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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마루금이란

복성이재 ~ 무룡고개, 멈춤을 생각하며

by 플랫폼

마루금을 향한 여정은 오늘도 계속된다. 나에겐 셀렘의 길이자 행복이 아지랑이 일듯 스멀스멀 피어나는 길. 저 멀리 서쪽 밤하늘을 수놓듯 떠있던 초승달이 날 보며 손짓해주는 눈치다. 웬지 기분이 으쓱해지는 묘한 느낌. 그 감정의 진원지가 웬지 궁금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기려는 걸까. 그깟 초승달이 뭐라고 내 심장을 이렇듯 요동치게 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한통의 전화를 받았던 건 그로부터 불과 10분도 채 안된 시간이었다. 밤 11시, 이 야심한 시간에 전화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불길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 하고. 그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좀전 초승달을 보며 마음 설레였던 일일랑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한쪽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아빠! 하는 외마디 소리에 내 마음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고 그도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와 나 사이의 탐색전은 몇 십초간 더 지속되었다. 이윽고 흐느끼고 있는 그의 가냘픈 숨소리가 가까스로 들려왔다. 고속도로상 쉴만한 곳을 찾아 5분여를 더 달려주다 졸음쉼터에 겨우 애마를 멈춰세웠다. 심호흡 한번 단단히 해주고 그에게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 여전히 감정을 삭이는 중이었는지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윽고 말문이 트이고. 말싸움 끝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는 그런 사연이었다.


사소한 말싸움이 서로의 격한 감정들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 거라면서. 난, 순간 한없이 작아졌고 어떤 솔루션조차도 제공해 줄 수도 없었다. 그냥 별일아닌 척. 살다보면 가끔 울고 싶을 때도 있는 거야, 라며 몇 마디 던져주고 싶었건만, 말하면 더 무너질까봐 마음속으로 꾹 눌러 두었다. 문득, 대학 졸업반 때의 일화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남들은 취업준비 한답시고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었을 때 오직 나만 유별나게 심한 열병을 앓았던 적이 있었다. 그땐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릴것만 같았는데 그 지옥같던 몇 달이란 시간들도 거짓말처럼 훌쩍 지나 버렸다. 결국 세월이 약이되어 주었다는 것. 덕분에 난 격하게 들끊는 감정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고 냉온탕을 오가던 마음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평온을 되찾고 솜사탕처럼 뽀송뽀송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는그런 웃픈 이야기.


나의 20대 사랑병은 그렇게 별탈없이 아물어갔고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문제는 그였다. 그에게 어떤 말로 위로해 줘야 할지. 아니면 그냥 자신이 알아서 극복하게 꾹 눌러두어야 할지. 결국, 몇 분의 숙고끝에 잠자고 있던 내 경험들을 조심스레 꺼내보기로 했다. 힘들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그냥 숨만 쉬고있는 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라고. 그렇게 10분여의 통화와 줄다리기는 모두 끝이났다.


그 이후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청년전세자금 대출을 받은지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아직은 20대 후반. 선택은 오롯이 그의 몫. 고민하는 그와 조용히 들어 줄 수 밖에 없는 나 사이에 모호했던 삶의 접점에서 조금은 두렵고 때로는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느린 걸음일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주는 것만으로 그져 감사했다.


힘들면 시골집으로 내려와도 된다, 라고 말해주며 전화기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언젠간 그도 감정을 다룰 줄 아는 나이가 되겠지. 마음의 근육들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어떤일이든 쉽게 무너지지 않는 그런 나이. 감정에 오래 의지하지도 않은 채 견디어 내는것도 의미있는 삶이 될거라고. 연애사춘기를 겪으며 인생 번아웃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아들과 아내에게 위로를 전해주는 것을 끝으로 어쩌다 오는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이젠 다시 나의 루틴으로 되돌아갈 차례. 다람쥐 쳇바뀌 돌듯 지루한 일상 속에서 과감히 탈출을 감행한 나를 돌봐야할 시간이다. 다시 설렘이란걸 부여안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길. 버스한켠에 몸을 가까스로 의지한 채 안전밸트를 단단히 조여맸다. 설레임과 기대감이 다시금 부풀어 오른다. 부푼 마음과 노랫가락에 취해 장장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복성이재.


