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미야, 사랑하고 축복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부모에게는 모든 자식이 다 소중하다. 나 역시 물리치료실에서 만난 아이들을 모두 내 아이처럼 생각하며 치료했다. 하나같이 천사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마음이 더 가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혜미가 바로 그중 한 명이다.
“선생님이 오늘 새로 오신 물리치료사 선생님이세요? 제 이름은 김혜미예요. 저는 다섯 살이고요.
생일은 5월 27일이에요. 꼭 기억해 주세요.”
(5회 차 글에 등장했던 바로 그녀)
그녀의 진단명은 myopathy(근병증)
막연한 표현으로 원인은 확실히 모르지만 근육 자체의 병변이나 이상 상태를 의미한다. 즉 1차적으로 근육 자체의 이상을 나타내는 질환군을 말한다.
몇몇 대학병원에서 필요한 검사를 여러 차례 받았고, 우리 복지관에 오시던 E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과장님께서도 여러 번 진료해 주셨는데 결과는 늘 같았다.
다섯 살에 만났을 때 그녀의 운동 능력은 네발 기기 자세로 이동이 가능했고, 앉은 자세에서는 일상적인 활동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몸통과 골반 주변, 그리고 대퇴부와 같은 주요 근육들의 근력이 매우 약해 스스로 서거나 보행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그녀는 매일 치료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 고관절까지 오는 long leg brace(LLB) 보조기를 착용한 뒤, 네발 워커를 밀며 보행 연습을 했다. 물론 그 옆에는 늘 어머니가 함께하셔야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그녀는 또래와 마찬가지로 신체적으로는 자라났지만 근육의 힘이 여전히 약해 움직임에는 제한이 따랐다. 체중은 서서히 늘어갔고, 그 무렵부터는 하지 보조기를 착용한 채 워커 대신 엄마 손을 잡고 보행 연습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혜미는 언제나 씩씩했다. 밝은 목소리로 반드시 걸을 수 있을 거라 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내가 지켜본 그녀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영리한 아이였다. 매사에 호기심과 열정으로 임했고, 그 속에는 늘 그녀 특유의 발랄함이 빛났다. 어떤 일이든 성실히 해냈기에 신체적인 제약이 그녀의 마음까지는 결코 가로막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혜미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봄날의 따스함과 함께 내 마음은 그녀에게 한층 더 가까워졌다. 감기 걱정이 덜한 5월부터 7월까지, 주말마다 우리는 복지관 수영장을 찾았다. 물속에서만이라도 발끝이 바닥에 닿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내가 먼저 제안한 일이었다. 물론 자원봉사였다. 그때 혜미 눈빛은 별처럼 반짝였고, 어머님은 미안해하셨지만 나는 오직 혜미만 보였다.
샤워장에서 수영복을 입혀 주는 것은 어머님이 해주셨다.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나는 혜미의 몸을 지지해 주며 걷기와 발차기를 유도했다. 나름의 수중운동치료이자 물결과 웃음이 어우러진 우리만의 놀이 시간이었다.
“선생님, 저 발이 닿는 것 같아요!”
혜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얼굴 가득 웃음을 띠었다.
“기분이 이상해요. 너무 신기해요!”
물속에서 발을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깔깔 웃었고
그 웃음소리는 파도가 되어 내 마음 깊이 출렁였다.
그녀를 품에 안고 다리를 힘차게 움직이게 하거나, 가드봉을 잡게 하고 몸통을 지지해 주며 서기 연습을 시켰다. 혜미는 발끝으로 수영장 바닥을 찾으며 웃었고 말하며 또 웃었다. 그 순간, 무릎이 조금 구부러진 채 잠시였지만 보조기 없이 ‘서 있는 느낌’을 가진 것이 그녀에게 작은 선물이 되었음을, 나는 그녀의 웃음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저 무겁죠? 요즘 살이 쪄서 더 무거울 텐데…”
“괜찮아. 선생님 힘세잖아!”
그녀는 있는 힘껏 다해 움직이며 말했다.
“야호! 선생님, 저 발차기하는 거 보이세요? 너무 신나요!”
“네가 좋으니까 선생님도 너무 좋아. 너무 신나! “
물의 저항을 이용한 근력 증가와 폐활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바라던 것은 혜미가 발끝이라도 땅에 닿는 그 감각을 느껴보는 일이었다. 늘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 당시만 해도 수치료는 널리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보곤 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에게 적용할 기회가 오기를 바라며. 다행히 우리 복지관에는 수영장이 있었고 이렇게 갖춰진 환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수치료: 의료적 목적달성을 위해 물의 여러 가지 다양한 물리화학적 성질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물리치료의 한 분야)
“선생님, 데이트도 하시고 쉬셔야 하는데 주말마다 우리 혜미 때문에 고생이 많으세요.”
어머님은 늘 미안한 마음을 전하셨다.
치료 시간 외에도 우리는 자주 만났다. 복지관에서 그녀의 집이 멀지 않아 퇴근길에 과자 몇 봉지를 사 들고 들러 잠시 혜미와 놀며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한 번은 그녀가 내 옷차림에 관심을 보여 입던 티셔츠를 빨아 건넨 적도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새 옷을 사주는 것이 더 나았겠지만 그때는 그 마음을 얼른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혜미는 대학생이 되었다. 의공학을 전공하며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삼성에서 인턴 생활을 마친 후 졸업과 동시에 그곳에 취직하며 오랫동안 품어온 꿈의 첫 장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작년 2024년 6월 1일, 혜미는 직장 동료인 남자친구와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다. 청첩장을 받아 든 순간 마음이 벅차고 뭉클했다. 나와 남편의 테이블 자리까지 세심히 배려해 주었건만 수술 일정이 6월 4일로 변경돼 참석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그녀가 보내온 결혼식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따스함과 벅참으로 물들었다. 당당히 걸어온 길 끝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환히 웃고 있는 혜미의 모습은 내게 기적 같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다섯 살에 처음 만난 그날부터 유년 시절과 수영장에서의 웃음,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시간이 모여 내 삶 속에 ‘김혜미라는 별자리’를 새겨 주었다.
나는 그때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잘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다른 누군가였다면 더 나았을까. 여전히 내 안에서 되뇌는 물음들이다.
그래도 지금, 혜미가 자신의 길을 당당하고 아름답게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그저 고맙고 다행이고 감동이다. 다시 한번 혜미와 그녀의 부모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이 글이 그녀가 잊었거나 흐릿하게 기억하는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스스로를 칭찬하며 미소 짓기를.
그리고 훗날 이 기록이 그녀의 마음에 또 하나의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 남기를.
혜미와의 인연은 잔잔한 물결처럼 오늘도 내 안에서 흐르고 있다.
사랑하는 혜미야,
지금처럼 늘 너답게 빛나길 바란다.
행복하렴!
https://youtube.com/watch?v=AVDNoqU7T4Y&si=vH_Cm8pJnX_jcf4A
방금 혜미한테 받은 따끈한 소식을 전합니다.
그녀를 응원해주시는 구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