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왜?

나도 모르겠다. 늦었다 이미.

by 콩알이

겁 없는 하루 강아지처럼 덜컥 카페를 인수해두고서는 5개월도 지나지 않아, 프랜차이즈를 흉내만 내고자 하는 어설픈 법인과의 관계가 삐걱거렸고, 때마침 친언니의 퇴사 결심을 접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카페를 하겠다고 노래를 불렀던 건 언니였다.


여기 정리하고, 언니랑 같이 다른 데서 좀 더 크게 해 볼까?


농담 반 진담 반 던졌던 얘기였는데, 언니가 덥석 물어버렸다.
시간 날 때마다 카페 물건을 뒤져보고, 언니와 형부와 나와 신랑이.... 4명이 어슬렁 거리며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고 매매 올라온 카페로 가서 차 한잔 하며 암행을 하기도 하고, 주말이면 핫하다는 동네로 무작정 걸어보기도 했다. 동네 상권, 오피스 상권, 특수 상권..... 집히는 데로 다녔다.


'대출받아 빌라를 매매해서 1층에 카페를 하고 2~3층에 두 집이 거주할까?' 하는 그림도 그렸다가,

'대학가에 가서 박리다매를 할까?' 하는 그림도 그려보고,

'오피스 상권에서 주 5일 근무를 하자.' 하는 그림도 그렸다가....

무계획이 계획인 사람들처럼 두서없이 분주하게 알아만 보고 다녔다.


최종 낙점은 종합병원 1층 로비.

병원을 오래 다녀서 병원 내 카페가 얼마나 잘되는지 봐왔던 터라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 수많은 의료진, 환자, 보호자, 영업사원까지.... 많은 고객들을 상상하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나는 곧, 내가 다닌 병원은 상급 대학병원이었으며, 종합병원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왜 몰랐던 것인가 하는 반성을 땅을 치며 하게 된다. 아, 눈물 난다....)


병원에 카페를 오픈한다고 친구들에게 얘기했을 때 한결같이 의외의 반응이었다.


병원이라면 꼴도 보기 싫을 것 같은 애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가
거기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굳이 왜 병원에서?


눈에 뭐라도 씌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까?

친구들의 반응에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그리 지긋지긋한 곳을 내가 제 발로 들어온 거구나? ' 하는 현실 감각이 뒤늦게서야 생겼다.


심지어 그 병원을 좀 알고 있는 친구는 오픈 축하와 함께, 하기 전에 나한테라도 좀 물어보지 그랬니...라는 무서운 여운을 남겼다. 물론, 그 여운은 현실로 자각되고 있을 때였기에 더욱 무거웠다.


이런저런 현실이 파악되었을 땐, 이미 계약서 사인이 마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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