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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의 자등명 법등명

친애하는 벗 세훈에게 부치는 편지 1

by 청와

1. <현자들의 죽음>에 대한 감상문에 대해


자네가 <현자들의 죽음>을 읽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어보았다네. 거기에 내가 이렇게 댓글을 달아 놓았더랬지.


<이 모든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나의 마음을 네게 전할 것이다~

너의 이 글에서 삶의 통찰이 배어 있는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졌다.

내가 아내와 술을 마시고 있으므로 이 글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으로 미룬다.

ㅇㅋ? 다음에 보자~

세훈이를 사랑하는 수경으로부터~♡♡>


이제 그 약속대로 자네에게 편지를 써서 내 생각을 전하기로 했네.


'죽음은 삶의 연장이고 겁내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그냥 삶의 연장으로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맞이하고 삶을 충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위에 따온 서두 부분이 자네의 감상 총평인 것 같으이.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현자들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두고 내린 결론인 것 같으이.


서두 이후부터는 책 내용 가운데 중요하다고 여긴 대목을 간추려놓은 것 같으이. 핵심은 죽음과 관계된 '윤회'와 '열반'이라는 개념일세.


죽음과 윤회와 열반을 일반 사람들은 겪어본 것들이 아니기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초경험적인 영역일 수밖에 없다네.


그렇다면 현자들은 그와 같은 초경험적인 영역을 '인식'함에 있어 어떤 자세들을 취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거라네.


그래서 먼저 현자들의 인식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네.


2. 인식방법에서 느껴지는 중고대인의 알음다움에 관하여


2.1. 싯다르타의 '자등명 법등명'


싯다르타는 생애 동안 수많은 설법을 남기셨다지. 싯다르타가 생을 마감할 때 아난다라는 제자가 슬픔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지.


自燈明 스스로 등불을 밝히고

自歸依 자기에게 의지하라

法燈明 법으로 등불을 밝히고

法歸依 법에 의지하라


'내가 연기하는 오온이 모두 공하다 했거늘, 어찌 슬퍼하느냐? 너는 내 설법을 다 외우고 있으면서도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였느냐?'


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걸세. 참으로 알음답지 아니한가?


누가 무엇을 설했건 간에, 그 설한 말의 이치(法)로 자기 스스로 등불을 밝혀 무명(無明)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말로 이해되네. 결국 의지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잖는가.


자기 스스로 법의 등불을 밝혀 무명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곡진한 말씀이신 걸세.


이제 나 스스로 법의 등불을 한 번 밝혀보려네.


아난다는 어찌하여 사리자와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는가? 둘 다 싯다르타로부터 같은 설법을 듣고 그 내용을 다 외우고 있지 않은가?


앎(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함(行)의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 숭산스님이 '오직 함'이라고 하는 설법을 많이 하신 듯하이. 학행이 일치해야 한다는 조선의 선비들의 꼿꼿한 모습도 보이는 듯하이


나는 앎 자체의 문제에 대해 더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보네. 앎이 함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앎이 기억이라는 암송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에 내면화되어야 한다는 걸세.


예컨대 미녀와 추녀는 뒤집어쓴 가죽부대가 다를 뿐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들, 자기내면의 느낌의 반응체계인 영혼이 대단한 추녀를 보는 순간 움찔했다면(?), 아니면 대단한 미녀를 보는 순간 움찔했다면(?) 아직 그 생각이 자기 영혼에까지 내면화되지 않았다는 걸세.


이치로 보아서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라고 아무리 이야기한들, 삶과 죽음이 아무리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한들, 그 이치가 자기 영혼에까지 내면화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세. 삶과 죽음이 둘이냐 하나냐 하는 것은 이치의 문제이고, 그 이치가 어떤 무엇이든, 그것이 자기 영혼에 내면화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가장 요긴하고 소중한 거라는 말일세.


(이번 첫 서신은 여기까지일세~ 아내가 늦게 일 끝나고 들어와서 아내와 수작을 해야겠네~

아무 때든 다음 서신에서 또 봄세~

제2신의 내용은 2.2. 최제우의 불연기연으로부터 이어질 걸세~)

2025년 2월 26일 늦은 밤 청와 박수경 恭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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