중치까지 12.1 킬로미터라는 표시기가 헤드렌턴 불빛에 수없이 반짝거린다. 고을과 고을을 잇는 이곳 고개를 뒤덮은 습한 공기가 더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가슴은 점점 두근거렸다. 여지껏 한번도 가보지 못한 이곳 또한 미지의 길이다. 꼬부랑재, 매봉, 봉화산, 월경산, 중재, 백운산, 영취산, 그리고 무룡고개. 까마득해 보이는 길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겐 한치의 불평도, 불만도 있을 수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으며, 모처럼 내가 주인공이 되어 걸어 보려하기 때문.

사방은 쥐죽은듯 고요했고 간간히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만 귓가를 맴돌았다. 여성 산행대장의 낭랑한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자 대간러들 일제히 쏱아져 나왔다. 간단히 몸도 풀어주고 마음도 가다듬으며 출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리는 중. 이번이 벌써 좋은사람들과 함께하는 세번째 산행. 등산화 끈도 단단히 조여주고 스틱도 조심조심 폈다.


오늘은 배낭에 더해 설레임까지 함께 어깨에 맸다. 드디어 오름짓. 출발과 동시에 숨이 차온다. 이웃 대간러들의 거친 숨소리가 벌써부터 새벽 허공을 가르는 중. 오르면서도, 앞전 두번의 산행의 여운이 자꾸 생각났다. 이따금씩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사람사는 마을들을 헤집고 돌아다녔던 기억들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마루금의 등뼈를 조각조각 억지로 끼워 맞췄던 일들.


그렇게 남원땅을 지나는 두번의 산행은 내 머릴 온통 뒤죽박죽 만들고 있었다. 대간이 사람사는 세상이 그리워 속세로 내려온 거겠지, 라고 애써 태연한척 위로도 해 보았지만 오름짓 내내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워지고 있었다. 새벽공기가 한동안 차갑게 느껴지나 싶더니 몇 분 오름짓을 계속했더니만, 드디어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이 맺혀온다. 바람막이 하나 벗어 배낭에 억지로 쑤셔넣고 물 몇 잔을 연거푸 마셔준다.


심란한 마음들 내려놓으려 했건만 철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계속 머리속을 흔들어댄다. 도대체, 나에게 마루금이란 무슨 의미이길래. 난, 왜 하늘길을 고집하는 건지 갈수록 아이러니했다. 남아도는 여가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매일 날 흔들어대는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쳐 버리고 싶었던 걸까. 자아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이 의문의 정체.

하늘길이 진정 나에게 전하려는 의미가 무엇이길래. 백두대간도, 하늘길도, 마루금도 그져 그런 산길중의 하나일 뿐일테고, 여러 등로들를 연결하는 산길중의 하나일 뿐일텐데. 내가 마루금에, 하늘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닌지. 생각할수록 혼란만 더 가중된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길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이 길에서 일곱빛깔무지개 찾아 헤매고 있었던 건 아닌지. 끝도없이 정체성과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서성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일이었다.


사실, 요며칠 마음이 몹씨 힘들고 괴롭긴했다. 일하다가도 가끔씩 넋을 잃고 한숨을 내쉬는게 새 루틴이 되어버린지 오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들이 절망이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때 조차도 난 별 대수럽지 않게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일거라고 에둘러 핑계를 댔고 그들도 일단 숨고르기를 하는 중일거라고. 숨을 곳을 찾아든 것 뿐일거라고.


그들이 사회를 멀리하는데도 나름 이유가 다 있었다. 코로나는 엎친데 겹친격. 울고 싶었는데 뺨을 떄려준 것이었다. 결국 팬데믹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마져 앗아가 버렸다. 학업마져 그만둔 채 그들만의 긴 터널속으로 들어가 버렸던 것. 삶에 대한 어떤 의지나 조기마한 꿈조차 보이지 않았다. 터널속에 틀어박혀 오직 스마트폰에 취해 은둔형외톨이의 삶에 기대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아침 눈을 뜨고 잠들때까지 그들곁을 지켜내는 건 순전히 우리 부부의 몫이 되었다. 잠조차 제대로 잔다는건 사치에 불과했고, 무언가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었건만 그것마져 마음대로 되지 않음에 마음 미어졌다. 그져 내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되었고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우리 부부는 늘 불안함을 달고 살았다. 외부활동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고 내 안에 차오르는 이야기를 배설하고 싶었지만 그것마져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는 현실에 발만 동동거렸다.


