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things Jun 10. 2023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4 잊어버렸던 자신감! 이제는 되찾아야 할 때 ~

“좀 목소리 좀 사람이 알아듣게 또박또박 크게 이야기하면 안 돼.

그리고, “주어” 좀 이야기하고, 상황 설명을 좀 해.

그러면 쉬울 것을…”

이런 말들을 아내로부터 가끔씩 듣는다.

도대체 내 목소리가 왜 기어 들어가는 걸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패기 넘치던 자신감 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10% 나 되려나 싶다.

아무리 중년의 나이가 되어갈수록 남성들은 여성 호르몬의 수치가 올라간다지만,

“아닌 건 아니다.” 재정비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항상 함께한다.


보통의 아이들 엄마들은 예능 프로를 자주 보는데, 우리 집에서는 최근에 아내가 즐겨보는

예능프로는 “돌싱포맨”이다.

아내가 시청할 때 가끔씩 같이 보는데 남자들의 수다로 상당한 재미거리를 제공해 준다.  

해외 이기 때문에 본방사수는 못하고, 유튜브 영상을 통하여 보는데,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이승철 님이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20년도 더 지난  잠시 콘서트 일을 했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우리들이 알다시피 매년 5월 5일은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만드시고, 지금껏 그날만 되면 어린이들을 위한 그 어떤 곳에  가더라도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북새통이다.

그날 하루만큼은 아이들을 위하여 부모님들이 최선을 다하신다.


20여 년 전에 나는 잠시 한국에 1년 정도 지내다가 다시 뉴질랜드로 들어왔다.

한국에서 머물던 시간에 몇 달 정도 00 공연 기획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보통 주관을 하는 쪽은 서울에 있는 규모가 있는 기획 회사이다.

보통 가수들과 직접 계약을 맺고 다른 하청업체 즉, 타 지역에 주최 측에서  일정금액을 받고 가수에게 콘서트 일정을 알려준다.

수익구조는 주최하는 기획사에서  받은 일정금액을  아마도 주관하는 측과 가수들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나누어 가질 것이다.

2001년 5월 5일에 대전에 충남대 정심홀이라는 곳에서 이승철 님의 콘서트를 주최하였다.

공연은 두 번으로 나누어서 진행되었고, 그 당시 다음카페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던 터라

“이승철과 새침데기” 팬클럽 회장에게도 연락을 하여서 티켓구매 의사도 물어보고 ,

조금 할인된 가격에 팬클럽 회원들에게 전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찐 팬들이 콘서트 현장에 있어야 분위기 형성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방탄소년단의 아미처럼!

총좌석이 2400석인데 , 7시 30분의 공연은 다 매진되었지만,  첫 번째 공연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80퍼센트를 상회하는 정도로 나쁘지 않게 성공적으로 관람인원을 확보하였다.

역시 “콘서트의 황제” 답게 몇 번의 라디오 광고와 포스터 효과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홍보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행사 전 마지막 미팅 때에도 주관사 측에서는 행사 당일날 가수의 컨디션을 최고조로 올리는 것은 관객수라는 것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하면서 이야기해 주었다.

쉽게 말해서 100석이 있는 공간에서 80명 정도만 왔는데 어떤 사람은 앞사람 머리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뿔뿔이 흩어져서 앉아 있는 경우에는 ,

가수 입장에서 관람객 좌석이 많이 비어보일수도 있어서 시너지가 적다고 하면서, 매진이 되지 않고

혹시 몇백 석 정도 비는 상황이면 지나가는 학생들이라도 채워서 빈좌석에 앉히거나, 아니면 행사 담당자가 사람들을 최대한 빈자리 없이 모여 앉게 하여서 노래할 가수가 “내 콘서트에 사람들이 많이 왔구나.”라는

느낌을 받게끔 해야 한다고 수차례 이야기 하였다.

콘서트 당일 사진들 2001년 5월 5일




2000년대 초반에는 지금처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홍보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포스터, 라디오 광고 등을 이용하였는데,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무엇인가 많이 허술하면서

부족하였던 때였던 것 같다.

현재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추억의 흔적들”을 더 찾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고, 홍보도 다양한 SNS를 통해서 쉽게 했었을 것 같다.

현수막 같은 것 말고…

기획사 직원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서  판매처 계약도 따내고, 이곳저곳에서 스폰서도 받아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행사를 마치었다고 이야기들을 했다.

공연 당일 전날에 세션팀과 이승철 님이 리허설을 하는 것을 보는데 , 역시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가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역시라는 말! “ 말고는 표현할 것이 없다.

드디어 공연 당일날, 앞에서 말했듯이 1부 공연에서 빈자리가 꽤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앉아 있었다.

공연시작 30분 전!

지금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은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까 , 마이크와 함께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여러분, 좋은 공연 보고 싶으시죠. 저희가 최대한 도와 드리겠습니다. 빈자리가 없도록

앞 좌석부터 차례로 앉아 주세요. 이제 곧 공연 시작 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1800명 앞에서 매뉴얼대로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무대 위에 마지막 점검, 가수대기실에 필요한 물건들을 놓아두고서 “공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관객석을 쳐다보니까 만석처럼 보였다.

이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도저히 저 사람 왜 저러지? 왜 저렇게 해야만 할까! 나라면 저렇게 안 하는데 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일단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그 사람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면 부정적이었던 것들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1부 공연때 정말로 관객수 확인 하는 중

신체는 20대를 최고점으로 한 뒤부터는 조금씩 퇴화기로 접어들어 노년기가 되면 기존에 타고난

키와 몸무게도 잃어버린다.

하지만,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지킬 수 있는 것도 있는데 “자신감”이다.

억누르고 있던 것을 “표출”만 한다 하여도 큰 도움이 된다.

이것 또한 나의 삶의 여정에 하나 일 뿐이라고…

산의 정상에 올라서 “메아리” 치는 것처럼,


나의 자신감 있는 생각과 행동을 찾아 나설 때, 부메랑처럼 좋은 일들이 되돌아올 것이다.

아무렴 그렇지 , 그렇고 말고..

그때의 자신감과 패기 넘치던 때를 추억한다는 것이 ,

지금의 우리를 한 단계 더 나은 위치에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일단 마음먹은 것은 해보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냐고?

그냥 너무 생각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이전 03화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