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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Jun 10. 2024

남고와 공학을 오가며

그 입 다물라

* 이 글은 전적으로 저의 짧은 경험만을 토대로 하여 쓰여졌습니다.



26살의 나는 속된 말로 ‘ㅈㄴ’ 만만했다. 낯선 지역 남고에 초임으로 부임해 고3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우리의 나이 차이는 7살. 나이가 좀 많은 친누나 또는 아는 동네 누나 정도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들은 날 어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입을 털었다. 진짜 누나였다면 정수리에 꿀밤이라도 내리꽂았을 텐데. 당시 인터넷 세상과 남고생의 두뇌는 일베에 점령당해 있었다. 반에서 “OO이 일베 해요!”하고 웃고 떠들며 서로 나에게 일러바쳤지만, 내가 보기엔 성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 수준은 도진 개긴이었다. 수업 자료 영상을 틀어주면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등장하는 여성을 ‘얼평’하기에 바빴고, 모든 여자는 남자의 돈을 뜯어내는 ‘된장녀’가 틀림없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남학생 A를 만났던 옆학교 여학생이 헤어진 후 남학생 B를 사귀게 되면 순식간에 ‘걸레’라는 호칭이 붙었다. 누군가 호감 있는 여학생에게 1원이라도 쓰면, 떡볶이라도 사준 게 소문이 나면 삽시간에 ‘병신’ 취급을 받았다.  


교육자로서 의무감을 느꼈다. 매일 성희롱과 여혐이 만발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귀엽고 웃기고 순박한 면도 있는 내 아이들이니 품어가며 여러 번 타이르고 논리적으로 설득했다. 여성들이 너희의 얼굴을 평가하면 괜찮겠냐고, 그건 타인에 대한 큰 결례라고. 여성도 자신의 자아실현과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남녀 모두 성적 자기 결정권은 공평하게 가진다, 상대의 호감을 얻으려면 먼저 잘해줘야 하지 않겠냐 등등. 그들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시에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중에 마동석 배우처럼 건장한 체육 선생님이 우람한 팔근육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에게 급한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그분이 등장하자마자 순식간에 교실은 적막과 긴장감으로 팽팽히 들이찼다. 나가고 몇 초가 더 지나도록.     


“야, 너네 정말 비겁하다. 어떻게 태도가 그렇게 다르냐.”     


아이들은 내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겸연쩍어했다. 남자아이들의 속마음까지는 바꾸지 못하더라도 사회에서 저질스러운, 편견에 가득 찬 말 정도는 상황에 따라 참을 수 있는 교양인으로 키우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내 백 마디의 말보다 교탁을 손날로 박살 내는 퍼포먼스가 훨씬 효과적일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선생님이었지만, 동시에 작은 체구와 부드러운 말씨가 우습게 보이는 ‘여자’였다.          



그곳에서 4년을 보내고 새로운 지역의 남녀공학 고등학교로 전보받았다. 신설이었고 유난히 거친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학교 남학생이 방과 후 타학교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서 그곳 선생님의 안면을 가격했다. 3학년 일진이 막 헤어진 여자친구의 인스타 DM을 훔쳐보고 다른 남학생과 대화를 나눴다는 것에 눈이 돌아 수업 중 난입해 여자아이의 머리채를 쥐어 틀었다. 한 여학생이 자기 집에서 사귀던 후배 남학생을 때려서 학폭(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 열렸다. 우리 반에서는 한 남학생이 경계성 지능의 여학생을 조롱했고, 내가 그 행동을 지도하며 훈계하는 동안 분에 못 이겨 교무실을 뛰쳐나가 주먹으로 창문을 박살 냈다. 나머지 아이들은?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발생하면 조용히 지켜보며 가담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훌륭하고 양심적인 행동을 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거친 학교에서도 남녀가 함께 있으면 지저분한 성적 발언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뒤에서는 뭐라 할지언정 남학생들은 여학생들 앞에서 ‘가오’를 잡고 싶어 했고, 잘 보이고 싶어 했다. 거기에 더해 여학생들의 상냥함과 강단에 기대어, 남학생 반에서라면 '찐따'취급받았을 학생까지도 더 평화롭고 순조롭게 학급 생활에 녹아들었다.         

