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우리 (단편소설)
정수로부터 카톡이 왔다.
영부인밴드 공연
롤링홀, 6시 반
5시 상상마당 앞에서 만나 저녁 먹고 들어가자
티켓은 이미 구입
불태우자! 오늘 밤 ㅋㅋㅋ
정수의 웃는 얼굴이 ㅋㅋㅋ 위로 떠오르다 사라졌다.
카톡 화면이 닫히며 검은 액정화면에 뚱한 내 얼굴이 드러났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자, 티브이 속보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 첫눈, 폭설 예상.”
설렘보다 걱정과 피곤이 몰려왔다.
11월 24일에 첫눈은 그럴듯하지만, 폭설은 평생 처음이었다. 비스듬히 누워 식후에 밀려오던 졸음이 싹 달아났다.
별수 없었다.
시간을 보니 외출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저녁 준비에 단장까지, 한 번에 갈 수도 없는 먼 거리다. 설상가상 폭설이라니!
정수는 티브이를 안 보니 모를 터였다. 답답했다. 만사가 귀챦아졌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회색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곧 눈으로 바뀔 태세였다. 시간이 빠듯해 다른 궁리를 할 여유가 없었다. 나 대신 다른 누군가를 추천할 수도 없었다.
퀸, 트리뷰트 ‘영부인 밴드’ 공연을 반기며 나 대신 정수와 갈 만한 친구? 머릿속을 다 뒤져봐도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음악이라면? 플롯연주 실력이 제법인 이정희는 손사래부터 칠 것이다. 트로트 가수 이름을 꿰찬 유영서도 락에는 관심이 없다. 정수가 영부인밴드 공연을 들먹였을 때 “진짜 ‘퀸’이라면 모를까?”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수는 아무 말 없이 나물을 오래도록 씹었었다. 음악을 들먹여 본 친구 누가 있을까? 공짜라면 권총도 두 발? 어림없는 말이다. 락 밴드공연에 스탠딩이 아닌가? 우리 모임에 스탠딩 공연을 두 시간 버틸만한 사람은 정수 외에는 없을 것이다. 제일 건강하다는 나도 주저되는데!
옷차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게다가 폭설이라니! 서울의 끝, 집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진짜 날이 지나서야 귀가할지도 모를 거란 불안이 엄습했다.
이 사단을 만든 건 사실 나 자신이었다. 지난번 이모집에서 술기운에 한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이모집’은 신촌역사 주변 정비로 카페 ‘희랍’이 없어진 뒤에 급히 찾아낸 곳이었다. 아현동 초입의 이 집은 저렴한 가격과 친근한 두 자매 덕에 이 십여 년째 단골이 되었다. 대기업 관리직에 적을 둔 남편과 결혼하며 전업주부로 돌아선 정희는 타고난 성품이 깔끔해 처음에 마땅치 않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막걸리 한잔이 들어간 첫날, “이모, 진짜, 진짜! 맛있어요!” 혀에 힘을 주며 바쁜 주인들을 불러댔다.
“이모, 무릎 아프시다는 건 어때? 병원은 가봤어?” 존댓말과 반말을 섞은 정수의 친근함은 이모 집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정수만 보면 이모들은 손이 커졌고 안주는 늘 덤으로 풍족했다.
“남은 거 싸줄게.” 어머니 또래의 이모들은 정수를 챙겼다.
“아냐, 아냐! 지난주에 전주에 다녀와서 냉장고에 자리가 없어.” 하며 남은 전을 손가락으로 집어넣었다. 이모들은 그런 정수의 등을 쓰다듬으며 이뻐했다.
“어, 왔어?” “정수는 벌써 와 있어.” “길고 조용한 애는 오늘 안 왔네.”
웨이를 두고 길고 조용한 애. 정희는 깔끔한 애, 영서는 유총무라고 지칭했는데 나를 두고는 뭐라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궁금했지만 숫기가 없어 머뭇거리다 말았다. 오직 정수만이 제 이름으로 불렸다. 친척 집에 드나들 듯 언제나 허물없는 인사들이 오고 갔다.
이모집 내부는 낙서가 뒤덮인 한지와 거미줄, 덧댄 비닐장판까지 억센 노인의 주름과 힘줄 같았다. 테이블이 만원일 땐 악을 써가며 말하느라 음악은 어느새 무용했고 말하는 이마다 목에 핏대가 서곤 했다.
“야. 우리도 장소 좀 근사한 데로 바꾸자” 정희가 귀국 후, 다시 한번 제안한 적 있지만 도리가 없었다. 정희를 뺀 모두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자, 이제 일어나자!” 영서가 테이블 위의 그릇들을 포개며 말했다. 집이 제일 가까운 영서가 늘 먼저 서둘렀다.
