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룡고개 ~ 월성재 1부, 마루금이 나에게 전하는 말
지난 5월초, 우여곡절끝에 지리산 천왕봉에서 첫 발을 내딛었던 나의 마루금 여정이 본격적으로 여름의 문턱을 향해 진격중이다.
산 욕심이 유난히 많았던 난, 정상찍는것에 미쳐 성난 망아지마냥 앞만보며 내달렸던 동안, 무박산행이란 것이 뭔지도 모른채 살아왔다. 그러던 중 어느날 반전이 일어났다. 좋은사람들과 함께했던 앞전 세번의 무박산행은 어느새 내 삶의 방향까지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었으니. 처음엔 어색하고 조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 내 삶의 루틴으로 자리하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내 몸도, 마음도 적응해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처음엔,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염려도 되고 의구심도 들었지만. 결국 닥치니 점점 견뎌내고 있는것이리라. 사람 마음이란게 참으로 간사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으며 난 또 산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2주간의 기다림후의 간절함과 달콤함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길. 생전에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신 어록 중 하나가 떠오른다. 자연과 멀어지면 병원과 가까워진다, 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곱씹어 보며.
어제는, 나에겐 조금 특별한 날이 되고 말았다. 평소 애지중지하던 난 화분 하나를 하늘 나라로 보내 버린 것. 몇 해전,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에게서 특별선물로 받은 것인데, 아쉬움이 진하게 물밑으로 흐른다. 밤낮으로 나름 잘 보살핀다고 했었는데 정성이 부족했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 지인껜 참으로 미안할 따름.
주인의 손과 발길이 뜸해진 틈을 타 어느날부터 갑자기 시들시들 해지더니만 어제 생명을 다해버린 것. 평소 생명의 경이로움에 취해 자연의 선물들에 갑사하며 살아가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몸에서 멀어지니 마음까지 멀어진다는 말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진심으로 와닿는 시간이다. 어쩌면, 내 마음도 화분속에 죽어가던 그 난처럼 비틀어지고 메말라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일.
어찌됐든, 애정하던 화분을 보내주고 또다시 마루금을 향해 떠나가는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대간러들을 태운 리무진버스가 오늘도 간간이 뿌려대는 빗길을 미끄러지듯 달린다. 좀체로 잠이 올 것 같지도, 그렇다고 쓸쓸할 것 같지도 않는 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말고 결국 이어폰을 끼고 노랫가락 속으로 깊이 깊이 빠져든다. 어떤이는 이어폰끼고 세상과 완전 등을 지는 시늉을 하고, 또 어떤이는 사르르 눈을 감으며 손수건까지 뒤집어 쓴채 수면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는 리무진버스 안.
이렇듯 무심일때 노래라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무룡고개에 도착한 건 새벽 3시하고도 10여분이 더 지난 시간. 2주전의 영광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그 고개는 쓸쓸함만이 남아 우릴 반겨주고 있었다. 또다른 시작점에선 난, 다짐했다. 꼭 완주하고 말겠노라고. 떠나고 되돌아오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또다시 시작하고 어느날 또 끝이나고. 사방은 쥐죽은듯 고요했고 하늘에선 안개비가 추적추적 내 뺨에 야멸차게 내리친다.
염려했던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만하면 하늘이 도운것이리라. 나무잎새 바람에 심하게 흔들거렸고 길섶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풀냄새들로 가득했다. 가냐린 이파리 사이 사이로 아슬아슬 매달린 물방울들이 대간러들의 헤드렌턴 불빛에 반사되어 바닷가 모래알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파른 숨소리. 먼저간 대간러들의 거친 숨소리들이었다. 새벽 공기는 제법 차가웠고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발걸음을 한걸음 옮길때마다 바닥 흙들이 심하게 부서졌다. 미끄러지지 않기위해서 난, 스틱에 의지한 채 점점 고도를 높여갔다.
