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가지고 있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소망. 누구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좋으니 나를 사랑해 주었으면. 이 소망은 깊이가 없는 우물, 밑바닥이 없는 컵과도 같습니다. 사랑받고 있건 아니건, 받고 있는 사람이 크던 작던, 가뭄에 비를 찾듯 그리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랑을 갈망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뭘까요.호르몬이 만들어내는 착각일까요?성적 욕망이, 집착이나 소유욕이 만들어낸 허상일까요?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세상에 사랑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쩌면 그래서 모든 역사가, 모든 문화가, 모든 사람이 사랑이라는 화두를 끊임없이 논해왔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소망하고 그 반대의 상황은 두려워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나를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은 아무리 강인한 인간이라도 한순간에 크나큰 공포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넘어선 절망적이고 두려운 그 감정은 인간이 타인과의 연결을 본능적으로 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테지요.
어쩌면 인간의 생은 타인에게 연결되고 싶은, 사랑받고 싶은 갈급하고 애달픈 몸짓의 역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아주 어린아이부터 아주 늙은 노인까지 모두의 가슴속에 품고 있는 바람이지요. 저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욕심이 많았나 봅니다. 그 누구도 떠나보내기 싫었거든요. 가족부터 친구, 연인까지 모두요. 나와 연결된 사람 모두가 나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요. 부모와 자식도 언젠가는 서로를 보내주어야 하는 것을요.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를 돌이켜보면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던 눈빛, 애정 어린 말과 행동이 주는 충만감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은 상상 이상으로 큰 행복과 전율을 가져다주었지요. 하지만 관계는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쁨과 행복, 꼭 그 크기만큼의 슬픔과 절망도 같이 주었지요.
사랑받고 싶다는 소망은 깊이가 없는 우물과 같다고 했었지요? 아무리 받아도 부족하게 느끼고 더 원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불안과 두려움의 순간은 매번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던 눈빛, 애정 어린 말과 행동이 조금이라도 바뀌거나 줄었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 생각이 한 번 머릿속에 심어지면 똑같은 말과 행동도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한 순간에 사랑으로 충만해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던 존재에서 세상에서 제일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알고 보면 사랑스러운 구석이나 매력적인 구석 하나 없는, 사랑할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들켜버린 느낌.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하루에서 수십 번씩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수한 생각들을 갈무리해 보면 결국 가장 강렬히 남는 것은 두려움이었어요.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불안에 떨고 있는 내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방법은 상대가 떠나가기 전에 내가 그만하는 것, 버려지기 전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사랑에 대한 소망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도 나와 같은 두려움을, 불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인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도 나도, 얘도 쟤도,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드러내지는 않지만 모두가 관계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제 아무리 아름답거나 재능 있는 사람도, 그 아무리 유명하거나 잘난 사람도 타인의 사랑을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을까요? 타인의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다른 사람보다 욕심이 많아 관계에 집착했던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다른 사람보다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