“너는 집이 코앞인데.” 웨이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쟤, 시어머니가 거의 거동을 못 하신대.” 정희가 내 귀에 낮게 속삭였다. 얼마 전, 홀로 계시던 시어머니와의 합가를 떠벌리며 술을 들이켰던 영서가 훽 돌아섰다. 순간 정희와 나는 움찔했다.
“야, 다 들려.”
영서의 수척해진 뺨과 그늘진 얼굴이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되었다.
“그 고충 모르면서 그렇게 뒷말하는 거 아니다.” 영서가 접시들을 이모가 들고 가기 좋게 밀어내며 말했다.
그때 던진 말이 내 발목을 잡았다. 영서의 처지에 견준 내 자유로운 형편이 호기를 불러온 것이다.
“야, 인생 짧아! 우리 한 번 집 생각 말고, 놀아보자!” 막걸리를 목에 털어 넣으며 외쳤다.
“무르기 없기다!”
“야, 정수가 무르기 없단다. 기운 좋은 너희들끼리 모여. 난 힘이 딸려서!”
영서는 돌봐야 하는 시어머니 대신 자신의 체력을 핑계로 둘러댔다.
영서가 일어서자 모두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다. 밖으로 나온 정희와 영서가 제 갈 길을 찾아 발을 돌렸다. 길을 재촉하며 흩어질 때 술집 앞에 남은 건 정수와 웨이, 그리고 나 셋이었다. 우리는 취기에 감기는 눈을 치켜뜨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언제 한번 달려보자! 내가 연락할게.” 정수가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앞서 나갔다. 정수와 내가 퀸의 팬인 건 확실하지만! 그저 아스라이, 설마! 라고 생각했다.
출산과 함께 우리들의 모임은 현격하게 달라졌었다. 주재원 남편을 따라나선, 정희의 독일 출국을 기점으로 크게 흔들렸다가 육아에 숨을 돌린 사이 다시 살아났다. 뜸하게 둘 혹은 셋이던 모임은 정희가 귀국한 칠 년 전, 다시 다섯으로 돌아갔다. 건재한 이모집에서 회포를 풀던 날은 초저녁부터 자정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술을 마셨다. 나중엔 이모들도 합석하여 우리의 술을 받았다. 이때의 열정이라면 모두가 공연을 볼 수도 있었을까?. 그게 벌써 칠 년 전 일이었다.
우리는 20대 초반, 철학스터디를 한다는 명목으로 신촌 주변을 배회하다 닿은 인연이었다. 철학 공부는 취업과 결혼 시기를 거친 후,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다고 실토했다. 여대 동기들 넷은 연극 동아리에서 만나고 동시에 탈퇴하며 가까워졌다. 지도교수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비난하다 가까워졌다고 했다. 그들의 대화에 ‘나등신’으로 불린 노처녀 교수의 이름이 나상신이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탈퇴를 종용한 것은 웨이였는데, 정작 스터디를 하는 동안 웨이는 별로 참여한 적이 없었다. 웨이는 모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공부에는 별반 관심이 없어, 졸업장만을 위해 다니는 듯했다. 넷의 모임에 정수와 고교 동창인 내가 들어가 다섯 명이 되었다. 공부라고 해야 책 읽고 소감이나 얘기하는 수준이었는데, 늘 ‘어렵다!’로 마무리되며 술자리가 이어졌다.
“라이프니츠 마무리한 날, 정수 쟤 웃겼지.”
그랬다. 신촌 로터리, 호떡 트럭 사장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정수가 낮부터 빈속에 술을 들이켰다. 인물이 좋은 그에게 여러 여대생이 눈길을 주고 있었다. 정수가 꼬인 혀로 고백했으나 그 자리에서 거절당했다. 그는 이미 다른 과 여학생과 교제 중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둘의 결혼은 티비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옆골목에서 추이를 지켜보던 우리에게 되돌아온 정수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술기운에 긴장감과 실망이 배가되어 다리가 풀렸던 것이다. 신촌에서 홍대로 올라서는 길 초입, 지하 레스토랑 ‘프린스’에 들어가 정수의 통곡을 들으며 2차로 술을 들이켰다. 정수는 인사불성이 된 채로 의자에 목을 젖힌 채 잠이 들었다. 이십 대의 절정이었다.
“그날,” 영서가 말을 잇지 않고 콧김을 내뿜었다. “나, 진짜, 개고생했다” 영서가 치를 떨며 한 마디씩 숨을 쉬어가며 이를 악물었다. 토사물을 옷에 얹은 채 서교동 제집까지 정수를 끌고 가다 동이 텄다는 일화는 한동안 정수의 입을 다물게 했다. 웃겨도 눈물이 난다는 걸 처음 실감한 날이었다. 우리는 정말 웃다가 눈물을 훔쳤다.