마루금이 나에게 전하는 말
출발한지 한달음만에 다달은 영취산. 정상석은 아무말없이 그 자릴 지켜내고 있었고, 이내 2주전의 헤어짐의 순간들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오늘따라 정상석이 유난히 헤드렌턴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간단한 인증샷과 동시에 연신 화이팅을 외쳐주며, 세월의 무게에 지쳐 어느새 무너짐을 택한 영취산성을 뒤로한 채 덕운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밤새 내렸던 비때문이었을까. 숲도 바닥도 심하게 젖어 있었다. 안개 가득한 등로에 가득한 물기가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고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미역줄나무로 우거진 마루금길 길섶에 굴참나무, 신갈나무, 층층나무 가득했다. 이들은 마치 하늘을 향해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쭉쭉 뻗어 있었고, 결국 나무들이 살아내기위한 햇볕쟁탈전일거라는 막연한 생각에도 빠져본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오직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본능적 모습이려니 싶어졌다. 가던길 논개생가가 4.6킬로가 남았다는 표시기가 불빛에 반짝거린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함락되고 남편인 최경회 장군이 전사한 이후, 촉석루에서 왜장을 껴안고 장렬히 남강으로 뛰어든 충정의 상징이 된, 바로 논개의 생가터.
역사의 아이러니를 되새김질해가며 좌측 발은 논개의 생가인 장수땅을 밟으며, 우측 발은 죽어서 육신과 영혼으로 묻힌 함양땅을 밟으며 걷는다. 숙연함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문장이 내 가슴속을 후벼파는 시간. 그러는 중에도 새벽 숲은 분주했다. 지난밤의 온갖 사연들을 풀어 놓으며 새 아침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새벽 바람에 나뭇잎들 수런거리는 소리 연이어 들려오고 길섶 풀벨레들의 울음소리. 푸드덕 거리는 이름모를 새들의 날개짓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흐트려 깨운다. 숲은 생명의 보고이자 원천. 대간 마루금이 만들어 놓은 원시숲이 아니었다면 우리 인간들은 과연 어땠을까.
가는길 비비추 한송이 함초롬이 외롭게 피어 있었다. 비에 젖어 잔뜩 무거워진 몸의 무게를 못이긴 채 고개를 땅바닥을 향해 처박고 있는 모습 처량하다. 바람에 흔들거리며 마치 춤이라도 추고 있는 듯. 목디스크라도 걸리지 않을지 심히 염려된다. 자연의 소리 들으며 걷는 중, 내 마음에도 점점 미세하게 동요가 일고 있었다. 이 어둠의 슬픔처럼. 역사의 비극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져 그런 날들이 모여
특별한 오늘이 되었다
어느새, 대간도 사위가 밝아져 왔다. 지난밤처럼 어스름이 물러간 자리엔 붉은 여명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려한 일출도 아닌, 온 들판과 산야가 은은한 운무로 짙게 깔리고 있었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 냥, 난 태평양 어느섬에 홀로 갇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속에도 빠져본다. 그리고, 새벽 운무는 내가 가는 방향을 향해 유유히 흐르는 중이었다. 다가설 만하면 사라지고 또 눈에 사라졌다 하면 어느새 다시금 다가왔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상들이 모여 나에게 특별함으로 다가와 준다, 라는 사실에 그져 감사하며 운무에 넋놓고 취해 걷다보니, 민령이 지척이다. 길섶에 자연산 오미자 몇 송이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젠 플랫폼도 자연의 삶을 조금은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오름길, 발밑의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걸음을 멈출수 있게 되었고 길섶에 빨갛게 익어가는 오미자 열매 하나에도 감사함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오미자는 탐스러웠다. 한번 먹어볼까. 떱더름하고 미완의 맛이었다.
아직 기다림이 더 필요해 보였다. 한동안 더 깃대봉을 향한 오름짓이 계속되었다. 오르는 길 남녘의 들녘은 사방이 운무로 뒤덮혀가고 점점 산위를 향해 스멀스멀 피어 오르고 있는 중. 운무도 마루금길이 그리웠던 것인지. 어쩌면 스스로 신선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도 젖어본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
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지난 나의 삶은, 늘 맡은바 역할에 최선을 다했건만 남은 건 늘 상처와 후회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효율이나 성과보다 씁쓸함만이 가득했고 가슴 한켠이 늘 비어있는듯 허전했다. 그랬던 어느날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던건 산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마루금 때문이었다. 정확히 첫번째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온 그 이후부터였다. 오늘도 마루금은 아무조건없이 자신의 모든걸 내어주고 있었고 그 초연함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편했다. 마치 마음의 짐처럼 여기던 고름이 어느새 뚝 떨어져 나간 그런 느낌이랄까. 잠자던 나를 일러 깨운건 마루금이었다.