그러던 때, 나에게 나타난 구세주는 백두대간 마루금이었다. 유리멘탈인 나를 붙들어주고 스승 역할까지 자처해 준 고마운 존재. 이런저런 잡념에 쌓여 오르는 중에도 정상은 어김없이 조금씩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꼬부랑재를 거쳐 몇 발짝 더 올랐더니 매봉이었다. 놀랍게도 도착과 동시에 내 마음은 또, 가라앉는다. 마루금에 대한 여러 실망감들이 또다시 나를 엄습한다.


점점 시시하고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환상일까. 아니면, 그냥 허울에 불과한 걸까. 지리산과 헤어짐이후 세번째 산행. 내가 그토록 그리던 봉화산은 분명 아니었다. 난, 봉화산에 오르면 무한행복이 샘솟는 줄 알았다. 봉우리가 온통 철쭉으로 피범벅이 될 줄로 믿었다.


나에게,
마루금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내 머릿속은 온통 혼돈이다.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잡념들에 휩싸여 걷고 있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걷는 건지 아니면 그져 발이가니 억지로 따라 걸어지는 것인지 불문명했다. 마치 쇳덩어리 하나를 짊어지고 걷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들이 여자친구와 사소한 시비때문에 힘들어 했는데. 부모로서 아무런 솔루션조차도 제공해 줄 수 없는 현실이 그져 안타까웠다. 이십대의 실연은 정말 견디기 힘든 아픔이자 상심일 터. 나도 그 의미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힘들게 타지에서 분투하고 있을 그. 어렵게 구한 직장이었지만 그만두고 결국 그는 내려왔다. 단지, 이번의 경험이 내적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주길 간절히 빌어본다. 언젠간 그도 감정을 다룰 줄 알고 세상의 파고를 넘을 줄 아는 나이가 되겠지, 란 막연한 기대감만이 교차했다. 과연 그는 수많은 흔들림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격한 감정에 오래 의지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순 있는 것일까.


매봉을 뒤로 한 채, 또 봉화산으로 향했다. 그져 마음 무덤덤해졌다. 점점 무언가 보이지 않는 강박관념에도 사로잡힌다. 어디선가 가냐린 바람이 불어왔고 간간히 나뭇가지에 매달린 형형색색의 리본들도 바람에 흔들거렸다. 기기묘묘해진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켜려 해 보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따로다. 마치 유체이탈된 사람처럼. 계속 어두컴컴한 철쭉 터널을 따라서 걷는다. 하지만, 내가 주도해서 걷는게 아닌 그냥 피상적으로 그져 걸어질 뿐이었다.


참나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을 가늘게 맴돌기 시작할 무렵, 길바닥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긴꼬리산누에나방 한마리와 조우한다. 이제 생명을 다하기라도 한듯 한동안 꼼짝조차 하지 않는다. 초연한 삶이다. 마치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걸 나에게 일깨워 주려는 듯. 내가 그리 셔터를 눌러대도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 곤충들의 존재란 곧 인간들의 존재 의미와 직결되는 거라서. 그냥 한낱 미물이라 치부하고 떠나기엔 웬지 두발과 전두엽이 거부하는 눈치다.


산은 나에게 영원한
안식처를 주는 곳이었다



세시간 반여동안 온통 마음속에 의문부호를 달고 오르고 또 내렸다. 그러는 사이 먼 동녘에서부터 뭔가 미묘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여명이다. 세상이 꿈틀대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든 생명의 원천인 빛이 탄생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다. 봉화산이 지척인데. 걸음걸이를 조금 서둘러 본다. 모처럼 다가온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태양의 열기가 점점 더 붉게 고조되고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순간. 어둠에 잠겨있던 등로를 지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야호를 외쳐본다.