정수만이 우리 모임에 유일한 싱글이다. 서른이 다 되도록 남자를 만나지 않는 정수를 두고 호떡집 사장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절절한 거 아니냐고 뒷말을 했었다. 우리가 모두 결혼과 출산을 거치는 동안 정수는 꾸준히 공부에만 몰두했다. 교수로 대학에 적을 만드는 사이 미국 거주 사진작가와 사랑에 빠졌고 환영의 박수를 받았다. 한동안 미국 이주냐 마냐를 두고 갈등하는 듯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수는 끝내 그와 결별했고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의 사진을 보여준 적이 한 번 있었다.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아 여러 번 들여다보았다. 모두 그의 사진을 돌려가며 한마디씩 했다. 어딜 봐도 예술가라는 한 목소리였다.
사진작가, 예술가, 뉴욕 사람으로만 불린 남자, 정수가 장이라고만 소개한 것도 멋지다고만 생각했었다. 우리는 그를 쟝!이라 불렀다. 프랑스어 같다며 이름조차 예술가!라고 말했다.
흰색 스카프가 어울리는 남자라니! 이목구비보다 단정함과 스타일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남다른 남자였다. 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들뜬 정수를 보며 그 막연한 거리감을 떨쳐냈다. 그녀의 인스퍼레이션에 들어선 남자를 함부로 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수는 한동안 미국을 오가며 이모집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술값내기 벌은 주로 쟤였지 않냐?”
웨이를 지목하는 정희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생각했다. 웨이가 없었다면 많은 몫은 내 차지였다는 것을 알고 하는 소리일까? 웨이는 벌칙으로 밥값이던 술값이던 제 지갑을 여는데 개의치 않았다. 정희를 쳐다보던 웨이가 뻘쭘해하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입꼬리를 올렸다. 다른 이의 말에 별 반박도 하지 않는 웨이가 늘, 여유 있어 보였다. 웨이의 옷차림과 가방 등 그녀에게 흐르는 여유가 부러운 건 사실이었다. 나만 그럴 거란 생각이 더 싫었다.
“그래서, 뭐? 오늘도 내가 낼게.” 그러곤 바로 일어나 계산대로 나갔다. 내가 말렸으나 웨이는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계산해야 할 날이었다. 영서가 몰아간 전교 1등 아들을 둔 명목이었다.
“똘똘이 아들, 진짜 부럽다. 얘, 그걸로 아들 고기 사줘.”
되돌아오는 나를 지켜본 영서가 또 수선스러운 추임새를 넣었다.
“네 아들, 여러모로 복둥이네.” 어색했지만 아이 덕에 간단하게 응수했다.
“그 맛에 살어. 내가.” 맥없이 웃었다.
그 이전 대학 4학년 여름이었다. 술값이 제법 나올 것 같아 먹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모두 귀가할 채비를 하고 일어섰다. 화장실을 나서는데 웨이가 들어서며 말했다.
“오늘 내가 계산했어.”나는 어리둥절한 채 몇 초를 망설이다가 밖으로 나왔다.
“잘 먹었어.” 길 밖으로 나가자, 등 뒤로 소리를 지르며 셋은 귀가를 서둘러 말할 기회가 없었다. 건물 밖으로 나온 웨이와 눈을 맞추며 왜?라는 시늉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웨이는 콧등에 주름을 만들며 ‘재밌잖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날 이후 나는 웨이가 고마우면서도 불편했다. 공부 모임을 그만둘까? 한 참 생각했던 때였다. 과외 아르바이트와 스터디를 병행하기가 벅찼다. 시간도, 술값도 다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던 참이었다. 모임 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은 나 혼자였다. 그들의 전공이 주제와 잘 어울렸지만 내 전공과는 전혀 달라 공부의 부담이 더 크다는 핑계를 머릿속에 만들기도 했다. 집도 가장 멀었고 교대 특성의 조별 과제에 참여 시간이 빠듯한 것도 사실이었다. 말을 꺼내기가 어색해 해를 넘기게 되었다. 그런 계산은 그 후에도 몇 번 있었는데 처음에 사실을 말하지 않았기에 두 번째부턴 이상하게 비밀스러워졌다. 웨이가 나 없는 자리에서 험담을 하거나, 자신의 일을 생색낼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몇 번이 반복되었다. 어느새 영서는 “오늘 웨이 나온 대, 안 나온 대?를 묻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육아에서 해방된 영서가 모임을 주도했다. 매달 회비를 내며 격월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문화체험이 명목이었다. 돌아가며 문화계 소식과 관련한 전시와 체험을 제안했었다. 집이 더 멀어져 부담스러운 나도 어영부영 회비를 내며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육아에 지치며 밖의 세상에 대한 목마름이 모두 강할 때였다. 영서는 회비만으로 어림없다며 찬조금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시작부터 공언했다. 영서는 밥값이든 술값이든 명목 하나쯤은 무조건 만들어서 남의 지갑을 여는 데 기막힌 재주가 있었다. 나는 영서가 큰 국밥집을 운영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닮았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다.
