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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준 사람

by ligdow


"안녕하세요."

박찬오. 그는 언제나 힘차게 휠체어를 밀면서 크고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가 지나갈 때면 바닥을 스치는 바퀴 소리조차 경쾌하게 들렸다. 처음에는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왠지 그 모습이 박찬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듯했고 그 속에서 기쁨을 찾는 것 같았다.


복지관 전체 회의에서 그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전문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자신의 업무뿐 아니라 타 부서의 업무 평가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팀 사업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모습에서는 약간 의아함이 느껴졌다. 재활치료팀의 다양한 사업을 잘 알지 못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태도가 솔직히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는 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치료사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나중에 친해지고 알게 되었는데 그런 시선은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치료사들이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한마디로 ‘복지관에서 전문가랍시고 잘난 척하는 부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씩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와의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했다.

나는 정상발달단계와 보바스 치료, 아이들의 근육 긴장도와 움직임 패턴을 조절하는 접근법 등을 이야기했다. 찬오는 귀 기울여 듣고, 때로는 질문도 던졌다. 나 역시 그가 맡고 있는 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해 물었고,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은 내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 보면 뭐든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통해 장애인 복지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물리치료사로서 그동안 치료 중심 관점에서만 생각해 왔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 그 구조와 환경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와 함께 일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내 시선은 점차 치료실 밖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장애인 그들이 살아갈 사회의 구조와 환경을 함께 개선해 나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부부가 리프트에서 추락해 한 분이 사망하고, 다른 한 분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이후에도 리프트 관련 추락 사고는 반복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이동권연대가 결성되었고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평소 퇴근길에 건물 입구에서 자주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던 야학 성인 학생들이 뉴스 화면 속에서 등장하는 모습을 보는 일도 잦아졌다.


어느 날, 그가 서울시청에서 시위 중인 장애인이동권연대 집회에 함께 가보자고 했다. 그들은 시청의 한 공간을 점거하고 집회 중이었는데 대부분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 분들이었다. 그들은 지하철 리프트 사고로 사망하고 부상당한 장애인들을 위해 서울시장(이명박)과의 면담 요청과 구체적인 안전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를 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비장애인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장애인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채 처절하게 목소리를 내고 요구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불평등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밤샘 집회 특성상 특히 체력적 어려움과 다양한 환경적 제약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분들의 눈빛은 강렬했다. 평소 나와 인사를 나누고 장난을 치던 몇몇 사람들의 눈빛 또한 서울시와 사회에 요구하는 결연한 목소리로 들렸다. 그들 속에 있는 찬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날 복지관 안과 밖, 두 세계에 존재하는 그를 보았다. 복지관에서는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이용자들을 만나는 일을 했다. 제도 안에서 실질적인 지원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복지관 밖에서는 거리에서의 활동가, 장애운동가로서 그는 장애인의 이동권과 자립생활을 위해 집회에 참여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며 때로는 그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싸우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광화문 사거리에서 우리는 잠깐 스릴 넘치는 운동을 즐겼다. 당시 그곳에는 횡단보도가 없고 지하차도만 있었기에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신호에 걸려 차가 오지 않는 틈을 타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으로 전력 질주를 했다.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깔깔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한동안 잦아들지 않았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그를 바라보았다. 밤새 휠체어에 앉아 있었음에도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당당함과 강인함이 그날따라 더욱 멋지게 느껴졌다. 새삼 존경심이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고 동시에 함께 집회에 가자고 해준 그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그는 마치 내가 낯선 길을 걸을 때 곁에서 조용히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 같았다.


그와 친해진 이후 세상을 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

그의 삶을 통해 나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그 방향을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부모의 손을 잡고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이 사회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

그 사실을 나는 박찬오를 통해 그리고 그가 보여준 세상을 통해 조금씩 구체적으로 배워갔다.


그는 스스로를 ‘장애해방전사’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들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의 무게를 알게 됐다. 그 안에는 그가 지나온 고난의 시간과 단단한 신념, 그리고 세상과 맞서온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가 말하던 자립생활운동의 이유는 분명했다.

어떠한 중증의 장애가 있더라도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비장애인처럼 지역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

그는 장애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며 그 길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내고 있었다.





며칠 전, 그와 통화를 하면서 20대에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고 하자 그가 말했다.

“김성호의 회상 노래 알지?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네~~~ 하하하, 없으면 어때.“


그래, 사진 한 장 남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그 시절의 기억과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선명하게 내 안에 살아 있으니.


그는 내가 좋아하는 옛 직장 동료이자 진심으로 존경하는 친구다. 그는 70년, 나는 75년생...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이렇게 부른다.

“박찬오, 차노“


나에게 박찬오는 그냥 박찬오다!





2001년 3•4월호 우리 복지관 기관지 직원 칭찬 코너에 실린 그의 모습이다. 카톡으로 보내주었더니 별 걸 다 간직하고 있다며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실린 책은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이런,,,




23.12.1 잠실역 엘리베이터에서 / 24.4.23 암 요양병원에서

*23년 11월에 암 진단을 받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24년 2월에는 내가 암 진단을 받고 서울 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20대에는 직장 동료, 50대에는 암 동료라니.

우리 인연도 참... 하하하




*그에 대한 소개는 아래 기사로 대신한다.

많은 기사 중에서 2004년 서울 신문에 실린 기사를 가져왔다. 젊은 그의 모습을 다시 보니 더 반가워서.

https://naver.me/GKbkUeb2


*지난 6월 우리 집 근처에서의 만남

세계 장애인의 날 한국장애인권상을 수여한 그의 소개글이 있다.

https://brunch.co.kr/@206973c0d8c14d8/276


*암이 사라지는 기적을 만들어낸 고마운 사람들 중,

https://brunch.co.kr/@206973c0d8c14d8/304



그는 현재 암 투병 중이다. 2023년 11월, 신장과 췌장에서 암이 발견되어 면역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이미 20년 전부터 주 3회 혈액투석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암이라니...
통화 중에 소식을 듣고 나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항암치료와 투석으로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박찬오답게 살아가고 있다.
작년 여름에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살면서 그곳에서도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10월 17일에 45회 차 항암 주사를 맞았다. 암 크기는 처음 상태에서 큰 변화가 없고 다행히 별다른 증상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암 따위에 지지 않고 오래오래 살기로
약속했다.



*메인 사진은 2018년 7월에 그의 일터였던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입구에서 찍은 것이다. 그는 일할 때 특히 더 빛난다. 그와의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




이 글을 쓴 지 오래라서 더는 미뤄지는 게 마음이 불편해서요. 저는 조금 더 회복하고 오겠습니다.

구독자분들께 자주 찾아뵙지 못하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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