능의학 K의사 선생님, 몸의 움직임을 회복시켜 주고 계신 필라테스 K선생님, 그리고 따뜻한 칭찬과 용기로 응원해 주시는 메디람 한방병원의 구자일 원장님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3월 16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 2회 꾸준히 글을 쓸 수 있게 따뜻한 공감과 응원으로 함께해 주신 모든 독자분들과 브런치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격려가 없었다면 긴 여정을 글로 완성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리고 모든 시간을 함께 걸어준 중학교 동창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과 늘 엄마를 믿고 따뜻하게 응원해 주는 두 딸에게도 뜨겁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 글이 저처럼 암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되었으면 합니다. 정답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길이 있음을 전하는 길동무 같은 책이었으면 합니다. 비록 작고 희미한 빛일지라도 어두운 길 위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류시화 작가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p19

"인생은 길을 보여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플랜 A보다 플랜 B가 더 좋을 수도 있다. 가 아니라 더 좋다. 플랜 A는 나의 계획이고, 플랜 B는 신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p181


이 문장은 마치 저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암이라는 예상치 못한 전환점 앞에서 저는 처음에 잠시 헤매기도 했지만, 곧 새로운 길을 찾아 지금까지 잘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인생도 살아볼 만하고, 나의 계획이든 신의 계획이든 모두 괜찮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인생이니까요.


빛이 보이는 끝을 향해, 저는 오늘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실명은 사전 동의를 받은 분들에 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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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