웨이의 비싼 핸드백이 눈에 띄면 “뭐야, 이거 못 보던 거네?” 하고 넘겨짚었고, 정희의 남편 승진이나 내 아이 성적, 정수의 새집 이사 같은 경사를 귀신같이 찾아냈다.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다. 세상 돌아가는 걸 저렇게 잘 아는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 이 정도면 밥 한 끼 가지고 안 되겠다, 안 그래?” 하고 대놓고 압박을 줬다.
라면도 못 끓이는 제 남편의 험담 뒤에 “야, 남의 집 아들 뒷바라지할 일 없는 네 팔자가 상팔자다.”라는 말로 정수의 지갑을 열게도 했다. 그렇게 회비는 쉽게 늘어났다. 회비가 생각보다 쉽게 불자 모임을 나가기도 어정쩡해졌다. 문화 체험보다 ‘이모집’ 술자리가 잦아지자 거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뿐만일까? 다섯 명 중 네 명 이상 모여 밥을 먹으면 회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도 영서가 만든 거였다. 자주 빠지는 웨이를 감안하면 당연했다.
오랜만에 롤링 홀 공연이라! 정수와 나는 삼십여 년 동안 퀸의 팬이었다.
단톡방이 아닌 내게만 카톡을 보낸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감았다. 폭설만 아니면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거북함은 늘어진 몸이 갖는 관성일 뿐이라 생각하며 거울 앞에 앉았다. 그래도 여전히 먼 거리, 늦은 밤 교통편, 추위, 폭설 그리고 스탠딩! 모두 마땅치 않은 이유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렇다고, 어! 스탠딩 공연을?
술기운에 괜한 소리를 해서 이 사단을 만들다니! 내 즉흥적인 태도에 나 스스로 화가 났다. 정수의 일방적인 결정에도 은근히 화가 났다. 밤을 나자고, 굳이 스탠딩 공연을? 티켓을 사기도 전에 언질을 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난 가기 싫어!’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못하지만,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시내 호텔 호캉스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참여는 늘었을까?
그랬다면! 좋았을 것을. 이 나이에 스탠딩이라니!
게다가 오늘 폭설이 예고된 밤이지 않은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화장을 하고 옷을 챙겨 입는 중에 웨이가 떠올랐다. 웨이는 그날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다.
우리 한번 달려 보자! 는 정수의 말을 웨이가 잠자코 듣고 있었으니 같이 가도 좋다는 뜻이 었을까? 평소 표정 변화가 없는 웨이가 새삼 낯설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웨이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시댁 행사에 꽃집 연락이 제일 먼저라거나, 일찍부터 미국에 아이들 보내거나 내외가 다녀왔다는 웨이의 삶에 대해서도 정수를 통해 들었을 뿐이다. 웨이도 불렀을까? 단톡방 메시지는 아니었으니 나만 가자고 한 것인가? 전화로 물어볼까? 나는 웨이와 개인 톡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사는 모습의 차이를 제일 먼저 떠올리면서도 웨이는 내 기분을 잘 알아주리라는 마음이 든 건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 웨이가 합석한 자리에서 눈인사를 마치고 잔을 돌리던 때였다.
“자자, 웨이, 한잔 받아.”정수가 떨어져 앉은 웨이의 잔에 술을 따를 때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웨이? 세례명이라고 하기에는 낯선 소리였다. 부모가 중국인인가? 결국엔 궁금증을 못 참아 왜, 웨이냐고 물었다. “너 눈썰미 좋다며? 맞춰봐.” 웨이가 접시 위에 두었던 시선을 치켜뜨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어 정수가 서둘러 내 말을 갈무리하려 했다.
“유명한 배우 닮았쟎냐. 맞춰봐”
“누구지?” 나는 고개를 뒤로 뺐다 당겼다 하며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고 아이들은 모두 내 입만 쳐다보았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영서가 못 참고 입을 열었다.
“탕웨이”
“어딘가 탕웨이 분위기가 나지 않냐?” 정수가 제가 붙였다고 말했다.
탕웨이의 색계가 떠들썩했던 시점이었다. 다시 보니 그녀의 둥근 얼굴과 큰 눈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머뭇거리다 피식 웃었다. 그 잠깐의 머뭇거림을 재밌어한 영서가 손뼉을 치며 웃어대는 바람에 본명은 뭐냐고 물을 새 없이 지나갔고 웨이도 눈을 흘기며 웃었다. 얼굴보다 세련된 옷차림과 기다란 팔다리가 우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웨이의 본명을 안 것은 그녀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은 날이었다.