새벽 여명 앞에 당당히 섰다. 동이 터올때의 이 장엄함과 육중함. 순간 온몸이 굳어버린 듯 전율마져 느껴진다. 활짝핀 중나리 꽃망울 하나에 전해지는 붉그스레한 일출의 모습. 순간, 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던 모든 잡념들로부터 해탈이 된 느낌이다. 새벽 여명이 나에게 말해준다. 세속의 모든 걱정일랑 모두 내려놓고 그냥 가던길 말없이 가라며. 오직 하늘길이 하는 이야기만을 듣고 걸으라 한다.



내가 만약,
신선이었다면
이곳 봉화산에서 나만의 낙원을 건설하였을 테고 ,

내가 만약,
뭉크와 같은 화가였다면 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태양을 보며
절규를 화폭에 담았을 것이다.



새벽의 두려움을 걷어낸 자리. 어느새 마루금의 산야는 황홀한 첫 빛을 끌어안고 있었고 밤새 지친 대간러들의 하소연 위로 찬란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갑자기 행복이란게 무한 샘솟고 플랫폼의 눈가에도 스멀스멀 미소란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야생화들도 이곳저곳 화들짝 깨어나 잔뜩 무거워진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었다.


기린초, 중나리, 뱀무의 이쁜 꽃망울들에 취해 또다시 걷는다. 마루금길은 나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행복을 잉태하는 장소였다. 내가 순간 번뇌에 휩싸여 잠시 망각했을 뿐. 파도 파도 끝없이 흘러나오는 오아시스같은 존재였다.

낮과 밤이 자리바꿈하는 황홀한 모습에 한동안 취해 걷고 또 걸었다. 인간의 더듬이로는 도저히 쉽게 포착할수 없는 해돋이의 장엄함을 보고 나서 또다시 떠남짓이다. 갑자기 가는길에 초록잎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신록의 푸르름에 온산이 진한 향기로 가득이다. 억새가 하늘하늘 춤을 추고 이를 헤치며 지나가는 대간러들의 뒷모습이 아름답고 황홀하다. 어느새 번뇌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일심만이 나를 이끈다.


일출 하나가 내 마음을 그토록 바꾸어 놓을 수 있다니. 한순간, 한순간이 감동의 물결이다. 그래서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라고 말했던 걸까. 산에는 행복이 넘치고 하늘엔 희망이 꾸물거리고 대간러들의 마음엔 꿈이 넘실댄다. 그렇게 감사할 일 수두룩한 삶에 무슨 불평불만이 있을 수 있을까. 모든 잡념 내려놓는다.


그져 행복하다. 어느새 플랫폼의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떠나는 여행은 룰루랄라길이 되어가고 있었다. 잠시의 멈춤 이후, 갑자기 무력감들이 모두 행복감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앞만보고 남의 속도대로 달렸을 땐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잠시 멈추니까 보여지기 시작했다. 나 다움이란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내 마음이 원하고 지시하는 것처럼.



하마터면 열씸히 달려버릴 뻔 했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냥 오름짓, 내림짓이 한동안 거듭된다. 광대치도 지나고 월경산도 지났다. 무릎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중재까지 또 내림길. 조금만 내려가 달라 원했건만, 역시 그 기도는 이루어질 수 없는 나의 일방적인 바램일 뿐이었다. 몸을 최대로 낮춘 중치고개. 무성한 참나무 잎사귀 사이로 한줄기 빛줄기들이 스며 들어왔다. 숲이 웅성거렸고 온통 투명해졌다. 주변 관목들도 밝아지고 영롱해지고. 물한모금에 한숨소리가 가냘프게 세어 나왔다.


백운산 오름길은 플랫폼의 인내력을 테스트 하듯 길고도 거칠었다. 정상에 다다를 만하면 굽이쳐 내렸고 다다를 만하면 또다시 솟구쳐 올랐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도 잔잔한 그런 화창한 날이었지만 산행길은 플랫폼의 인생길의 복사판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속이 텅빈 강정처럼 허허롭다 생각되어질 즈음. 그렇게 수십번의 오르내림을 되풀이하고 내속을 몇 번 뒤집어 놓고 나서야 드디어 정상을 허락하였다. 황망하여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감격에 겨워 더이상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감동이 물밀듯 솟구쳐 올랐다.

