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서 해방되기_그런 날이 있다

세상에서 지워져 버리고 싶은

 내리는 비에 나도 같이 녹아 없어져버리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우울함이 목구멍 안까지 꽉 차오르면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둘러싸고 조용히 은둔한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게, 아주 깊은 곳으로 끝없이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우울이 찾아오면 지나간 사람들도 함께 찾아온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나를 상처 줬던 사람과 내가 상처 줬던 사람. 그리고 속절없이 사람에 흔들리고 또 상황에 흔들리던 한심했던 나.                                

 과거의 인연들과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 나를 에워싼다. 왜 그렇게까지 밖에 하지 못했어? 너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그리고 지금의 나를 생각한다. 넌 여전히 똑같아, 나아지는 게 전혀 없구나. 그대로야. 생각이 생각을 물고 과거가 과거를 끄집어내서 결국에는 한 지점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이런 너를 도대체 누가 사랑하겠어?

 그렇게 나는 조용히 지쳐간다.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고, 아무도 나를 생각하지 않는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기분. 나의 십 대와 이십 대는 지독하게 우울했다.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노라면 드는 생각.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을 거야.' 슬프기보다는 그저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 우울이 끝을 달리면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울 가치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못난 나를 어쩌면 좋을까. 나 자신이라도 날 알아줘야 하는데 그게 도무지 쉽지가 않았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너무도 어려웠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으려, 녹아 없어져버리지 않으려- 나의 삼십 대는 날 이해하고 날 좋아하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했다.

 나에게서 사랑할만한 구석을 찾는 건 친구도 애인도 가족도 해주지 못했다. 깊은 우울에서 나를 끄집어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 내 영혼을 구원해 줄 나의 구원자, 미정.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것은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자꾸만 가라앉는 그녀를 끄집어내야 했다. 운동도 시키고 산책도 시키고 맛있는 음식도 먹이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야 했다. 그녀를 사라지게 할 수 없으므로. 나 아니면 아무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으므로. 그녀가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은 내 세상이 사라지는 것이기도 했으므로.

 그녀는 요즘도 때때로 우울에 빠지곤 한다.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사람에게 상처받거나, 스스로가 싫어져 자기혐오에 빠지는 날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한심하게 보지 않는다. 그녀는 나의 전부이자 내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조금은 부족할지도 모르는, 조금은 불완전할지도 모르는- 하지만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녀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일으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