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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 처음이라는 무게

부족함과 성장의 교집합

by ligdow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원하는 일을 한다고 이렇게 설레고 신날 수 있을까?

서울의 아침, 사람들로 분주히 움직이는 거리와 지하철 안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아침 9시까지 출근이지만 8시 전에는 복지관에 도착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걸레를 빨아 매트와 거울, 치료 도구를 닦으며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즐거운 의식이었다.


오늘 만날 아이들의 차트를 챙기고, 컨디션과 기분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뇌성마비, 전반적 발달 지연, 근육병, 정신지체(현 지적장애)와 뇌성마비의 중복 장애 등 다양한 진단명을 가진 아이들이었고, 연령과 상태도 모두 달랐다. 같은 치료라도 접근 방법은 아이마다 달라야 했고, 발달 상태와 운동 능력에 따라 세심한 관찰과 맞춤형 계획이 필요했다. 즉, 모든 치료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


치료실 안에는 늘 보호자가 함께 있었다. 아이에 따라 보호자가 직접 치료에 참여하기도 했고, 단순히 지켜보고 싶어 하기도 했다. 나는 가정에서 주의해야 할 자세나 필요한 자극, 유도 방법을 안내했다. 보호자가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치료사에게도 보호자와 소통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한 기관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병원이나 복지관에서도 다양한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다. 혹시나 다른 기관의 치료사와 내가 같은 아이를 치료하는 경우,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치료에 참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아이를 더 깊이 이해하고 보호자와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치료 예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타 기관 치료실 이용에 대한 기록과 인지는 중요한 사항이었다. 아이가 즐겨 부르는 노래, 좋아하는 장난감,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동과 말투까지 꼼꼼히 적어두었다. 대학병원에서 진행되는 의료적인 처치와 재활 일정도 중요한 체크 사항이었다. 이렇게 모아진 정보들은 아이의 하루를 그리는 지도처럼 내 머리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00 병원 00 복지관의 물리, 작업 치료사 누구누구가 잘한다더라.”

“경력 있는 선생님이 확실히 다르더라.”

한 공간에 있으면서 보호자들 사이의 이런 대화가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이제 1년 차인 내 모습이 순간 더 선명하게 느껴지며 마음 한편이 위축되기도 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데...’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향한 간절함과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길을 찾으려는 애틋한 마음은 너무도 당연했다. 다만 나는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기를 바랐다. 오늘의 부족함을 채우고, 경험과 배움이 켜켜이 쌓여 언젠가 신뢰받는 치료사로 서게 되기를 바라면서.


무엇이든 처음은 낯설기 마련이다. 아이와 보호자를 처음 만날 때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감, 나의 부족함을 자각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배움이 되었고 조금씩 자신감을 쌓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치료 중 아이가 울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는 제법 침착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다시 치료에 집중시키는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 이 일이 나랑 잘 맞는구나. 잘하고 있구나.’

그 순간들이 조금씩 자신감을 심어주고 일에 대한 작은 확신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경험은 내 발걸음을 한층 또렷하게 비추는 빛이 되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더 배우고 공부하며 전문성을 갖추고 싶었다. 퇴근 후와 주말에도 관련 학회와 공부를 이어갔다. 하루를 꽉 채운 공부와 경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갔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과 전문성을 갖추었는지 끊임없이 점검했고, 부족함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 배움의 길로 나아갔다.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오후 3시쯤 혜미와의 만남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밝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혜미와 늘 환한 미소로 동행하는 어머님을 보면, 지쳐 있던 마음 위로 아침해가 떠오르듯 새로운 에너지가 내 안에 차올랐다.


그즈음 기억에 남는 남매가 있다. 6세 남자아이는 정신지체(현 지적장애)와 뇌성마비의 중복 장애가 있었고, 7세 여자아이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남매였다. 두 아이 모두 독립 보행이 가능했지만 치료가 필요했다.

어머니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었는데 남매를 키우며 늘 큰 무게를 안고 계셨다. 퇴근 후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한 번은 남매가 다니는 조기교실(장애아동 유치원 프로그램) 여름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이들을 캠프에 보내고 싶지만 불안해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살피며 내가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어머니는 안심하며 아이들을 보낼 수 있었고, 2박 3일 동안 처음으로 자유 시간을 가지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고마움을 전해 오셨다. 나 역시 아이들이 즐겁게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낯섦은 점차 익숙함으로, 두려움은 서서히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아이들과 함께한 매 순간은 즐거웠고 나를 단단히 세워주는 살아 있는 시간이었다. 사회초년생으로서 부족함과 고민은 여전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며 나아갔다.







*소장하고 있는 치료실에서의 유일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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