이곳 깃대봉 샘터에 앉아 조용히 일렁이는 바람과 공기의 결을 느껴본다. 몇 그루의 나무가 드리우는 그림자아래 머무는 여유마져 어느새 생겨난 듯. 그 고요의 순간에도 내안의 내밀한 이야기와도 마주한다. 마루금을 걷는것은 멈춤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라는 것도. 물맛이 감미롭고 한없이 따뜻했다. 자연은 인간들을 위해 이렇게 모든걸 내어주고 있는데 인간들의 행태는 가히 가관 수준이었다. 캐피탈리즘에 빠져, 길은 직선으로 뚫리고 산마다 이리저리 심하게 파헤쳐진 마루금길.
약수터의 의미와 상처투성이인 마루금길을 곱씹으며 남은 물통에도 물을 한가득 채워주고 다시금 길을 나선다. 이곳에서 물을 채웠던건 아마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마도 마루금이 날 살린것이리라. 아니었으면 생각만해도 아찔할뻔 했다. 장수고을과 함양고을이 만나 물물교환을 했던 육십령을 지나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름짓이다. 이곳에서부터 갑자기 서서히 사뿐하던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컨디션이 서서히 하향세로 내려선 듯.
가다서다를 무한 반복한다. 운무와 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할미봉 오르는 길. 좀전에 채웠던 물병들이 점점 동이 나고 있는 상황. 그때까지도 난, 상황 판단이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도착한 할미봉 근처. 온통 바위들로 뒤덮힌 할미봉을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허파에 바람이라도 들었던 것인지 배낭을 풀고 삼형제봉을 향해 과감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 홀로 말이다. 좀전에 컨디션 안좋았던 일은 까마득한 남의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 물병이 비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것이 오늘 비극의 서막이었다. 내 몸이 전하는 위험신호를 스스로 망각했고 또 거부하고 있었던 것. 난 한동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듣기를 거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운무가 뭐라고,
삼형제봉이 뭐길래
우여곡절끝에 대문바위 하나를 지났다. 운무가 앞을 가렸고 난, 그때까지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카메라가 베낭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도. 삼형제바위는 날 쉽게 받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너무나도 숨이차고 심장 박동소리도 빨라 나무를 보고 숲을 느끼고, 새들의 울음소리조차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겨우, 발디딜 곳을 찾기위해 몸과 발을 놀려줄 뿐. 때로는 나무뿌리에 의지한 채, 때로는 뾰족해진 바위틈을 부여잡고 올랐다. 순간, 유체이탈이란 단어는 이런 상황에 사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말일듯 싶었다.
마음은 오르려하고 육신은 버벅대기를 몇 번째. 이 순간에도 무언가 하나라도 붙잡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건지. 고단한 인생길에서도, 이 끝없이 이어지는 마루금길에서도 이렇게 붙잡고 기댈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었다. 코를 바위에 쳐박을 듯 직벽바위를 네발로 기다시피 겨우 올랐다. 신선계였다. 인간계는 저 먼발치 발아래 운무에 묻혀 있었다. 천하일경이 따로 없었다. 갑자기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떠올랐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보았다는 그 이상향 세계.
마치, 난 신선이라도 된냥 어깨가 우쭐해졌다. 신선은 영원히 산다고 그누가 그랬었지. 늙지도 않을거고. 하기사 불노초를 그렇게 찾아 다녔던 진시황도 결국 죽었는데. 바람도 적당히 불어주었고 햇빛도 알맞게 비추었다. 바람에서도, 햇빛에서도 달콤한 향기가 날 정도. 단지 운무만 조금 걷힌다면 딱인데. 그런데, 내가 미쳤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버스가 저만치 떠나버린 후였다. 오직, 오르는데 눈과 마음이 팔려 그만 핸드폰을 놔두고 와버렸던 것.
