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옥봉은,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하고, 사헌부 감찰, 충북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의 서녀로 태어났습니다.
2)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글과 시를 배웠는데 시문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습니다.
3) 신분 때문에 첩살이밖에 할 수 없음을 알자, 옥봉은 결혼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갔습니다.
4) 옥봉은 장안의 시인 묵객들과 어울려 지내며, 선비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5) 어느날 옥봉은 시회(詩會)에서 조원이란 선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6) 옥봉의 사랑을 알게 된 아버지 이봉은 조원을 찾아가 딸을 첩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했지만, 이미 결혼한 몸인 조원이 거절하자 딸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이봉은 체면을 따지지 않고 조원의 장인에게 도움을 청하여 결국 조원의 장인 주선으로 옥봉은 소원을 이루게 됩니다.
7) 첩살이가 싫어 결혼을 거부했던 옥봉은 결혼 후 다른 사대부의 첩들과 시를 주고 받기도 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8) 조원은 옥봉을 받아들이는 대신 앞으로는 절대 시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라 하여, 옥봉은 그러겠노라고 맹세했습니다.
9) 어느 날 조원 집안의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조원과 친분이 두터운 파주목사에게 부탁을 해달라 했습니다.
10) 옥봉은 파주목사에게, 거울도 기름도 없이 가난하게 살지만 아내가 직녀가 아닌데 남편이 어찌 견우(소를 끄는 사내, 소도둑)이겠냐는 뜻의 시 한수를 지어 보냈습니다.
11) 이에 파주목사가 아낙의 남편을 풀어주었고, 이를 안 조원이, 시를 짓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옥봉을 쫓아냈습니다.
12) 옥봉은 그런 남편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으면서 혼자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2. 한 문장으로 압축한 사연
서녀로 태어난 옥봉은, 시를 쓰는 재주가 출중했는데, 시모임에서 조원을 만나 그의 첩이 되어 잘 살다가, 집안 산지기의 송사에 시를 써서 도와준 일로 남편에게 내쫓겨서도 남편을 그리워하는 시를 쓰면서 혼자 살다 세상을 떠났답니다.
3. 세상 참 어이가 없어서
옥봉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서녀라는 족쇄와 여자라는 굴레입니다.
조선 사회는 신분제와 가부장제의 질곡이 여자들에게 이중의 형벌처럼 가해졌습니다. 다른 좋은 점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조선 사회는 참으로 나쁜 사회입니다. 이에 대해 옥봉은 세상에 대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 참 좋은 세상이야 라고 느끼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옥봉에게서 보여지는 남편에 대한 순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문득 <어린 왕자>의 '길들여진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왕자>에서는 '서로 친구가 된다', '서로 인연을 맺게 된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지만, '길들여진다'에는 일반적으로 '익숙해진다'는 뜻이 있고, 부정적인 의미로는 '세뇌된다'라는 뜻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세 사회, 조선 사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어느 사회이거나 누구거나 간에 길들여진 채로 사회화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들을 모두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들여진 것들 가운데, 참으로 어이 없는 모습들, 황당한 모습들, 억울한 모습들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4. 그것참 딱해서
왜 저렇게 사나 싶은 참으로 딱한 삶의 모습들 속에서 자기 삶의 모습을 돌이켜 보는 겁니다. 길들여진 것들에 대해 각성해 보는 겁니다.
공기에 대해 각성해 보니 공기가 새삼 고마워지듯이, 제 주변에 너저분한 것들에 대해 각성해 보니 정리를 해야할 필요를 느끼듯이,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길들여진 것들에 대해 각성해 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친구의 버릇도, 아내의 자신에 대한 습관도, 자신의 아내에 대한 태도도, 너무 길들여져서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당장 바뀌지 않을지라도, 금새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각성하지 않으면 그냥 그저 그렇게 길들여져서 한 세상 사는 것이겠습니다.
5. 참으로 죄송합니다.
옥봉에게 참으로 죄송합니다. 옥봉의 속을, 옥봉의 삶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이렇게 옥봉의 삶이 이랬니 저랬니 하듯이, 누구의 삶을 평가하는 못된 버르장머리가 제게 쪄들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