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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things Aug 17. 2023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6. 이봐! 해봤어? 될 때까지 ~

"불굴의 의지, 초긍정적인 마인드, 될 때까지"  

이런 정신으로 무장되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나부터 그렇다.

뭔가 결과가 가까운 시일 내에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하여서는 그만하고 싶어 질 때가 많다.

우리들은 "비교문화"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서 누군가가 어떻게 지내느냐에 더 관심이 많아지며,  

남들이 어떻게 볼까를 먼저 생각하는 from Me 가 아닌 from who에 더 가깝게 살아가고 있다.

From who 가 아닌 From me로부터 시작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이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니 뉴질랜드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낸 형이 기억이 난다.

2008년쯤이었다. 그때 뉴질랜드에 세계 각국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었던 때이었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지상 최고의 낙원"

푸른 하늘을 매일 만끽할 수 있는 곳, 사계절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였던 뉴질랜드였다.


내가 있던 곳은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였다.  

해외에서 산지 25년 차인데 그곳에서만 15년 정도 살았었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없었다면 , 아직도 그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에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 정도로 뉴질랜드 남섬은 매력적인 곳이다.

"먹고사는 문제만 빼놓고 본다면 ~"

크라이스트처치 Tram way

Y형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주관하시고 결정 내려 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실한 크리스천이다.

지금이니까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해외로의 이민, 특히 뉴질랜드 이민제도는 점수제가 도입이 되어서 평균점수를 넘어야

신청이 가능한 때이었다.

학벌, 경력, 나이, 뉴질랜드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후에 영어시험 점수 (IELTS) 나

영어인터뷰(전화 혹은 방문)로 취득 여부가 결정이 된다.

이민을 위해서 모든 것이 다 준비된 상황이었어서, 그 형은 내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와서

온라인으로 이민신청을 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Y형은 신청 후에 이제 곧 찾아올 영어인터뷰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형! 저도 몇 년 전에 했었는데 별것 없어요. 전화로 서로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엉뚱한 대답만 하지 않으면 별 문제없을 거예요."

한국에서 직장 생활만 하다가 이민에 대한 꿈을 꾸고서 생전 해보지 않았던 요리일을 시작하던

Y형은 영어를 일상에서 쓰는 표현만 쓰기 때문에 걱정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해주실 거야."라는 말을 항상 나에게 전하였다.

몇 달이 지난 후 인터뷰를 하고자 일하는 곳에 이민국 소속 담당관이 찾아왔는데,

기대치에 한참 미달을 했던 모양이다.

나에게 전화가 왔다.

"잘 안 됐다. 다음에 다시 신청하란다.

혹시 네가 이민부장관에게 내가 한국말로 써가면 편지 하나 써줄 수 있나?"


황당했다.

그래도 간절히 부탁하길래 나도 부족한 영어실력이지만 편지를 써서 프린트를 해서

Y형이 왔을 때 전해 주었다.

그것을 특별우편 (수취인 확인이 되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보냈다 한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나의 영어 수준은 지금은 이렇지만 ,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노력할 것이고 지금까지 나라에서 정한

세금도 정확히 내고 있으며 나는 뉴질랜드가 기독교 국가인 만큼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다.

크라이스트처치가 너무 좋고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고 싶다.

그리고 이 나라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으니 영어 인터뷰를 다시 보게 해 주던지 아니면

나에게 영어 인터뷰 면제를 해주고 영주권 취득의 기회를 준다면 너무 감사하겠다."

라고 적은 것이다.


3주 정도 지났나 답장이 왔다고 편지를 들고 내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왔다.

이름이 어렴풋 기억이 나는데, "폴스웨인 이민부 장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생각했던 대로 , 유감이지만 안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신청을 하여서 영어시험 점수를 따던지 아니면 영어 인터뷰에서 담당관이 납득할 만큼

영어 실력을 키우던지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본인도 응원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이민신청에서 거절을 당하고 그 이후로 세 번 정도 영어인터뷰에서 계속 만족하지 못할

영어 회화능력을 담당관에게 보여준 것 같다.


그 후로 들은 이야기인데, 세 번째 이민을 신청한 뒤 담당관이 영어 인터뷰차 찾아오니까 상품권을

그 사람에게 전했다 한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OMG"라고 혼자 속삭였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어떤 비리도 없다고 들었고,

뇌물 같은 것을 준 사람에게는 죗값이 더 불어난다고 들었다.

그런데, 다행히 담당관이 Y형의 순수한 마음을 알았는지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하면서 넘어갔다 한다.

이민신청을 도와주는 알고 지냈던 변호사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원래  한번 거절되면 철저히 준비하여서

어느 정도 텀을 고 재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Y형은 이거 뭐! 인해전술도 아니고 떨이 지면 다음날 다시 신청을 계속 반복하였다.

총 5번 이민국으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문가를 만나서 전략을 새롭게 짜야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Y형에게 전문가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었다.

이 정도면 현실에 직시하고 무모함을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5번째 결과가 안 좋았는데도

6번째 다시 재신청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신청비용이 한두 푼도 아닌데 "불굴의 의지"는 박수받을 만하다.

6개월이 더 지난 후에 Y형이 가게로 찾아왔다.

"드디어 됐다. 영어인터뷰를 비싼 돈 내고서 5번 넘게 해서 그런지 요번에는 너무 쉽게 넘어간 것 같다.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린걸 이제야 들어주시네."

Y형의 이야기를 듣고서 "저렇게 계속하면 절대 이민 안 받아준다."라고 말하던 사람이 99% 였다.

"운전을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계속 핸들을 잡아 보겠다 하면 그 누가 키를 전해 주겠는가"

와 같은 말이다.


그런데, Y형은 실패 속에서 계속 배워 나가고 있던 것이다.

From Me (나로부터)의 인생관으로 살아왔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From who (누군가로부터)로 시작되는 , 내가 주관자가 아니고 누군가의 말에 의해 움직였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모한 도전, 불굴의 의지, 맨땅에 헤딩!

모두 다 해봐야 아는 것이다.

대 다수의 사람은 "저거 미친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세상을 바꾼 모든 위대한 발명들은 이런 미친 생각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Y형처럼 초긍정적인 마인드. 하나님이 다 해주실 거라는 믿음.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여서 대처하는 것이 물론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되겠지만, 때로는

적정시기를 놓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다.

From Me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누군가로부터의 (From who) 말들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고

망설임이 평생 우리 주위에 맴돌을 것이다.


글 쓰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이글 누가 읽어줄까! 뭔가 부족한 거 아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함께 한다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故정주영 회장님 말씀처럼

"이봐! 해봤어?"


Y형처럼 때로는 무모한 도전! 필요한 때이다.

움츠려 들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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