오호, 통재라. 하늘이시여! 대간을 관장하시는 산신령이시여! 제발 도와주세요. 그렇게, 나의 무모한 도전은 조그만 흔적조차도 남기지 못한 채, 벼랑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머릿속이 이상하리만치 뒤죽박죽이 되어있었고 몸은 움직임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둔해졌다. 카다란 망치로 한대 크게 얻어맞은 두더지처럼 의식마져 희미해졌다. 그져 허공 어딘가에 붕 떠있는 그런 느낌들 뿐. 수분들이 내 몸밖으로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희미한 감각만이 어렴풋이 무의식적으로 맴돌뿐이었다.
10여분 내 발아래 펼쳐진 장관을 겨우 눈으로만 보고 마음으로만 담고 내려와야 했다. 올라왔던 반대로 패잔병이 되어. 중력방향을 향해 내려올땐 에너지가 배가 더 필요했다. 다시, 밧줄과 나무뿌리와 돌뿌리에 의지한채 천천히 내려왔다. 조금 자외선에 바래긴 했지만 썩은 동앗줄이 아님에 그져 감사하며.
배낭속에서 잠자던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은 흐느끼고 나는 울고. 다시 올라가, 아님 말어. 결국 나중에 다시 오마하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다시 할미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 운무가 날 부르고 있었고 인증샷도몇 장은 남겨야 했기에. 그것이 내가 여기에 온 이유이기도 했으니. 할미봉에 오르면서도 기댈 뭔가가 있다는데 또 감사했다. 만만치는 않았지만, 역시 세상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구나, 라고 손수 위로하며 삼형제봉이 나에게 준 교훈을 새삼 곱씹어본다.
감사할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누굴위해, 어떤분이 깔아놓은 건지 모르는 밧줄들, 그건 나에게 생명줄이 되어주었다. 물론, 나무뿌리와 돌뿌리까지도. 주변엔 이렇게 고마워할 것 천지였다. 내 부서진 더듬이가 보는걸 거부할 뿐. 고장난 내 심술이 느끼기를 마다할 뿐. 할미봉과 난, 금새 헤어져야 함을 직감했다. 그리고, 또 까먹었다. 오늘 컨디션 별로라는 것과 배낭속에 물이 딱 한병밖에 없다, 라는 사실을.
심신이 점점 가물가물해지던 그 순간에도 잘한게 딱 하나 있었다. 대포바위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쳐 버린 것.얼마전 동료 대간러 한분이 나에게 전해주었던 대포바위의 전설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아마 여태것 살아오면서 내 육신이 내 전두엽의 의지를 꺾어버린 건 아마 최초가 아니었을지. 그것은 오늘 내가 한일 중 최고로 잘한 선택이었다. 난, 저 서봉 깎아지른 된비알 고개를 올라채야 했기에.
할미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온산, 온들이 운무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운무의 바다였고 운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운무의 바다만이 내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상황. 좀체로 두발이 얼어버린 듯 땅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보고. 이 명경을 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버릴 순 없는 거였다.
이걸보며 유유히 지나가버린 사람이 있다면 분명, 사람이 아닌 신선, 아니면 산신령쯤일 것이리라. 이젠 할미봉과 영원히 이별이다. 만남이 있으면 언젠간 헤어짐의 시간이 반드시 돌아오는 법. 서봉을 향해 전진이다. 흥분된 마음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지만 걸음걸이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제 겨우 반밖에 걷지 못했는데. 아직 걸어야 할 길은 까마득한데.
오름길엔 심장이 고통스러워했고, 내림길엔 두 종아리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상황이 재현된다. 어쩌지. 잠시 쉼이 필요했다. 배낭을 풀고 신선이 있을 법한 소나무 둥지아래 자릴잡고 잠시 기대어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배낭속을 뒤졌다. 마침, 물컹한 것이 손에 닿았고 그건 체리였다. 체리가 있었다는 걸 순간 까먹었다. 행운이었다. 몇 개를 목에 넘겼더니 쏙쏙하고 잘도 들어갔다. 절망이 지나가고 한가닥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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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10 남덕유 마음에 담다 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