욕조에 머리를 기울이고 샤워기를 쳐들며 마음속에서 나는 웨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항상 이런 식이야, 알아서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가만 보면 정수 걔, 뭐든 제 맘대로야. 저나 좋지! 나는 ‘락’이라는 장르에 그 정도 열성은 아니거든.’ 내 감정을 털어놓기 바빠 웨이를 앞에 두고 말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코트를 걸치고 거울 앞에 섰을 때 결국엔 입 밖으로 소리가 나왔다. 화장을 성의껏 했지만, 표정은 죽상이었다.
“아이씨, 귀챦아 죽겠네.”
냉장고를 열어 반찬들을 확인하고 밥솥의 예약 버튼을 눌렀다. 뒷 베란다로 보이는 수락산 밑 역사 지붕 위로 회색 구름이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밤늦게 돌아올 아들과 남편에게 간식과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단단히 입고 여몄다. 집 밖을 나오니 눈을 품은 하늘이 어깨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춥지 않은 온도에 껴입은 옷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코밑까지 끌어올린 머플러가 날숨에 축축하게 젖어 턱을 간지럽혔다. 마을버스를 타고 상계역으로 나가는 길에 네이버 지도를 확인하다 짜증이 올라왔다. 늘 시간 반 이상을 소모해야 모임 장소에 당도한다는 현실이 새삼 못마땅했다. 돌아오는 길 미끄러울 경사길을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홍대 입구역에 내려 계단을 오를 때 정수에게 톡이 왔다.
“어디?”
“지금 막 홍대입구”
“어 나 지금 출구앞”
“나도 나가는 중”
“ㅇㅋ”
계단을 올라 서자, 긴 코트를 늘어뜨린 웨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서 와” 정수가 인사를 건넸지만 내 눈은 웨이를 향해 웃었다. 역사 주변을 돌아 와우공원 쪽으로 향했다. 이전에 다녔던 ‘미로식당’에서 목살구이와 굴보쌈을 주문했다.
“우산은 챙겼어? 오늘 밤 폭설이래” 오늘 행사를 비꼬아 문젠 그거란 듯이 물었다.
“어쩐지 하늘이 내려앉았더라. 어제보다 날도 풀리고” 정수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말하며 미끄덩한 굴을 짚으려 젓가락질에 정신을 쏟았다.
“난 가져왔어. 저 가방에 무슨 우산이 들었겠니?” 그러고 보니 작은 슬링백 하나가 정수의 겨드랑이에 붙어 있었다.
밥 먹는 내내 정수는 영부인 밴드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과시했다. 예전 그대로였다. 시큰둥한 나와는 딴판이었다. 길어질 공연 시간을 대비해 화장실을 다녀올 때 둘이 진지하게 말을 주고받다가 정수가 웨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 거동에 정수가 멈추는 모습이 보였다. 정수와 웨이만이 공유한 교집합에 배제된 기분을 느꼈다. 기분도 별로인데 오늘처럼 폭설이 몰아치는 날에 공연이라니, 생각만 해도 기가 막혔다. 그때부터 나는 웨이의 옆모습을 자꾸 흘끔거렸다. 미소가 어쩐지 낯설고 서늘해 보였다. 그들이 나 없는 자리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식당을 나와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는 사이 그 둘을 뒤로하고 젊은이들 사이로 발을 옮겼다. 젊은이들 사이에 들어서자, 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십 대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롤링 홀 인근에 이르러 “오늘, 진짜 끝까지 버티는 거다?” 정수가 힘을 주어 말했다. 롤링홀 입구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서성였다. 입구에 다다르자, 대학시절의 정수와 나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지하 계단으로 들어설 때 전자기타의 신경을 긁는 소리와 둔탁한 드럼 소리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퀴퀴한 지하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전자 비트가 공기를 때리고 귓속으로 들어오며 심장을 두드렸다. 웨이가 어두운 공간을 둘러보며 콧등 주름을 만들었다. 정수는 계단에서부터 춤추는 시늉을 하며 내려갔다.
