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에서 해방되기_사랑하자, 그리고 기록하자
나의 이야기를
돌이켜보면 평생 자유롭기를 바랐다. 딱히 뭔가가 날 구속했던 건 아니다. 그냥 항상 어딘가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막상 하는 것은 없었다. 그저 깨어있는 척, 쿨한 척하며 살았을 뿐. 뭔가를 좋아해 본 적도 있었고, 나름대로 성취를 이루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무모한 도전은 해 본 적이 없었고, 무언가에 푹 적셔져 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햇수가 강산이 세 번 바뀔 정도가 되자 자유롭길 바라는 바람은 갈망이 되고, 갈망은 무기력함이 되었다.
자유를 꿈꾸지만 막상 자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지. 그저 어딘가 꽉 막힌 느낌이 드는 데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르겠는.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일은 한다. 사회적인 동물이 되어야 하니 사람도 만난다. 취미랍시고 이것저것 시도도 해본다.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내 안에서 자꾸 뭔가가 빠져나가는 기분만 들뿐.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나에게는 굴레인 걸까?
햇수로 삼 년을 만났던 전 애인이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휴대전화 저장 공간이 부족해 오래된 카카오톡 채팅방을 정리하려 목록을 살펴보던 중이었다. 놀라웠고, 감탄했다. 그리고 기뻤다.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인생의 새로운 장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뭉클하달까. 그러나 불안하거나 부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 때는 그랬던 적이 있다.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을 타인을 통해 채우려고 했던 때가. 결혼이라는 것으로 인생의 성취를 부여잡고 싶었던 때가. 나는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비연애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깨달았을 뿐이다. 나의 갈망은 내 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래서 연애나 결혼을 통해 나의 갈망을 해소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맞지 않다는 것을.
지금의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은 오로지 나 자신과 관계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사람을 통해 내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행복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마 나는 지독한 고집쟁이 거나 멍청이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림이거나.
나는 항상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모르겠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벽을 맞닥뜨리기 일쑤였다. 목적과 이유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항상 불안하고 허전한 걸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나 속상하지만 인생에서 뭔가 이뤄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나의 괴로움은 여기서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너 그래도 네 밥벌이도 하고, 이것저것 하잖아." 그렇게 말해준 친구도 있다. 하지만 마치 욕구불만처럼 내 안의 답답함은 커져만 간다.
그러다 이런 말을 들었다. "혹시 그거 뭔가를 계속 소비하기만 해서 그런 거 아니야?" 돈을 소비하고, 감정을 소비하고, 에너지를 소비하고. 돌이켜보니 나는 끝없이 뭔가를 소모하기만 했다. 그럼 혹시 내가 뭔가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낸다면 이 공허함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단단해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자신으로부터 오는 사람들. 부모도, 배우자도, 자식도 아닌 스스로가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모습은 너무나 튼튼해 보였다. 어쩌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짐작컨대 나의 해방은 거기에서부터 올 지도 모른다. 나의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이 불안, 어쩌면 나는 아주 쓸모없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이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는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려면 나는 소비의 삶을 멈추어야 했다. 세상의 잣대에 맞추어 돈을 소비하고, 감정을 소비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나를 채울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오롯이 나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그것은 무엇일까?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아주 아주 작더라도 그만의 재능이 있으니까. 단 한 명만이 필요로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생산해 내는 인간이 되고 싶다, 고 생각하다 두 가지가 떠올랐다. 그건 바로 '사랑하기'와 '글쓰기'였다.
개인적으로 미디어에서 되풀이하는 사랑 타령이 지겹다고 느끼는 나이지만, 이성 간의 사랑이라는 테두리를 지운다면 사랑이야말로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마음만 먹으면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그리고 이 원칙을 깨뜨리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사랑이 모자랄 일도, 멈출 일도 없다. 계산을 할 필요 없으니 내가 소모될 일도 없다.
그리고 글쓰기.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쓰는 글은 잘 안 써지지만(정말이지 더럽게(?) 안 써진다.) 내가 하고픈 얘기를,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쓸 때면 아픔도 피곤함도 사라진다. 글을 쓰고 있노라면 어떨 때는 손에, 아니 온몸에 날개가 돋친 것만 같다. 어쩌면 나의 본능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유로워질 길은 이것이라는 걸. 지금은 알아주는 이 없어도 언젠가 단 한 명에게라도 필요한 글이 되기를,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하며 글 쓰는 것. 요즘 난 나의 가치를 여기서 찾고 있다. 사랑하며 글 쓰며, 그렇게 채워지는 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