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고, 내 삶을 바꿔주는 달리기.
가끔 나는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이유 만으로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한다. 그런 달콤한 자아도취는 어쩌면 보잘것없는 나의 하루하루를 빛나게 해 주고,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 주고, 결국에는 내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만 같다.
달리기 하나로 그게 가능하냐고?
그렇다. 물론 가능하다.
달리기 하나로 세상을 바꾼 사람도 있는데, 내 삶 하나 못 바꿀까, 하는 확신을 가지게 한 인물이 있었다.
"If you are losing faith in human nature, go out and watch a marathon"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 여성 최초의 마라톤 참가자.
우연히 이 문장을 보게 되었는데, 캐서린 스위처라는 이름 옆에 쓰인 그녀에 대한 설명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여성 최초의 마라톤 참가자라고? 그녀는 누구일까?
1960년대 미국, 특히 보스턴 마라톤 조직 위원회는 여성의 마라톤 참가를 금지하고 있었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여성이 800m 이상을 달리면 자궁이 내려앉는다는 주장이 믿어지는 시대였다고 한다. 당시 캐서린은 시러큐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 중이었는데, 코치가 "여성은 마라톤을 뛸 수 없다"는 말에 강한 반발심을 느껴 참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이니셜 K.V. Switzer라는 이름으로 참가를 하게 되어 보스턴 마라톤 조직위도 여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여 등록을 할 수 있었다. 달리는 도중, 대회 조직위원인 존 세물 존슨이 그녀를 보고 격분하여 코스에 뛰어들어 그녀를 밀어내려 하였으나 그녀의 남자친구(미식축구 선수)가 밀쳐내어 그녀는 계속 달릴 수가 있었다. 결국 그녀는 4시간 20분에 완주할 수 있었으나, 남자만 공식 기록이 인정되어 그녀의 기록은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었다.
1967년 그녀의 마라톤 완주는 그 자체의 의미도 값지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한계에 과감히 맞선 그 용기에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녀의 용기 있는 달리기 덕분에 차별적인 여성의 스포츠 기회 제한에 대해 사회적인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달리기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분야에 있어 여성을 제한하는 제도를 없앨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그녀의 달리기는 세상을 바꾼 셈이다.
그녀의 마라톤 참여를 거부했던 보스턴 마라톤은 5년 후 1972년 여성의 공식 참여를 허용하였다. 그녀는 1975년 다시 참여한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51분의 기록으로 완주하였고 이 후로도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하며 보여주었다. 결국 1984년 올림픽에서 여성의 마라톤 종목이 채택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로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그녀는 과거 역사 속의 인물로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 달리는 현재 진행형 러너라는 것이다. 78세의 나이인 지금까지도 주 6회 달리기를 하며 주 1회 스프린트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5k 마라톤 대회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다. 그녀의 실천과 행동을 통해 달리기는 성별을 뛰어넘어,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상 속에서 꾸준히 하는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의 가치를 넘어, 나이, 체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Life is for participating, not for spectating."
그녀의 말속에 깊은 울림이 있다. 나의 한계를 어떤 선입견이나 시대적 착오에 맞춰 미리 정하지 말고, 어떤 나이라도, 어떤 성별이라도 관계없이 참여하고 움직이고 실행하는 사람만이 삶을 진정한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운동화를 신고 나설 수 있다면, 나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리며 나는 나를 믿게 되고 그 작은 믿음이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 믿으며, 오늘의 달리기가 나를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낭만적인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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