좁은 홀 안에 공기 뭉치가 비트를 타고 흐르며 우리의 고막을 때렸다. 들어가자마자 후끈 더워져 우리 셋은 겉옷을 벗어 가방 안과 옆으로 쌓았다.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는 사람들과 비트에 흥분되며 출발 전 정수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고 있었다. 웨이가 먼저 스태프의 스툴에 앉고 짐을 제 무릎 위에 얹어 턱을 괴었다. 들어서는 무리를 훑으며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 십여 분 후 음악 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리의 파장이 나의 몸을 가볍게 휘감아 흔들었다. 고막이 울리며 절로 어깨가 들썩여졌다. 더 이상,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이 흥분되기 시작했다. 긴 금발 웨이브 가발의 브라이언 메이부터, 로져 테일러와 존 디콘의 역을 맡은 구성원이 차례로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튀어나왔다. 리드 싱어 신창엽이 등장하자 홀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함성에 정수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정수는 완전히 몰입하며 뛰었고, 나도 웃음을 흘리며 비트에 몸을 실었다. 나도 정수만큼 좋아한 퀸이 아니던가? 프레디 머큐리가 온다는 소식에 얼마나 좋아했었던가! 그가 실린 잡지들을 구하고 다이아몬드 무늬 바지를 입은 그의 사진을 들고 호들갑을 떨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정수는 여전히 그때와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니 새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수는 맨 앞으로 나가며 쉬지 않고 뛰었다. 나는 웨이의 앞, 그러니까 서너 줄 뒤에 서, 젊은이들과 함께 팔을 위로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돈 스탑 미 나우’에 가서는 목을 쥐고 소리를 질렀으며 ‘위 윌 락 유’에서는 옆의 사람들과 발과 팔을 같이 맞춰가며 주먹을 휘두르고 바닥을 굴렀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웨이는 한쪽 구석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며 가볍게 턱을 위아래로 흔들 뿐이었다. 짐을 놓고 일어서라고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으나 여전히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흰 런닝에 흰 바지를 입은 신창엽이 움직이는 무대 방향을 따라 몸을 바꾸며 연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언더 프레셔’에서는 발을 구르며 떼창을 했다. ‘라디오 가가’에 맞춰 손뼉을 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섬바디 러브’와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는 내가 유일하게 가사를 다 아는 노래라 쉬지 않고 목을 썼다. 리드 싱어 신창엽이 숨을 고르고 ‘마마~’를 부르자 일순간 모든 이가 호흡조차 멈춘 듯 적막했다. 그의 음색이 프레디 머큐리와 매우 흡사하다는 내 말에 정수도 동의한 적이 있다. 그들이 밴드를 결성할 때부터 정수는 이들과 거의 모든 이력을 같이 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고유한 몇몇 동작들,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거나 발끝을 들고 다리를 꼿꼿이 편 채 무대를 가로지르는 창엽에게 모두가 환호했다. 지하공간이 부풀어 터질 듯한 소리의 위력이 느껴졌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막바지에 ‘위 아 더 챔 피온’에 이르러 흥분은 좀 가라앉고 모두 합창으로 공연은 마무리되어 갔다. 창엽은 사람들의 떼창에 마이크를 관중을 향해 내밀었다. 잠시라도 숨을 돌리는 것 같았다. ‘브라이언 메이 역’의 덩치 큰 남자가 돌아간 가발을 매만질 즈음 공연을 끝이 났다. 그들이 모두 손을 잡고 무대 앞으로 나와 인사를 반복하는 사이, 웨이가 일어서는 모습이 곁눈으로 보였지만 잡지 않았다. 출구가 좁아 가이드 요원들이 관중을 안내했다.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올 때 찬 냉기에 실린 눈도 따라 내려왔다,
“바닥이 미끄럽습니다. 천천히, 밀지 말고 올라오세요.” 스피커폰을 입에 댄 젊은 여자애가 우리를 향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모두 젖은 머리를 매만지고 이마와 목에 흥건한 땀을 닦으며, 발에 힘을 주고 계단을 하나씩 밟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정도의 눈이 내리고 있었다. 닭 깃털 같은 눈송이에 시야가 이삼 미터가 되지 않아 여전히 지하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저기 시야 밖 사람들을 살피는 사이 정수도 길로 나서고 있었다.
“저기요. 좀 비켜주셔야.” 뒤에 따라 올라오던 사람들이 우리를 길 한가운데로 내몰았다. 정수가 웨이에게 연락하려 핸드폰을 찾는 사이, 나는 우산을 펴며 고개를 들었다. 길 건너 가로등 밑, 긴 코트를 입은 웨이가 소묘처럼 희미하게 서 있었다. 쟤는 참 언제나 미동이 없이 참 한결같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우리를 찾으러 이 앞으로 다가올 만도 한데. 참 웨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있다.” 내 말에 핸드폰을 닫으며 정수가 중얼거렸다.
“참, 도윤답다.”
“뭐? 뭐 답다구?”
도윤? 웨이 본명이 도윤이었지! 청첩장을 받았을 때 워낙 남자 이름 같아, 잊고 있었지만 기억이 되살아났다.
“성이 뭐였더라?”
내 질문을 다 듣기도 전에 조금 당황한 정수가 대답도 없이 크게 발을 뗐다.
갑자기 뭔가 짜증이 실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너하고 둘이 오려고 했거든. 그런데 웨이가 또 알아, 그걸.”
“뭘?” 정수를 쫒으며 연신 발아래 바짓단을 끌어올렸다.
“11월 24일 프레디 생일에 맞춰하는 공연, 매년 나 혼자라도 간다는 걸.” 그러더니 조금 더 작아진 목소리로 이어갔다.
“쟤, 이젠 수면제도 달고 사는 거 같더라고.”
“심각하네. 수면제까지”
“너만 알고 있어. 웨이가 너무 외로워. 딸들도 맘대로 못 본 대.”
