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열등감을 치유해 준 아이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은 언제나 거대한 수치심의 시간이었다.
남들보다 큰 덩치 때문에 운동장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달리기 시합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우리 팀의 패배 원인이었다. 체육대회에서는 운동신경과 상관없이 씨름 선수와 줄다리기 맨 앞자리로 내몰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덩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같았다. 덩치만 크고 운동신경은 없었던 나는 대체로 패배했다.
애써 ‘체육은 입시에 중요하지 않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 남은 열등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체육 지필평가에서 100점을 받아도, 형편없는 수행평가 점수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뜀틀 수행평가가 있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뛰어넘을 자신이 없었다. 뜀틀 앞에서 주저하는 내 모습이 한심했고, 친구들 앞에서 넘어질까 봐 두려웠다. 발걸음이 엉키고 손이 미끄러지며 엉망으로 실패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체육관 안 모든 시선이 내 뒷모습으로 꽂히는 것 같았다. 수치심이었다.
그때 손○○ 선생님께서 내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조금만 더 하면, B까지도 받을 수 있겠는데? 조금만 더 힘내보자.”
순간 귀를 의심했다.
혼날 줄 알았다. 못한다고 꾸중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 안의 작은 가능성을 보아주셨다. 그 사소한 격려 한마디는 내 체육 인생에 처음으로 듣게 된 다정한 격려였다. 수치심뿐이던 내 체육 시간에 스며든 한 줄기 햇살 같은 그 말은, 세월이 흘러 지금도 내 마음 한쪽을 환히 비춰준다.
시간이 흘러 교사가 된 첫 해, 나는 담임으로 체육대회를 맞았다. 아이들은 들뜬 표정으로 경기를 준비했지만, 나는 묘하게 긴장했다. 단순히 승부욕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체육대회가 ‘수치’가 아니라 ‘환희’의 기억으로 남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지더라도 괜찮아. 중요한 건 옆 친구를 응원해 주는 거야.”
줄다리기에서 줄이 팽팽히 당겨질 때, 아이들의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구호가 운동장을 울렸다.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하던 순간, 내 심장은 미친 듯 뛰었다. 마침내 우리 반이 우승으로 호명되자, 아이들의 함성이 폭발했다. 목이 쉬어라 아이들과 함께 소리쳤다. 그 순간, 뼛속 깊이 자리했던 수치심이 아이들의 함성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기쁨이었다. 성적표 숫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함께 땀 흘리고 서로를 응원하며 만들어낸 승리의 환희였다. 아이들이 서로 등을 두드리며 웃고 울 때,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오래 묵은 응어리가 풀려나가는 걸 느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일어났다. 내가 담임을 맡은 반은 3년 연속 체육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운동장 한쪽에서 늘 고개 숙이고 있던 과거의 나는,
이제는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 뒤에서 누구보다 크게 응원하는 교사가 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체육 부장님의 권유로 스포츠 스태킹 종목을 지도해 대회에 나갔다. 아이들이 상을 탄 덕에, 나 역시 교직 첫 표창장까지 받게 됐다. 학창 시절 단 한 번도 체육으로 빛나본 적 없던 내가, 아이들과 함께 체육으로 상을 받다니,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여전히 달리기가 느리고 운동신경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제 체육은 내게 수치심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고, 서로를 응원하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쁨을 가르쳐준 고마운 과목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내 수치심을 보듬어준 선생님의 다정한 말 한마디.
그 말은 오늘 교실에서 아이들을 향한 나의 다정한 말이 되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나의 오랜 상처가, 이제는 아이들을 위한 단단한 갑옷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