 


세 번째 학교는 또 남고였다. 첫 번째 학교에서의 일들이 반복됐다. 이 시대는 일베가 숨이 많이 죽고(숨만 죽고 그 사상은 기본 사고가 된 채) 메갈과 페미가 핫이슈로 떠올라 있었다. ‘82년 김지영’이 밀리언 셀러에 오르는 동안 그 책의 단 한 줄도 읽지 않은 남학생들이 나에게 읽었냐고(읽었다. 소설이 아니라 보통의 여성이 살며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나 다름없었다.) 물으며 사상검증을 해대고 매일 그 책을 폄하했다. 나는 교과서에 나온 페미니즘적 주제의식을 가진 소설을 가르쳤고, 아이들의 가치관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남녀평등을 다룬 해외 토크쇼 영상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페미니즘의 필요성과 그것이 여성우월주의가 아님까지 설명했다. 그해 나의 교원평가는 처참했다. 수업 중 남학생들은 종종 여자가 되어 남자들의 돈을 빨아먹으며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말들을 했다. “네 얼굴로 여자가 되면 어떻게 되겠니.”하고 점잖게 맞받아쳐주고 모두 웃어대며 넘어갔지만 씁쓸했다. 남학생들은 본인이 여성이 된다면 무조건 외모가 뛰어나게 아름다울 거라 전제했다. 그건 외모가 아름답지 못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공기 같은 존재임을 의미했다. 외모가 아름답든 아니든 남자아이들에게 여성은 온전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다음으로 지금의 학교에 이르렀다. 공학 중학교에서 공학 고등학교로 올라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학교는 1학년만 남녀분반을 했는데, 남학생들은 실수로 가끔 음지의 말을 하고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내주면 인터넷 방송에서 유행하는 점잖지 못한 춤을 췄다.(나는 인터넷을 늘 가까이했으므로 이들의 언행을 다 알아들었지만 모른 척해주었다. 힘들다, 정말.) 아니면 도서실 수업을 가서 사전에서 야한 말을 찾아 펼쳐놓는다던가. 그래도 일전의 남중에서 남고로 왔던 지난 아이들과는 수준이 확연히 달랐다. 여전히 남학생들은 성적 호기심으로 여학생을 대하고는 있었지만 그건 어느 정도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였고 상호 간에 예의가 있었다. 화장실 다녀와서 손 씻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손을 안 들긴 했지만. "데이트 중 여자친구가 화장실에 다녀온 네 손을 잡았을 때 물기 하나 없으면 기분이 어떻겠니!"


그곳에서 1학년 여자반 담임이 되었다. 명랑하고 엉뚱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내 교직 평생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며 상담을 했고, 화이트데이에는 사탕을 선물했다. 연애와 이성 문제를 이야기를 할 때 불편한 말을 들을까 촉각을 세우지 않아도 됐다.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 낯선 지역으로 와 적응하지 못해 전학을 희망하는 아이도 반의 따스한 분위기에 이끌려 돌아왔다.(나 때문에 돌아왔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한 마음이 되어 체육대회에서 준우승해서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연말엔 교실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장식하고 떡볶이 파티를 열었다. 가장 좋은 건 남자든 여자든 모두 인간이라고 가르치고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녀평등에 대한 성찰이 깊어질수록 남성의 반대편 세계에서 결혼을 희망하는 여성의 비율 착실히 줄고 있다. 물론 결혼은 해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래도 아이들이 긴 인생에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는 건실한 관계를 맺어가며 살기를 바란다. 남중에서 남고로 진학해 여자들을 유해한 매체로만 배워 그들을 성적 대상, 돈만 따지는 존재로만 보는 남학생들이 유독 안타깝고 씁쓸하다. 그로 인해 그들에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여성들도, 진정한 관계 맺음을 하지 못할 남성들도. 나만의 경험이지만 공학의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 생활할수록 그들이 '이상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 말과 행동이 순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학교, 저런 학교들을 지나오며 느낀다. 잘 보이지 않지만 남학생들은 자그마한 어깨를 가진 여학생들의 보이지 않는 부드러움과 상냥함에 기대는 면이 분명 있다고. 허나 그런 미덕과 아름다움을 여성들에게만 요구하는 세계는 가혹하며 여학생들에겐 그러할 의무가 없다. 카페의 창밖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학생들이 보인다. 남녀 모두 명랑함, 부드러움, 씩씩함, 지성 등등 자유로운 자신만의 성격적 특성을 가지되 그 아래에는 성별을 초월한 인간에 대한 존중이 깔려있기를 바란다.


교사로서 보낸 마지막 해가 지극히 행복했음에도 나는 아직도 복직이 두렵다. 또 어떤 말들이 나를 아프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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