“외로워 견딜 수가 없나 보더라.”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술이 깨는 기분까지 들며 웨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정수도 나도 웨이를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웨이, 그녀의 남편과 두 딸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는 걸 들어 알지만, 그 이유가 단지 딸들의 음악 공부 때문만이 아닌 것은 일찌감치 눈치챘었다. 웨이는 어디에 정신을 팔렸는지 우리가 다가가 팔을 당기도록 생각에 넋을 잃고 있었다.
“야, 배고파.” 정수가 웨이 팔을 끌며 말했다. 나도 계속 서서 뛰어선지 속이 매우 헛헛했다. 웨이의 눈에 고단함이 가득했고 얼굴은 파리하게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삼거리를 돌아 이전에 드나들던 술집으로 향했다.
‘수작’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큼한 맥주 냄새와 음식 냄새가 뒤섞인 건조한 바람이 코를 찔렀다. 인디밴드인 듯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건배를 외치며 맥주잔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다음 무대, 우리 이름 박아버리자!”
“관객들 좋았다. 우리는 더 좋았다.”
“헤드 라이너가 되는 그날까지!”
돌아가며 한마디 하는 모양이었다. 정수와 내가 아자!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보냈고 그들도 응수하며 함빡 웃었다. 웨이도 덩달아 웃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열렬히 박수를 칠 때, 자리 안내를 하는 종업원이 다가왔다.
젖은 겉옷을 의자에 걸치고 술부터 주문했다. 술이 달게 느껴졌다. 출발 전의 불평과 걱정이 사라졌다. 다섯이 모여 마실 때와 매우 다르게 술맛이 느껴졌다.
“야, 잊을만해도 너땜에 안돼. 장 도 윤!” 정수가 웨이에게 뜨거운 국물을 덜어주며 볼멘소리를 했다.
고개를 갸웃한 웨이에게 정수가 감기는 눈을 한 번 치켜뜨며 말했다.
“도윤아, 안 그러냐?” 얼콰하게 취기가 오른 정수의 공허한 눈빛이 허공에 오래 머물렀다.
“너를 볼 때마다 나도 생각을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으니......”정수가 중얼거리고 도윤, 웨이는 정수의 손을 잡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 살고 있겠지. 장도윤!” 술잔을 소리 나게 탁, 내려놓은 정수가 웨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어지간히 취한 모양이었다.
웨이가 슬픈 표정으로 정수를 빤히 보다가 손으로 제 수척해진 뺨을 쓰다듬었다. 그제야 나는 정수 그리고 웨이, 도윤의 관계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정수의 옛 남자 이름이 웨이의 이름 도윤과 같았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다.
“그럼, 그 작자 이름이 장도윤?” 내가 묻고 내가 끄덕였다.
기온은 낮지 않았으나 등줄기를 타고 내린 땀이 식으며 한기가 찾아왔다.
그가 결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에 내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오래전 정수가 학교를 관두고 뉴욕으로 건너가기에는 너무 부담이 커서 접었다고 했을 때 나는, 무슨 어이없는 결정이냐!고 비난했었다. 둘의 내막은 아무도 몰랐다.
나는 조명 아래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며 영화를 생각했다. 집 거실에서 혼자 술잔을 들고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술맛 나게 하는 두 사람, 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모두 소설이고 영화였다.
정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우아함이나 영서가 추구하는 인생에는 이상하게 불편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들은 뭔가를 내게 강요했다. 그에 비해 이 둘이 갖는 편안함이 뭘까? 취기에 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정수와 공유한 긴 시간만큼 다른 누구보다 설명이 필요 없는 정수였다. 정수가 말하지 않으면 나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와 내가 오래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사는 모습이 다른 웨이도 내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아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기가 사라진 뒤엔 건조한 공기에 얼굴이 땅겼다. 찬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웨이에 이어 내가 술값을 계산했다. 정수가 다음은 자기 차례라며 일어설 때 우리는 이미 비척거리고 있었다.
눈이 뒤덮인 길엔 기타를 맨 젊은 남자들과 맨다리를 내놓은 치마차림의 여자애들이 눈에 들어왔다. 폭설도 막지 못하는 소란한 젊음의 열기에 나도 모르게 흥이 가라앉지 않았다.
“정수야, 어때 3차?”
정수가 대답대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술집 ‘작심’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시계를 보니 11시를 향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여니 부재중 전화와 카톡이 여러 개 보였다.
왜 안들어와?
몇 시에 들어올건데?
눈 엄청오는데, 필요하면 전화해
그친구들이야? 강남이야 신촌이야?
눈 엄청 쌓였는데. 막차 놓치면 어쩔건데
민수는 자고 나도잔다. 급하면 집전화로
취했고 피곤했다. 일찍 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테이블엔 아직도 술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남편의 메시지가 떠올라 갈등하는 사이, 앞자리 웨이가 말했다.
