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야기, 위탁운영계약을 아시나요?
22년 07월의 바리스타
관공서, 지하철, 학교, 대형병원 등에 입점하는 것을 두고 흔히들 특수상권 입점이라 구분한다. 말 그대로 왕래하는 일정 고객 수가 확보되었다는 메리트를 가지고 특수상권으로 구분한 것인데, 이 상권에서는 위탁운영계약이라는 후속계약이 붙게 된다. 지금까지 2개의 카페 운영을 거쳤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모두 위탁운영계약이었다.
위에서 분류한 기관들은 조달청에 입찰공고를 올려야 하는데, 규모에 따른 입찰제한이 있어 본사와 거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잘 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입찰 문제보다는 법적 문제가 생겼을 경우 문제 해결을 좀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개인이 아닌 본사 법인과 계약을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카더라 정보들에는 그저 '그렇구나'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지만 말이다.
알 수 없는 이유들로 특수상권 입점은 대부분 발주기관과 프랜차이즈 본사가 계약을 하게 되는데, 프랜차이즈 본사는 이 매장들을 직영으로 운영하지 않고 위탁을 하게 된다.(모든 특수상권이 위탁을 하는 것은 아니어서 간혹 "가맹점 직접 계약"이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내 건 공고도 종종 보인다.) 본사는 인테리어 비용과 기타 창업 부대비용을 위탁계약자에게 챙긴 후 운영은 위탁계약자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빠지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가맹점 계약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가맹점 계약은 프랜차이즈 본사와 개인이 가맹계약을 하고, 개인과 건물주가 임대차 계약을 맺게 되는 반면 위탁계약은 발주기관(건물주)과 프랜차이즈 본사가 입점 계약과 임대차 계약을 하고, 프랜차이즈 본사가 개인과 위탁운영계약을 하게 된다. '갑-을'관계가 아닌 '갑(발주처 or 건물주)-을(프랜차이즈 본사)-병(개인)'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계약하는 개인 입장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가맹점 계약과는 다르게 위탁계약자는 철저하게 숨겨져야 한다는 점이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해당 계약에 대해 위탁을 준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발주자는 위탁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사장이면서도 사장이라 말하지 못하는 계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느낌이랄까....)
위탁계약을 하면서까지 특수상권에 입점하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듣보잡 상권에 비해 일정 수준의 고객이 확보되어 있다는 부분 하나 만으로도 일반 상권을 훨씬 상회하는 임대료를 감수하고도 계약하는 것이다. 또한 규모 있는 기관/법인 등이기 때문에 좀 더 준법적인 면이 있다.(물론, 악법을 준수할 수도 있다.)
본사에 소속된 수 많은 위탁계약매장들의 매출 및 수익을 전해 듣자면 매장 위치나 조건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었고, 성공한 사장님들도 꽤나 많이 있다.
건물주가 부당한 요구를 한다 해도, 위탁계약을 한 개인은 정면에 나설 수가 없다. 있어서는 안 되는 '병' 즉, 위탁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하여 '갑'과 논의 또는 다툴일이 있다 하더라도 정면에 나서야 하는 건 '을'인 프랜차이즈 본사이다. '병'을 담당하는 개인이 부닺히는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분명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고, 나서 싸워야 하는 본사의 전투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리 없이 감내해야 한다. 멱살잡이 싸움을 하고 싶을 만큼 화가 나더라도 그 멱살은 내가 아닌 본사가 나서서 잡아줘야 하는데, 어떤 본사가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을'을 담당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본사는 굳이 '갑'과 다투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고, 1차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좋게 좋게 넘어가고자 한다. 속이 타는 건 '병' 뿐이다.
너무 섣부르게 창업했다는 걸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달리 생각해보면 몰랐기에 쉽게 뛰어들 수 있었고, 오늘의 나에게 창업을 묻는다면 "글쎄..." 하는 답을 할 것 같다.
위탁운영계약을 한 많은 사장님들이 이 글을 보며 '난 아니라 다행이야.'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줄곧 '속타는 병'을 담당해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