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의 시는 삶 속에서 '도를 체현하고 있는 사람', 곧 도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민극(悶極)>이라고 했으니, 보통 '답답함이 극에 달함'이라고 해석하거나, '답답함의 극심함'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도인의 삶과 극심한 답답함은 서로 따로 노는 형국입니다. 울화가 치밀고, 그 울분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도 했겠지요. 그런데 매월당의 삶의 행적을 보면, 세상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방랑하면서 그 세상을 꿰뚫어보고 있는 깨달은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민극>이라는 제목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 의미로 해석해야, 그의 삶과 그의 시가 상통하도록 해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극(悶極)>에는 '답답함이 극에 달함'이라는 부정적 의미와 동시에 그래서 '답답함이 다함'이라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매월당의 시에 답함
매월당의 시의 내용에 대한 풀이는 생략하고, 시를 한 수 지어 매월당에게 바칩니다.
非丁非八 - 答梅月堂詩 비정비팔 - 답매월당시
山中無曆花自開 산중무력화자개
未逢時節漂方外 미봉시절표방외
松下坐睡忘季變 송하좌수망계변
脫出世間自在乎 탈출세간자재호
비정비팔 - 매월당의 시에 답하다
산중에 책력도 없이 꽃은 절로 피네
시절인연을 만나지 못해 방외로만 떠돌다
소나무 아래 앉아 졸면서 계절이 바뀌는 걸 잊고
출세간마저 벗어던지니 자재하지 아니한가?
매월당은 시재(詩才)와 세상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시절인연을 맺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방외인'의 삶입니다. 조선이 유교의 나라임을 내세웠다면, 매월당은 유교의 형식과 내용을 넘어 유교의 밖을 향했습니다. '시절인연'이라는 표현에서는 매월당이 불교에 귀의한 것을, 좌망(坐忘)이라는 표현에서는 노장사상에도 밝았음을 나타냈습니다.
매월당의 진면모는 이것 저것에 두루 능통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가 어디라도 개의치 않으면서,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진정 자유인의 면모를 보여준 데 있습니다.
불교의 표현을 빌리면, '세간'의 삶을 떠나 '출세간'의 삶을, '출세간'의 삶을 떠나 다시 세간의 삶을 살아가는 '출출세간'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불교적 삶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불교인의 '출출세간'의 삶에 대해 자유인의 '탈출세간'의 삶이라는 말을 써보았습니다. 그 자유인의 삶이 '자재'(自在)한 삶이랄 수 있겠습니다.
국궁(國弓)과 우리 춤사위에서 '비정비팔(非丁非八)'이라는 용어를 가져와 시의 제목으로 삼아 보았습니다. 옆으로 선 자세(丁)도 아니고, 바로 선 자세(八)도 아닌, 삐딱하니 어긋난 자세로 서서, 안과 밖, 이것 그리고 저것, 시(是)와 비(非)를 아우르는 것을 '비정비팔'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비승비속(非僧非俗)이라는 특정한 양태를 넘어, 그것을 일반화하는 삶의 자세로 '비정비팔'이라는 말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