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벗 세훈에게 부치는 편지 3
두 번째 서신에서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의 종교적 각성이 수운에게서 '불연기연'이라는 논설로 설파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네.
이번 세 번째 서신에서는 그 이행기의 학문적 논쟁이 혜강 최한기라는 기학자(氣學者)를 통해서 인식론적으로 어떻게 완정(完整)되었는가를 이야기하려네.
2.3. 혜강의 '추기측리'
혜강 이전에 조선초에 이미 화담에 의해 기일원론에 입각한 우주론이 정립(整立) 되었다네.
조선 중후기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간에 7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며, '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같으냐 다르냐 하는 '인물성동이논쟁'을 벌였다네. 후학인 고봉이 양보하는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그 결과는 '인물이든 사물이든, '그 본성은 기가 하나이기에 같고 기가 여럿이기에 다르다'고 하는 기일원론논자들의 주장이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등의 후학들에 의해 우세하게 이어지게 되었다네.
기일원론에 입각한 우주론과 인성론(성정론)에 인식론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일은 혜강 최한기가 맡아서 이루었다네. 그렇게 기일원론 삼단 콤보가 완정되었다네.
2.3.1. 천지유행지리와 인심추측지리
천과 지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까닭에 천지가 곧 하나의 기인 우주라네. 그래서 기일원론의 우주론을 천지코스몰로지라고 한다네.
천은 높고 불변하며, 지는 낮고 불상(不常)하다고 하는 이원론을 버리고, 천지가 모두 유행한다고 하는 일원론을 택했다네. 우주라고 할 때, 우(宇)는 공간을, 주(宙)는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네. 천지라고 할 때도, 천(天)은 시간을, 지(地)는 공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네. 그 천지가 유행한다고 할 때, 유(流)는 시간을, 행(行)은 공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 우주 천지 유행이 모두 일관된 시공간 일원론으로 인식되도록 했다네.
천도 변화하고 지도 변천하는 그 자체의 이치가 천지유행지리라고 하는 걸세. 그 유행(流行)을 혜강은 '활동운화(活-생기, 動-운동, 運-주선, 化-변천)'라고 했다네.
사람 또한 그 천지 만물의 한 가지여서, 유행 따라 사는 존재라네. 그런데 사람에 이르러 유행을 따르면서 사는 것만이 아니라 유행을 미루어 볼 줄 아는 지혜가 생겼다네. 인간이 언어를 창안해 낸 덕분이라네.
언어가 이룬 공과 과가 있을 터인데 다른 데서 이야기하고, 인간이 언어를 통해 천지가 유행하는 이치를 추측하게 되었다네. 그렇게 인간이 천지유행지리를 인식해서 얻어낸 이치를 '인심추측지리'라는 말로 나타냈다네. 고정불변의 이치를 얻어내는 것도 지난한 일이거늘, 천변만화 유행하는 이치를 얻어내는 일을 해야 하는 거라네.
2.3.2. 추기측리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지만, 유행을 한 번 꿰보겠다는(통찰해보겠다는) 멋 속에는, 천금을 주고도 바꾸지 않을 기막힌 맛이 그 속에 들었다네.
오늘날 우리가 추측(推測)이라고 쓰는 말의 원전이 혜강의 <추측록(推測錄)>이라는 책일세. 어떤 것을 미루어서(推) 다른 것을 헤아려본다(測)는 뜻일세.
이 말은 무한하게 변통해서 쓸 수 있는 인식론적 기본을 간직한 말일세.
추기측리(推氣測理), 기(현상)를 미루어 리(현상이 작동하는 이치)를 헤아려 보는 걸세.
추정측성(推情測性), 정(이러저러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을 미루어 성(그 사람 됨됨이인 성품)을 헤아려 보는 걸세.
추기측미(推旣測未), 기(旣知)의 사실을 미루어 미(未知)의 사실을 헤아려 보는 걸세.
추아측타(推我測他), 나를 미루어 남을 헤아려 보는 걸세.
추사측기(推斯測其), 이것(斯)을 미루어 저것(其)을 헤아려 보는 걸세.
이것을 대표해서 <추기측리>의 인식론이라고 하는 걸세. 이로써 기일원론에 입각한 우주론, 성정론, 인식론이 완비되었으니, 모두 무상으로 애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아니 기쁠쏜가?
2. 4. 율곡의 <격몽요결서>
이왕 중고대인들의 인식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에 내 결론을 이야기해보려 하네.
인식이 곧 학문이고, 학문이 곧 일상이고, 일상이 곧 삶일세. 율곡 선생께서 그 곡진한 이치를 <격몽요결서>에서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일러주셨네.
擊蒙要訣序
人生斯世에 非學問이면 無以爲人이니 所謂學問者는 亦非異常別件物事也라.°°°今人은 不知學問在於日用이요 而妄意高遠難行 故로 推與別人하고 自安暴棄하니 豈不可哀也哉리오?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비결의 서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하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이른 바 학문이라는 것은 또한 이상한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고원(高遠)해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학문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버리고 스스로 포기함을 편안히 여기니 어찌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 지금 비록 시장통에서 과일을 팔고 있지만, 그 시장통이 학문의 장(場)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하네. 청와는 시장통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학생임이 분명하이~!
오늘은 쉬는 날이라 아침에 고구마 쪄서 먹고 자네에게 글을 쓰고 있네. 저녁에 또 시간이 나면 봄세.
2025년 2월 28일 한 낮에
청와 박수경 醒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