하늘의 뭉게구름까지 날 반겨주었다. 일년 몇 달간 온통 운무에 뒤덮혀 있어서 백운산이라 명명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고 또 담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뒤의 적막감 뒤. 난, 흰참꽃나무부시시한눈망울을 보았다. 백운산 오름길 직전에 화사하게 얼굴보여준 흰참꽃나무. 민낯이었지만 완전체였다. 앞만보고 내달렸을 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내 앞에서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백운산 깎아지른 오름길에서 만난
흰참꽃나무는 날 한동안
마법의 세계에 빠지게 했다


오늘 산행의 백미인 백운산 깎아지른 오름길. 정상을 불과 100여미터 남겨두고 오르다 쉬다를 수십번 반복한 끝에 만난 흰참꽃나무 회목나무. 난, 무언가 마법에 깊이 빠져버린듯 한동안 말도 걸음도 잇지 못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만난것처럼. 이게 바로 산뽕, 대간뽕의 맛이 아닐지 싶어졌다.


산녹색부전나비와의 숨박꼭질에
빠져보다


몇 차례 술래잡기 끝에 나에게 자신을 허락한 산녹색부전나비. 정상에 너무 취하면 안된다는 걸 , 이미 알고 있었기에 다시금 길을 떠난다. 한낮의 열기가 더욱 빛을 발한다. 그것마져도 우린 운명처럼 온몸으로 받아내고자 했다. 1,000미터 고지 능선의 솔바람과 참바람 향기는 내 마음까지 싣고 한고개, 또 한고개 넘어간다. 점점 영혼이 무아지경으로 치닫는다. 부귀도, 영화도, 명예도, 사랑도 일장춘몽이란 싯귀를 읇조리며 걷는데나도 모르게 걸음걸이가 급속도로 느려진다.

천년 만년 살것도 아니면서 부귀영화를 그토록 모으고 모아서 뭘 할것인지. 그져 산과 들을 벗삼아 뭉게구름처럼 두둥실 떠다니면 그만인거지. 마치 꿈속을 걷는것처럼 비틀거리기를 여러번. 드디어 우여곡절끝에 그토록 염원하던 영취산에 다달았다. 기다리던 저 구름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플랫폼님! 수고하셨다고. 해낼 줄 알았다고. 성취감과 희열이 밤하늘에 별처럼 쏱아져 내린다.


오늘 내 정신이 벌인 무모함때문에 생고생한 두 다리와 심장에게 감사드렸다. 수많은 땀방울들과 고통속에 맞이한 이 기쁨들. 백운산 오름길속 숱한 땀방울들을 생각해본다. 심장이 터질듯한 고통후의 이 짜릿함. 그 순간순간의 흥분들이 어느새 전율로 뒤바뀌고 난, 무룡고개 어느 한적한 주막에서 국수에다가 막걸리 한사발에 위안을 삼는다.


오늘도 수없이 버벅거렸고 많은 잡념들과 싸우고 육신은 힘이 들었지만 마음만은 온통 행복감으로 점철된 하루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결국 해낸것이다. 내 두다리가. 내 심장이. 내 두눈이 끝이 없을 것 같은 마루금의 한구간을 완주해 버린 것.


멈춤을 생각하며



내가 어디까지 가게 될지. 내가 갑자기 어느 하늘길 모롱이에서 멈추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대간을 다스리는 신만이 알 것이라 짐작만 할 뿐. 하지만, 그 길을 걷다 갑자기 어느곳에서 멈추게 된 날. 아니, 걷는 걸 포기하는 그 날. 그 찰나의 순간까지 매 구간 최선을 다하려 한다.

매순간이 고비이고 위기라는 걸 알기에 좀더 지혜롭고 좀더 슬기롭게 대처해 보고자 한다. 또다시 다가온 기다림. 난, 안다. 그 기다림속에 내 삶이 천천히 영글어 가고 있다는 것을.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가장 설레이고 행복한 순간이다라는 것을. 다음 산행이 더 기대되는 건 비록 나만의 생각일까.


이어서, 09 할미봉엔 운무 가득하고 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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