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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kie Apr 06. 2023

아빠는 도박을 싫어해

-디즈니플러스 최신작 <카지노>의 관람후기

우리 아빠는 도박이나 노름을 싫어한다. 근래에 내가 강원랜드를 인생 처음으로 2번 다녀왔는데, 그것도 굉장히 싫어하셨다. 마냥 청렴결백하게 살아왔을 거라고 믿었던 아빠에 대한 자그마한 의심이 스멀스멀 피었던 건 그때부터였다. 


‘혹시 우리 아빠도 도박을 했다가 돈을 크게 잃은 경험이 있나?’   


하지만 이러한 의심은 나의 헛된 망상이란 걸 이번 주말에 깨달았다.


오랜만에 엄마와 아빠하고 석촌호수 근처에서 자전거를 탄 후, 송리단길에서 닭갈비를 먹었다. 열심히 먹으면서 우리는 당일날 같이 binge-watch한 디즈니플러스의 최신작 ‘카지노’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아빠가 과거에 겪었던 사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빠가 왜 도박을 안 하는 지 알아? 1980년대 초, 아빠가 중학생 때 말이야. 아빠는 그 당시에 전교 1등이었어. 그 때는 아빠가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줄 알았지. 그리고 그 때 공부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선도부장(학생들의 용모, 지각 등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뽑혔는데, 선생님이 아빠보고 선도부장 하라고 시키더라구. 그래서 열심히 학생들을 관리했지.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골칫덩어리로 유명했던 일진 친구가 되게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쓰고 선생님으로부터 혼나고 있는 거야. 선도부장이었던 아빠는 정의에 불타올라서 그 친구 대신해 사건을 해명해주었고, 억울함을 풀어주었지. 그 친구는 매우 고마웠는지, 해명이 다 끝나고 아빠한테 한마디 하더라.


“진욱아, 우리 집에 밥 한번 먹으러 올래?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신당동에서도 매우 언덕 위에 있던 그 친구의 집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어. 맛있는 밥을 먹고난 후, 친구가 “섯다”(화투 노름의 일종)를 할 줄 아냐고 물어보더라고. 자신 있게 안다고 하니까, 친구는 씨익 웃더니, 해보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5판만 해보기로 했는데, 이게 웬걸. 5판 다 지는거야. 심지어 아빠가 ‘장땡'이 나왔을 때도, 그 친구는 ‘38광땡’(족보 1순위)이 나오는 거지. 이후로 몇 판을 더했는데도 하는 족족 지더라고. 벙쪄있던 나를 보며 친구는 씨익 웃더라고.


“진욱아, 이게 다 우연인 것 같아?”

.

.

.


알고보니 그 친구는 ‘타짜’였던 형으로부터 카드 손기술을 배운거였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수에 관계없이 그들이 전판에 어떤 패를 가지고 있었는지, 카드 덱에 어떠한 패가 위치해 있는지 정확하게 다 기억할 수 있었지. 전교 꼴찌에 가까웠던 그 친구는, 그렇게 전교 1등한 아빠가 손써볼 틈도 없이 모든 판을 다 이겼지. 그러면서 그 친구는 한마디 하더라고.


“진욱아, 너처럼 공부하는 모범생은 절대 이런 노름판 오면 안돼. 눈 뜬 상태에서도 코 베이는 곳이 여기 노름판이야. 이런 눈속임, 카드 기술 알려주면 안되는데, 너는 정말 내가 고마워서 알려주는 거야. 공부 열심히 해서 너가 평생 하고싶었던 의사로 꼭 성공해”


아빠는 그 때 15, 16살밖에 안되었는데도 크게 깨달은거지. 


세상에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 분야는 무척 다양한 것이었구나. 내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다른 것도 다 잘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학교 성적이 절대적으로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겠구나.



그 때부터 아빠에게는 원칙이 생겼어.


1)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절대 자만하지 말 것.

2) 도박은 돈을 따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재미로만 갈 것.


너도 새겨들어. 세상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많아. 지금의 내가 잘났다고 해서, 20년 뒤에도 같을 거란 보장이 없고, 지금의 내가 부족하다고 해서, 평생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건 대단한 착각이야. 그러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 아참, 마지막으로 또 한번 명심! 도박은 돈 딴다는 생각으로는 절대 하지마렴.”


오랜만에 들었던 흥미로운 일화였다. 아빠에게 큰 가르침을 준 그 일진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빠에게 물었지만 아빠도 중학교 이후로는 그 친구와의 연이 끊겼다고 한다. 내 예상컨데, 그 당시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를 보고 “철없이 도박이나 하고다니는 사고뭉치 중학생 일진, 갱생불가한 비행청소년”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써도 그 누구도 그가 결백할 거라 생각을 못했겠지. 하지만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을 믿어주고 대신 해명해준 선도부장 '진욱'이 덕분에 누명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얼마나 고마웠을까. 직접 집에 초대해줘서 밥을 만들어주고, 자신의 전부였던 카드 기술(눈속임 등)을 알려주고, 절대로 노름을 하지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그 소년의 순수함에 마음이 따듯해지면서 슬퍼진다.


이름도, 얼굴도, 사는 곳도…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지만, 그 때의 선한 마음을 잃지 않고 그가 지금 어디에선가 정말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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