“야 지금도 보고 싶어?” 웨이가 쳐진 양쪽 눈 끝을 중지로 끌어올리며 정수에게 물었다. 좀처럼 마시지 않은 애가 꽤나 마신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제스츄어! 고개를 돌어 정수를 쳐다보니 정지된 장면처럼 굳어 있었다. 술기운에 오고 가는 타령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정수는 인스퍼레이션을 들먹이며 사진작가를 사랑했고 모든 걸 다 걸려고 했었다. 그 단어를 들먹일 때 부러웠었다. 그런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니! 그랬었다. 미국을 오간 지 일 년 뒤 결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정수가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해서 남자가 부담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감정은 현실의 우려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 남자의 이름이 도윤이었다. 장도윤! 도윤에게 웨이란 다른 이름이 있었기에 망정이었다고! 웨이를 볼 때마다 괴로움이 더 한 시절, 롤링 홀에서 뛰는 것 만이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정수는 그렇게 몇 년을 힘들게 버텼다.
정수가 슬링백을 열어 카드를 꺼내며 일어섰다.
“아니, 술 많이 남았는데. 벌써? 밤새 달려보자며?” 일어선 정수 등에 말했다. 내 혀도 말리기 시작했단 느낌이 들었다.
정수가 돌아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거죽만 남은 웨이의 얼굴가죽이 파리하게 보였다.
“도윤아, 이제 좀 끝내자!”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화가 실린 목소리였다.
정수의 낮은 목소리에 긴 하루가 마감된 기분이 들었다. 엉거주춤 비척거리며 웨이를 일으켜 세웠다. 웨이, 아니 도윤은 정수의 뒷모습을 보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끝내자, 끝내자구!” 걸어나가는 정수가 혼잣말을 계속했다. 다짐이나 주문같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오랫동안 술기운 속 과거에 갇혀 있었다. 눈이 여전히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모임을 탈퇴하고 싶을 때마다 느껴지는 그 반복의 거북함이 싫었다.
갑자기 그만! 가야지, 그만! 일어나야지, 그만! 좀 하자, 그만! 이제 과거 속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생각이 간절했다. 따뜻한 집 공기 속에서 내일을 생각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 그 매일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거리로 나오자, 눈은 우리의 발목을 뒤덮을 만큼 쌓여 있었다. 소란함에 실렸던 소음이 눈 속에 묻혀 고요했다. 취객들도 거의 없어진 채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쌓인 눈과 내리는 눈 사이엔 경계가 없어져 버렸다. 그야말로 시야가 하얗게 펼쳐졌다. 어릴 적 우주 속을 유영하는 꿈속에 들어앉은 기분이 들었다. 술기운에 몸이 가진 중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수와 웨이가 앞서 걸으며 길 위로 발자국을 만들었다. 소복이 쌓인 눈이 내 발목을 휘감다 내려앉았다.
“택시 부르고 나올걸.” 웨이가 갑자기 멈춰서 볼멘소리를 했다.
“야, 걱정 마. 심야버스 널렸어. 나만 따라와.” 정수가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쫓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며 정수가 손을 흔들었다.
눈길을 헤매며 걷는 동안, 나는 내 평범함과 안정감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소리를 해야 움직이는 남편과 아들이 어른거렸다.
“안 자요?” 혹은 “안 자니?” 따위의 잔소리로 마감하는 하루, 내 작은 침대에 몸을 뉘었던 어제가 그리웠다. 심야버스에 올라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부재중 전화를 예상했으나 남편과 아이 누구의 연락 흔적도 없었다. 웨이의 생기 없는 삶과 정수의 돌발적 자유를 떠올리며, 나는 마음속으로 자기 위안이 필요했다. 모임을 이어온 것도, 이 밤을 버티고 있는 것도, 하룻밤의 탈선? 덕분인지, 집에 돌아오자 신발이 젖은 것 말고는 별일이 없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눈을 이고 있는 수락산 형체를 보니 술이 깨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눈발은 잦아들었다. 젖은 신발과 차가운 공기에 몸이 시렸지만, 마음속은 이상하게 편안했다.
물에 젖어 무거워진 신발을 끌어올리며 생각했다. 수면제가 필요 없는 나의 매일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웨이나 정수가 지나온 고단함은, 내가 지닌 평범함이 결코 하찮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버스가 가고 난 빈 도로 위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폭설에 길이 사라지고, 주변은 고요했다. 밖을 알아볼 수 없이 달려온 심야버스는 긴 여행을 지나 돌아온 기분이 들게 했다. 새벽길 눈 탓에 모든 게 멈춘 길에서 나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하룻밤 여행 덕에 내일이 기대되며 젖은 옷도 신발도 무겁지 않았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젖은 양말을 벗고 까치발을 들었다. 아들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뿌연 가로등 불빛을 받은 아이의 모습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 얼굴에 내 찬 볼을 부비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